살면서 주변에서 본 쇼킹한 불륜썰 1~5위

2위: 승희와 포도 봉봉

by 강나린

‘님포매니악’이란 단어 알아?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2014년 동명의 영화로 많이 알려졌지?


이 영화를 나는 나온 지 몇 년이나 지나 우연히 보게 됐는데 난 이런 단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도 모를 때 이 증상을 가진 사람을 주변에서 본 적이 있어. 물론 그땐 그저 저건 병이다.. 미쳤다, 라고만 생각했지 저런 증상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어. 후에 곱씹어 보니 아마 내가 봤던 그 사람이 님포매니악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 근데 물론 아닐지도 몰라. 그저 조금 남다른 사람이었을 뿐일지도.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잠깐 했었는데 큰 회사였고 사무실이 오픈플랜 레이아웃이었어. 내 자리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비교적 안쪽에 있었어. 나보다 더 안쪽 구석에 승희(가명)라는 한 여자가 있었어. 나랑 또래거나 조금 위였을 거야. 예뻤고 항상 잘 차려입고 다녔지. 그때 내가 일하던 층은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앞쪽의 문을 지나면 사무실이 쫙 펼쳐져 있었고 엘리베이터 옆쪽으로 따로 된 공간의 문을 열면 휴게실이 있어서 잠깐씩 휴식을 취할 수도 있었고 싱크대에서 컵을 씻을 수도 있었고 각종 음료수가 가득 든 냉장고도 있었어.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는 퇴근 전에 거기에 모여서 간단하게 간식을 먹으면서 이야기도 하고 그 달의 생일자들을 위해 작은 생일 파티도 하고 그랬어.


그즈음 나는 아직 회사에는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은 채 퇴사각을 재고 있었거든.


그래서 모두들 금요일 간식타임을 하고 있을 때 슬그머니 내 자리로 돌아갔어. 사담 나누기도 싫었고 마무리한 후 5시 땡 치면 퇴근하려고.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화장도 고치고 말이야. 살그머니 내 자리 쪽으로 가는데 승희도 자기 자리에 있는 것 같아 보이는 거야. 왠지 말 걸어 보고 싶어서 다가갔는데 난 내 눈을 의심했어.


그 드넓은 사무실의 제일 안쪽 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승희는 늘 그러고 있었던 것일까?


책상 사이에 파티션이 있어서 바로 옆에 앉아 있어도 몸을 휘어 옆을 들여다봐야만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던 그곳에서. 코너에 있던 승희 자리에 도달하기 전, 한 자리 전 직원은 3주 전에 육아휴직 들어가서 비어 있고 전전 자리는 컴퓨터가 안돼서 한동안 비어 있던 상황. 오픈플랜이긴 하지만 곳곳에 기둥이 있어서 한 눈에 사무실을 다 볼 수는 없었던 구조. 책상이 2열씩 마주보고 있었는데 승희는 벽을 등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안전지대에 있었던 거야. 사무실 입구 방향을 등지고 있었으면 누군가 등 뒤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신경써야 했을 테니까. 승희는 모두가 휴게실에서 간식타임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안심했겠지. 카펫피팅 바닥이었기 때문에 내 발소리도 안 들렸겠지.


승희 자리 근처까지 도착했는데 힐끗 보이는 승희의 머리꼭지서부터 보이는 위쪽 얼굴이 좀 이상해 보이더라. 터져 나오는 신음소리를 억지로 참고 있는 것 같았는데 어디가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완전한 쾌락의 무아지경에 빠져 절정을 맛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지. 아픈 거면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에 한 발짝을 더 떼려다가 무심코 승희 책상 아래를 봤는데 컴퓨터 본체와 신발과 가방, 여러 전선이 뒤엉켜 있는, 책상 아래 그늘진 그 컴컴한 곳에 한 사람이 무릎을 꿇은 자세로 승희 쪽을 향해 있는 거야. 기도하거나 혹은 벌 서는 자세로 간절하고도 다급해 보이는 움직임들. 승희에게 ㅇㄹ을 해 주고 있었지.


