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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chu Pie Aug 31. 2020

이게 레알 현실이다

비영리법인, 와 장난 아니구나

"도시락 지원을 멈추고, 기부금을 모두에게 돌려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이 일하던 비영리법인의 이사회의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Meal Forward라는 독자 법인을 설립하기는 했지만, 여태까지 모은 기부금의 사용 방법에 대해서는 계속 같이 의논하며 진행해 오고 있었다.  해당 비영리법인 명의로 모은 기부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단 몇 주 만에 7만 불 (약 8천4백만 원)을 돌파할 정도로 성공적이었던 캠페인을 도루묵으로 만들자니,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크게 세 가지 문제가 제기됐다.


1) COVID-19 상황이 좋아져 의료진들이 예전처럼 힘들지 않다.

2) Senior Center (노인 복지관)로 도움을 확대하기로 했다는 것을 사람들이 모른다.

3) 요양원도 힘들지만, 모금 당시에 이야기한 적이 없으니 기부금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1) 병원이 힘들지 않다

5월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COVID-19에 대한 이야기가 미디어에 언급되는 일이 확연히 줄어들었고, 이 즈음 음식점도 야외에서는 손님을 받을 수 있도록 바뀌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길거리에 나오기 시작했다.  Shelter-in-place (자택 격리)는 여전히 유지되었지만, 분명히 3, 4월과 비교해서는 긴장감의 차이가 있었다.  어디 어디 카페에 갔더니 간호사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한 시점도 이 즈음이다.  의사는 어차피 고소득자들인데 왜 음식을 가져다 바치냐, 라는 소리도 몇 단계 건너 들렸다.


물론 숫자를 보면 잘못된 사실이었다.  아직 미국 전역 일일 확진자 수는 2만 명을 넘고 있었고, 이는 초반 자택 격리령이 떨어졌을 때의 10배 수준이었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속도를 늦춘 적 없이 계속 증가세에 있었다.  검사 수가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는 안심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도 없었다.      


그래프의 완만한 경사가 "이제 끝났다"라는 착각을 일으켰다.


다만 병원 응급실이 꽉 찬 상태는 아니었다.  뉴욕의 난리통을 보고 캘리포니아 주정부에서 응급실을 빠르게 확충한 영향이 있기도 했지만, 그래도 분명히 "의사들, 간호사들 별로 힘들지 않네"라는 말이 나올 법했다.  다만, 응급실이 꽉 차야지만 의사 및 간호사가 힘든 건 아니었다.  구내식당이 늦은 오후에 문을 닫기 때문에, 밤샘조는 여전히 저녁부터 아침까지 쫄쫄 굶기 일쑤였다.  무엇보다도, 하루에도 몇십 명씩 죽어나가는 상황 속에서 정신적인 피로도가 극에 달해 있었다.  그 와중에 전달받는 도시락은 단순 음식을 넘어서 지역 사회가 보내주는 응원과도 같은 힘이 있었다.  문제는 사람들은 이런 것을 모르고 손가락질을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도 실체를 알 수 없는) '대중의 인식'에 따라 지원을 자의적으로 줄이거나 멈추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듣고 그것을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대중의 인식이 그렇다면 그나마 남아있는 의료진들의 박탈감은 더 할 것이고, 그럴 때일수록 우리의 지속적인 도움이 평소의 몇 배로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비영리법인의 이사회에서 치열한 논쟁을 주고받고 쓴 이메일의 일부분이다.  


일은 계속 진행하기로 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빨리 변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시선이 우리의 행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2) 내가 뭐라고 말했는가 vs. 사람들은 뭐라고 이해했는가

병원을 돕는 것을 목표로 한 1차 캠페인의 성공을 발판 삼아 2차 캠페인을 진행했었다.  그리고 확대 진행하는 만큼, 병원뿐 아니라 Senior Center (노인 복지센터) 및 Hunger Program (지역 급식지원센터)으로 그 수혜자의 범위도 늘렸었다.  


두 번째 문제 제기의 핵심은, 그러나, 그것을 사람들이 얼마나 알고 있겠냐는 것이었다.  솔직히 속으로는, '왜 이제 와서' 이걸 문제 삼는지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모금액의 행사권을 쥐고 있는 비영리법인의 이사회의 문제 제기이기 때문이다.

우선 2차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사용했던 GoFundMe 등 캠페인 페이지에 어떻게 쓰여 있는지, 분명히 Senior Center와 Hunger Program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지 전수 조사했다.  기업 후원을 받기 위해 활동했던 모든 멤버들을 다시 소집해, 연락 당시 사용했던 스크립트를 확인했고 실제로 Senior Center와 Hunger Program으로 확대한다는 말을 언급했는지 재확인했다.  몇몇 큰 손 기부자에게도 다시 연락해, 2차 캠페인을 통해 우리가 누구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지 잘 인식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오해의 소지는 있었다.  캠페인 페이지에 사용했던 사진은 의료종사자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억울한 부분이 있기도 했다.  의료진과는 달리, 노인이나 지역 급식센터 이용자분들은 개인 프라이버시의 문제로 사진을 찍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억울한 건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가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뭐라고 했건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뭐라고 받아들였는가가 중요하지.


인정하기 싫지만 맞는 말이었다.  사람들이 뭐라고 받아들였는지 확인이 필요해졌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  대신 몇몇 큰 손 기부자에게 확인해보기로 했고, 다행히 딱 한 명을 제외하고는 분명히 Senior Center 및 Hunger Program까지 확대해 도움을 주기로 한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다.


기부자가 예전에 올렸던 페북 포스팅을 증거로 삼기도 했다.


사람들이 모르고 후원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돈을 돌려줘야 할 수도 있다는 이사회의 일부가 던진 질문은, 위와 같은 전수 조사를 통해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말과 행동을 하든 그 해석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다양해질 수 있는지 절감하게 되었다.  


비영리법인을 운영할 때 기록을 남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3) 원칙 vs. 목적

후원하는 병원이 늘어나면서, 미디어로는 접할 수 없는 현장의 소식을 의료진들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중 가장 시급했던 소식 중 하나가 요양원들의 상황이 급격하게 안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코비드 병동에서 퇴원하는 노인분들은 대부분 요양원으로 향했는데, 이런 노인을 거부하는 요양원이 많은 게 문제였다.  요양원 입장에서는 한 사람이라도 확진자가 발생하면 문제가 심각해지기 때문에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갈 곳 없는 노인을 마냥 방치할 수도 없는 일.  이런 노인들은 결국 몇몇 좀 더 개방적인 요양원으로 몰리게 되었고, 이 몇몇 요양원에서 일하는 분들이 고생을 크게 더 많이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곳 요양원을 같이 돕자는 의견을 개진했는데, 이사회의 반대에 부딪혔다.  기부 캠페인 당시 요양원도 돕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의료진, 노인, 저소득층이라고 했다)


논쟁의 핵심은 원칙이냐 목적이냐였다.  우리가 하겠다고 한 것을 지키는 언행일치의 원칙을 지켜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그러나 애초부터 COVID-19으로 인해 힘들어진 사람들을 돕는 것이 취지였고, 상황이 변해 지금은 요양원에 계신 분들이 엄청 고생하시니 이분들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이 대립했다.  


언행일치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남으로부터 위탁받은 기부금을 행사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 원칙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만 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칙이란 것을 세운 시점과 그것을 지켜야 할 시점의 상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영리법인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내뱉기에는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었다.


원칙은 중요하지만, 그것을 따르는 것이 때로는 더 편한 결정일 수도 있습니다.  
목적은 당위적이지만, 그것을 중요시하는 것이 때로는 더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목적이 있는데 이미 뱉은 말보다 크다면, 이미 뱉은 말에 맞춰 그 목적을 축소할 것이 아니라 목적에 맞춰 이미 뱉은 말을 수정하고 이해시킬 일이었다.


전자는 쉽지만 의미가 약해지고, 후자는 의미를 지킬 수 있지만 번거로운 일이었다.  나 같은 경우 후자를 강하게 밀어붙였는데, 그것이 더 번거로운 길이라는 측면에서 한 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했다.  대개는 쉬운 길을 택하고 싶기 때문이다.  언행일치라는 원칙은 이 경우 (드물게도) '쉬운 길'이었고, 그 쉬운 길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 모든 일들을 가볍게 대하고 있지는 않다는 반증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리라.


치열한 논쟁 후, 우리의 취지에 동의하는 기부자의 기부금만을 사용해 요양원에 도시락을 제공하기로 합의를 봤다.  가치 있는 논쟁 뒤, 훌륭한 절충안이자 결론이었다.  기부자들에게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수고가 따랐지만, 어차피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감수해야 할 숙제와도 같은 일.  다행히 몇몇 큰 손 기부자들의 이른 허락을 받고 재빠르게 기부금의 일부를 요양원을 위해 할당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약 1,000인 분의 도시락이 요양원 용으로 확보되었다.

 




이번 이사회와의 뜨거운 논쟁은 비영리법인을 운영한다는 일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좋은 계기였다.  행동은 하나이지만, 그 해석은 수 백가지가 될 수 있다는 점.  마치 예방 주사 맞듯이 한 대, 빵! 하고 맞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들어 본 비영리법인을 둘러싼 어이없는 오해와 선입견이 하나하나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경력이 단절된 여성(경단녀)을 돕기 위한 비영리법인을 보고 "왜 자기가 쉬었는데 우리가 도와줘야 하냐"는 사람도 있고, 아프리카의 저소득층 자녀를 돕는 단체를 보고 '기독교 선교활동'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는 세상이다.  우리가 사는 곳은.  좋은 피드백과 단순한 비방이 뒤섞여 있는 바로 그곳.  


혼란이 당연한 엄연한 현실이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처음 싸운 날, 아니면 막 태어난 첫째를 처음 안아본 날과 비슷했다면 비약이 심하려나.  아프고도 신비로운 그 현실 세계가 시작됐다는 것을 절감했다.


'아, 이게 장난이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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