나는 차마 더이상 다가가지 못하고 발소리를 죽여 사무실을 빠져 나갔지만 책상 아래로 양복 바지와 양말과 구두를 봤어.


나는 슬며시 휴게실에 돌아가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람들 무리에 합류했다가 5시 땡 되자마자 사무실을 나왔어. 하지만 그 층을 떠나진 않았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사무실 밖 복도,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복도에 있는 화장실엘 간 누군가를 기다리는 척하며 퇴근하는 사람들의 양말과 구두만 뚫어져라 봤어. 우리 사무실은 7층에 있었기 때문에 거의 모두가 엘리베이터를 이용했거든. 안 가고 뭐 하냐는 직원들의 호기심 어린 압박이 있었지만 꿋꿋이 기다렸어. 승희도 퇴근하더라. 약속이라도 있는지 신이 나서는. 뭐, 몇십 명이 같이 일하는 사무실에서, 누가 들어올지도 모르는 상황에, 간식 타임이긴 했어도 엄연히 근무 시간 내에 그런 아슬아슬한 짓을 저질렀으니 얼마나 도파민이 터졌겠어. 훅 분출했으니 시원하기도 하고 나른한 만족감도 느껴졌겠지.


직원들 대부분이 빠져 나간 후 이제 그만 포기할까 하던 차에 그 구두를 봤어.


유부남 과장이더라. 구두로는 오히려 구별이 어려웠지만, 엘리베이터 안으로 스텝을 살짝 넓게 내딛을 때 분명히 봤거든. 양말의 특정 브랜드. 검정 양말에 작게 노란색으로 수놓여진 그 브랜드의 동물 이미지. 책상 아래로 보였던 다리의 마름 정도도 매치했지.


내가 다 가슴이 두근거리더라. 그 과장 결혼식에 우리 다 축의금 냈었거든. 결혼식에 나는 가지는 않았었지만.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면서 신혼여행지 나라의 과자 사 와서 사무실 전체에 돌리기도 했었는데. 그리 오래 전이 아니라서 충격이더라. 도대체 언제 시작된 거야? 신혼인데 왜? 지 마누라 밑이나 핥아 줄 것이지 미친놈.


그 다음 주 월요일, 나는 회사에 퇴사한다고 통보했고 그 달과 다음 달까지 일하고 그만두는 걸로 얘기가 됐어. 외국 나가는 계획이 그전부터 있었거든. 공식적으로 마음이 떠나니 일도 좀 설렁설렁 하게 되면서 너무 분명하게 보이더라.


그 과장은 아마도 집에서는 되게 대접받고 사랑받는 남편이었던 것 같아. 그날 이후 새삼스레 남자 직원들을 눈여겨 보게 됐거든. 옷도 언제나 잘 다려져 있고 커프링크스도 항상 하고 말이야. 양말만 봐도 세련된 게 분명 아내의 손길이 많이 간 것 같더라. 가끔씩 아내가 싸 줬다며 과일 도시락을 휴게실 냉장고에 넣어뒀다 먹기도 했어.


우리 회사는 직원 식당이 있었고 밥이 잘 나왔기 때문에 점심 도시락은 싸 다닐 필요가 없었어.


그 둘을 유심히 보다 보니 어떤 패턴 같은 게 보이더라. 과장은 출근을 일찍 했는데 승희는 항상 9시에 아슬아슬하게 왔거든. 근데 과장이 일찍 출근해서 일을 시작해서 하다가 커피 사러 나간다며 회사 건물을 나가. 그러고 9시쯤이 되어 커피 한 잔을 사 들고 들어오거든? 그리고 곧 승희가 오더라. 아침엔 그렇고 오후 3시 반쯤 가장 늘어지는 시간에 둘이 슬쩍 나가더라, 잠깐의 시간차를 두고. 그리고 또 20분쯤 후에 돌아오고. 뭘 하는지, 섹스가 배설인지 언제나 2~30분 정도만 필요하던 그들.


며칠 동안 지켜보면 지켜볼수록 이때까지 어떻게 몰랐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표시가 많이 나더라, 이 사무실에 나 말고도 아는 사람이 또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 만큼. 몰랐다는 게 너무 이상하다고 느껴질 만큼.


처음에는 그저 과장이 유부남이니까 퇴근하자마자 집에 가야 돼서 모든 욕정을 근무 시간 내에 해결해야 돼서 그런 어레인지가 생긴 줄 알았어. 근데 승희의 입사 동기한테 슬쩍 물어서 알게 된 바로는 승희도 남친이 있대. 공사 다니는 남친. 직장이 2시간 거리 다른 도시에 있어서 평일엔 잘 못 만난다고. 결혼 얘기도 오가고 있다고 하더라. 후덜덜하게시리.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이었는데 며칠 지켜보는 동안 특이점을 발견했어.


사무실에 한 명이 더 있는 것 같더라? 승희랑 자주 점심 먹으러 나가는 남자. 우리 회사엔 직원 식당이 있어서 월급 나올 때 직원식당 식권이 15장씩 나왔어. 사람들이 어떤 날은 밖에 나가서 특별 메뉴 먹고 싶어하기도 하니까 그걸 고려해서 한 달 근무일수보다 조금 적게 나오는 거지. 그 달 식권 다 썼는데 직원 식당에서 먹고 싶으면 거기 영양사쌤한테 2천원만 내면 됐어. 암튼 승희가 어느 날부터 유독 한 남자 직원이랑 둘이 회사 밖으로 점심을 먹으러 나가더라? 일부러 보란 듯이 과장 옆으로 쌩 지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사무실로 돌아올 때는 승희는 평온 도도 평상시 모습 그대론데 그 남자는 뺨에 홍조를 숨기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 과장이랑 둘이 싸웠나? 싶어서 혼자 넘 꿀잼각이었는데 웬걸? 과장과의 배설 랑데뷰는 그대로 진행 중인 것 같더라고?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 이러는 사이 직원 주말 등산이 잡혔어.


지금이야 분위기가 조금 다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주5일제 근무가 단계적으로 시행된 지 얼마 안된 시기라 토요일에 회사 체육대회, 등산 등을 하는 것도 업무의 연장선상이라는 인식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어. 거의 모두가 참여했지. 나도 갔어. 아침부터 만나서 등산하고 산 위에서 절밥 먹고 내려와서 2시쯤부터 질펀한 술자리가 벌어졌지. 산 아래 있는 식당에서. 그런 데 있지? 커다란 방에 앉은뱅이 식탁 쫙 펼쳐져 있고 그 위에 하얀 세팅지가 깔려 있는 곳. 노래방 기계 있고 끈적한 방석 있는 곳. 화장실 가려면 방을 나와서 얼기설기 증축만 열일곱 번 정도 한 것 같이 보이는 가정집 모양 식당을 나와 식당 옆에 빗대어 선, 아마도 식당 주인이 살고 있을 따로 된 건물과의 좁은 틈새를 지나가 뒷마당을 가로질러 가야 되는 곳. 그곳에서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고 하는 동안 사람들은 취해 갔고 과장도 어느 새 만취했어.


내가 슬쩍슬쩍 봤는데 술을 한 잔 두 잔 마실수록 분노 게이지가 올라가는 것 같더라, 그 과장. 그도 그럴 것이 승희가 자꾸 알게 모르게 자극을 하더만? 일부러 멀찌감치 앉아서, 멀지만 맞은편에 앉아서 시선이 닿는 곳에서 연신 하하호호하며 흑기사 불러가며..절레절레. 직원들끼리 재미나게 싹싹하게 하는 걸 넘어서 아주 꾼이더라니까? 등산 오면서 꽃가라 블라우스는 또 뭐며.


승희 점심 메이트 남자는 살짝 맘 상하는 티를 숨기지 못하면서도 승희의 모든 농담에 일일이 다 맞장구 쳐 주고 고기 옮겨 주고 물수건이야 뭐야 챙겨주고 승희 화장실 갈 때 따라나서고 그러더라. 과장을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건지, 그렇다면 과장이 이 관계 그만하자는 말이라도 했던 건지, 점심 메이트를 자극하기 위해 그런 건지, 아님 제3자가 있었던 건지, 원래 본성이 그런 건지, 뜨밤을 보낼 새 먹잇감을 찾으려 한 건지 승희는 즐거워 보이더라.


그러다 신입 남자 직원 하나가 마이크를 들었거든? 막내로서 분위기를 띄워야 한다는 지령이라도 있었던 건지 '벅'의 <맨발의 청춘>을 부르더라고. 노래도 엄청 잘해서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는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승희가 옆에 서서 탬버린을 막 현란하게 치면서 약간 듀엣 같은 그림이 됐어. 이 노래 자체가 듀엣곡이잖아 ㅋㅋ 암튼 승희가 그렇게 서서 잘 노니까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승희한테 노래 한 곡 하고 들어오라고 막 부추기는 분위기가 됐지. 승희가 고른 노래는 무려... '채연'의 <둘이서>! 끼가 아주 넘치더라. 눈에 흐르는 그 색기하며 흐느적거리는 춤선하며... 풉.


나 혼자 속으로 완전 불안했잖아. 과장 얼굴이 막 붉으락 푸르락 하더라고. 여차하면 저 여자 나랑 자는 여자다!! 할 것 같더라니까? 결국 못 참고 한 마디 하더라, 지도 잘한 거 없는 주제에. 우리 승희 씨 잘 노시네~ 프로 같네요 아주! 이러고 엄지척하는데 일순 분위기 싸해졌잖아. 오히려 승희는 어깨 한번 으쓱하더니 자리로 돌아가 앉더라고. 승희가 상처받지 않아서 더 약올랐나? 과장은 계속 씩씩대면서 원샷하더라? 혼자. 뭐 이제 대놓고 티를 내야겠다는 거야 뭐야.. 내가 다 속이 타더라니깐 뭔일 생길까 봐. 다행히 더 이상의 불상사는 없이 자리를 파하고 거길 나왔어. 그 식당은 산자락 아래에 있었는데 미니 버스 서비스가 있었어. 사장님이 손님들을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태워 줬어. 근데 거기에 우리 인원이 다같이 못 타는 거야. 그래서 윗선들이 먼저 내려갔고, 우리같은 대리 평사원급들은 사장님이 두 번째 라운드에 태워 주시기로 했지.


과장은 먼저 차에 탈 수도 있었는데 한사코 양보해서 남더라? 승희랑 둘이 문자로 싸우고 있는지 하나는 저기에, 또 하나는 저기에서 폭풍 문자짓을 하더라고.


그렇게 남은 인원들도 다 지하철역 앞에 내렸어. 그 사이 무슨 사연이 생겼는지 미니 버스가 지하철역 앞에 정차하기가 무섭게 승희랑 맨발의 청춘이랑 둘이 호다닥 내려서 수고하셨어요! 하더니 거기 서 있던 택시 타고 휙 가버리더라. 나 순간적으로 과장이랑 점심메이트 얼굴 봤는데 황망함 그 자체더라. 과장도 혼자 택시 타고 가 버리고 가정 있는 사람들은 다들 바삐바삐 집에 가더라고. 나는 시간이 늦은 것도 아니고 집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술을 많이 마신 것도 아니어서 같은 방향으로 가는 친한 동기 하나랑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려고 하는 참이었는데 나랑 동기로 들어온 나이 많은 언니 하나가 한 잔 더 하고 가자고 하더라구. 점심 메이트도 같이. 그 둘은 대학교 선후배 사이였어.


그렇게 엉겁결에 넷이서 술을 마시게 됐는데 점심 메이트 화 많이 났더라구. 분명히 집에 가서 후회했겠지만 우리한테 다 털어놨어. 승희가 자기를 어떻게 꼬셨는지. 어느 회식날, 승희가 또 여우짓하느라고 숙취 해소제는 술 마시기 전에 먹어야 된다면서 자청해서 편의점에 다녀오겠다고 하더래. 그러면서 점심 메이트한테 같이 가실래요? 하더란다. 그렇게 둘이 편의점에 가게 됐는데 승희가 그러더래. 나랑 자고 싶지 않냐고. 나 오늘 너무 하고 싶은데 회식에서 눈치껏 나와서 둘이 한 판 하자고. 그래서 점심 메이트가 남친 없냐고 했더니 없다면서 똥파리 꼬일까 봐 있는 척하는 거라고 했대. 몸매 드러나는 원피스 입고 눈 똑바로 보면서 그러는데 당할 재간이 없더란다.


그래서 적당히 1차에서 나와서 근처 모텔에 들어갔대. 승희는 아주 능숙하게 '안 자고 쉬다 가요' 하면서 모텔비까지 자기가 내더란다. 그렇게 들어가서 한 판 아니라 몇 판 하고 각자 집에 갔는데 이후 승희가 한번씩 점심 때 콜? 이런 문자를 보내왔다는 거야. 그럼 누구한테 들킬까 봐 두근두근하면서도 지하주차장 제일 구석에 있는 승희 차에 가서 한 판 또 하고.


내가 2위썰 시작하면서 님포매니악 얘기했던 거 기억나? 난 승희가 좀 병적이었던 것 같아. 뭐, 난 전문가는 물론 아니야. 암튼 점심 메이트는 그거 외에도 진짜 내가 여기다 다 못 쓸 정도로 자세하게 털어놓더라구. 쌓인 게 많았나? 너 죽고 나 죽자였나 봐. 승희를 사랑하게 된 거겠지. 혹은 섹스의 달콤함을. 한 가지 기억나는 거는 포도 봉봉. 스친들 캔에 든 포도 봉봉 음료수 알아? 쌕쌕 오렌지 친구. 승희는 차에 포도 봉봉이 몇 개씩이나 상비되어 있대. 마시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물은 따라 버리고 그 안에 든 포도 건더기 있잖아. 그걸 자기 거기에 넣는 걸 좋아한다나. 그럼 남자가 ㅇㄹ을 해 주면서 그걸 보물찾기 하듯이 찾아서 먹으면 더할 나위 없이 흥분한다는 거야. 절여진(?) 포도 봉봉 많이 찾아 먹었다더라. 점심 메이트 걔는 어떻게 그런 얘기까지 우리한테 하게 됐을까? 지금 생각하니 신기하네.


말 나온 김에 점심 메이트가 해 줬던 얘기 중 하나만 더 공유할게. 한 번은 점심 메이트가 승희한테 물었대. 왜 자기한테 이러냐고. 사실 외모적으로 차이가 좀 컸거든. 승희는 누가 봐도 예쁜 편이고 잘 꾸미고 다니고 잘 놀게 생겼고 기도 세고 까랑까랑하게 지 할 말 다 하고 살 것 같아 보이는데 점심메이트는 글쎄.. 첫눈에 매력적인 사람은 분명 아니었거든. 그렇다고 힘 좋은 돌쇠 스타일은 또 아니고.. 좀 애매하고 특징없어 보인다고나 할까. 이 죽일놈의 솔직함을 장착한 승희는 기고만장하게도 이렇게 얘기했대. 하.. 좀만 덜 솔직하지 그랬어… 승희야 승희야 승희야!!!! 승희는 점심 메이트한테 차가 마음에 들었대. 점심 메이트는 더욱 의아했지. 점심메이트의 차는 그때 당시 젊은 남자들이 갖고 싶어하던 아우디 A4나 BMW Z4가 아니었거든. 쌍용차에는 코란도 시리즈가 있지. 2003년식 뉴코란도가 자기한테 딱이라는 거야. 우연히도 점심 메이트의 차는 하얀색 2003 뉴코란도였거든. 승희가 그러더래. 뉴코란도의 운전석에서 마주보고 앉은 자세로 자기가 위에서 할 때 가장 자기의 C를 깊숙이 자극한다나. 다른 차는 안된대. 딱 뉴코란도여야 된다고. 자기가 처음으로 본게임 중 O를 느꼈던 경험이었고 그건 전무후무한 느낌이었으며 순간 깊은 전율을 맛봤으며 이후의 자기 인생 모든 ㅅㅅ는 그날 그 뉴코란도에서 느꼈던 그 느낌을 되찾고자 하는 여정에 불과하다고. 그렇게 얘기하다 점심 메이트 낯빛이 어두워지더라. 보아하니 승희는 뉴코란도라면 늘 선사해줄 줄 알았는데 점심 메이트의 뉴코란도는 그게 아니라서 시들해졌나 봐 풉.


누군가에게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갈아넣어 맥시멈으로 즐기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였을 것이며, 누군가에게는 화끈한 애인의 럭비공같은 변덕에 마음 상했으면서도 자상한 남편을 연기해야 하는 괴리의 시간이었을 것이며, 누군가에게는 어느 날 신기루처럼 다가온 거짓말같은 행복이 지척에서 사그라드는 걸 목도하는 괴로움의 시간이었을 그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왔어. 평온함 속에 아는 사람만 느끼는 그 교차되는 시선들. 그야말로 소리없는 아우성이었지. 며칠 후 승희가 청첩장을 돌리더라. 똥파리가 꼬일까 봐 남친 있는 척한다던 승희. 그 말조차 여우 멘트였던 거야. 그 공사 다닌다는 남친과 날을 잡았다고 하더군. 결혼식은 5주 후. 유부남 과장은 자기도 떳떳치 못하니 아무 말 못한다고 쳐도 맨발의 청춘은 원나잇이라고 합의를 봤다고 쳐도 점심 메이트는? 얼마나 사람을 무시하면 한마디 말도 일말의 설명도 없이? 상처받은 점심 메이트는 흑화할 것인가.


승희는 행복해 보이더라. 인생 2회차인 건지 대범하기가 장군감이고 속에는 구렁이 백 마리쯤 살고 있을 것 같지만 그게 또 예쁜 얼굴에 싹싹한 성격까지 합쳐지니까 직접적 피해자가 아니라면 뭐 쟤는 저런 애.. 이렇게 용서가 되는 유형이랄까 훗. 여우꼬리 감추고 말갛고 맹한 얼굴로 순진함을 연기하는 것보단 오히려 낫단 생각도 들고. 지가 너무 당당하게 다니니까 저게 뭐 뒷배가 있나 싶어 되려 피해자들이 숨는 구조랄까 ㅋ 하긴 과장도 아니고 점심 메이트가 뭘 할 수 있었겠어. 남친이 있으면서 가지고 놀았던 거냐! 하고 분노할 순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뭘 할 수 있었겠어. 소문내서 쪽팔리게 할 순 있었겠지. 과장도 가정 깨고 너 죽고 나 죽자 할 마음이 아니라면 뭘 하겠어, 따지고 보면 지가 더 잘못한 상황이잖아. 역시 권선징악은 전래동화에나 나오는 얘기야.. 하던 차에 난 차후에 알았지만 남자 직원들끼리만 회식을 한번 했던가 봐.


금요일이었어. 우리 회사는 금요일엔 자율복장이었거든. 자율복장이라고 하니까 다른 날엔 뭐 교복이라도 입었던 것 같지만 쉽게 말해 청바지가 허용되는 날. 그래서 금요일엔 여자도 남자도 청바지를 입고 편한 복장으로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금요일에 승희는 세상 조신하게 에이라인 스커트에 베이지 블라우스 입고 왔더라공. 다들 어디 가? 한 마디씩 하니까 예비 시부모 만나러 간다고 하더라. 예비 시아버지가 교장 선생님으로 퇴직하신 분이라 조신한 스타일 좋아하신다면서 풉. 점심 메이트 빡 돌았는지 소심한 복수하더라. 점심 때 나가서 사 왔는지 미리 주는 결혼 선물이라면서 포도 봉봉 두 상자를 ㅋㅋ 승희 씨가 좋아하는 것 같더라면서 쟁여두고 마시라고. 두 상자가 많으면 하나는 예비 시부모한테 빈 손으로 가지 말고 가져가라고 하대 ㅋ 그때 난 알았지. 아 쟤도 만만치 않구나 뭔 사달이 날 수도 있겠다.. 전혀 엉뚱한 데서 끝이 났지만.


회식 자리에서 뭔 싸움이라도 났을까? 사람 사는 이야기가 어찌나 재밌는지 오히려 그 반대 ㅋㅋ 점심 메이트랑 맨발의 청춘이랑 절친됨. 동병상련이라도 느꼈나? 과장은 제 발에 저려 쉬쉬하며 살기로 작정했는지 회식에 가지도 않았고 점심 메이트랑 맨발의 청춘이랑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승희 얘기를 하다가 종국에는 성토장이 됐고. 문제는 세상은 생각보다 좁다는 거.


우리 회사에는 IT를 관리해 주는 외부업체가 상주해 있었어. 6층의 한켠, 통유리로 구분된 공간에 그 외부업체의 직원 5명이 일했지.


우리 회사 직원들은 아닌데 남자들끼리는 담배 피운다고 오며 가며 만나고 해서 다같이 친했나 봐. 그 IT직원들은 우리가 퇴근하고 나서도 늦게까지 회사에 남았었거든. 그들이 거의 8시쯤 퇴근하고 나서 회식에 합류했는데 그땐 이미 점심 메이트랑 맨발의 청춘은 취한 상태로 누구도 말릴 수 없이 한여름밤의 꿈같은 승희의 거칠고 낯선 유혹에 대해 썰을 풀어놓고 있었지. 그들도 못난 놈들..쯧. 딴사람들은 이게 웬 횡재냐 하며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겠지 뭐 안 봐도 비디오. 거기다 시간은 늦었지만 깊은 산 속 시냇물같이 맑은 정신으로 합류한 IT직원들은 더 팝콘각이었겠지 뭐. 대박인 것은 누가 받아 온 승희의 청첩장이 테이블 위에 있었는데 그걸 받을 일이 없던 IT 직원 하나가 무심코 그걸 봤고 XXX 씨의 삼남 OO군 부분에서 왓? 하며 멈칫했다는 사실.


승희 예비시부가 은사였고 부모와도 인연이 있어 그 직원의 부모도 같은 청첩장을 받았던 것.


과연~~?? 이 IT 용사는 승희 예랑의 조상신이었을까? 식 올리기 전에 억울한 혼들을 달래줄 수 있을 것인가? 세상에 인과응보란 게 존재하는가? 아님 그건 그저 한낱 억울한 사람들이 그나마 마음 붙잡고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 날조된 동화일 뿐일 것인가. 다행히 세상엔 아직 선이라는 게 존재해서 승희와 봉봉 이야기는 꽉 막힌 사이다 결말을 맺을 수 있을까. 갑툭튀 IT 직원에 의해 승희 예비 시부모의 귀에 승희의 바쁜 삶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들어가. 그 어르신들은 처음엔 다 믿지 않았겠지만 일단은 결혼식도 올리기 전에 예비 며느리한테 그런 구설이 있다는 게 반가운 일은 아니지. 그들은 아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아들은 충격을 받아. 승희 예비 신랑은 승희를 족치는 대신 며칠 잠수를 타. 지도 어째야 좋을지 몰랐겠지. 회사에도 이미 결혼소식을 다 알렸고 예식장이며 신혼여행도 다 준비됐고 웨딩사진도 찍었으니 어쩌겠어? 다 끌어안고 각서라도 받은 후 그냥 살아? 승희는 며칠 피폐해졌더라. 답답했겠지. 차라리 화라도 내면 어찌저찌 변명이라도 해볼 텐데 예비 신랑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그저 잠수. 예비 시부모도 승희 부모한테 전화해서 일단 올스톱하자고 한 후 전화를 피하기만 하고.


진짜 얘는 병인가? 싶었던 지점은 바로 여기. 승희 요년은 자숙(?)하는 대신 자포자기했던 건지 아님 진짜 병이라서 주체가 안됐던 건지 과장을 다시 만나기 시작해. 비빌 데가 거기 뿐이었나? 다시 티나게 둘이 왔다갔다하는데 진짜 진정한 미친년이다 싶어 간담이 다 서늘하더라니까. 쨌든 결론은 파혼이고 후에 들은 얘기로는 예비 신랑이 그래도 만나서 해결하려 승희 집 앞에 갔다가 승희 집에서 나오는 과장을 봤다는 말이 있더라. 과장 집에 집들이 갔다가 과장 아내랑 싸이월드 일촌 맺었던 팀원 한 명이 과장 아내한테 언질해 줘서 그집에도 알려짐. 승희 퇴사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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