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하면 재미있을까?

난 오늘도 부모님과 놀기로 했다.

by 문학소녀

아이들 키울 때는 몰랐는데 다 키우고

나니 요즘 제일 많이 드는 생각이다.

큰아이 독립과 함께 작은 아들도 군대

보내고 나니 내할일이 없어진 거다.

24년을 육아 전쟁에 애들 챙기고 살

림만 평생 해 오다가 일이 뚝 끊긴 기

분이 드니 처음에는 좋은 지도 모르

겠고 허전하기만 했다.


아이들이 없으니 밥 할 일도 없고 늘

챙겨주던 간식 챙길 일도 없었다.

잔소리할 일도 없고 빨래도 3분의

1로 줄었다.


주변에서 아직 아이를 더 키워야 하는

지인들은 내가 제일 부럽다고 하는데

정작 나는 기쁠 줄 알았는데 허전했다.


독거체험을 미리 예행연습이라도 하

는 사람처럼 혼밥을 할 때가 많았고

하루에 반을 아이들과 조잘거리다가

대화 상대조차 없었다.


남편은 여전히 바쁘고 7시에 출근해

10시 넘어올 때가 많았다.


주변 지인들은 그래서 간호조무사, 사

회복지사, 어린이집 보육교사등 자격

증을 따 돈을 벌러 나갔다.


"자기야, 애들 다 키우니 나도 심심한

데 돈이나 벌어 볼까?"

했더니 남편왈

"당신은 아프지 않은 게 돈 버는 거야

괜히 일 다닌다고 무리라도 해 아프면

버는 것보다 병원비가 더 나온다"

하며 만류를 한다.


벌어 오라고 하는 것보다 말이라도

저리 해 주면 행복한 건데 요새 내가

갱년기로 인해 감정 기복이 크다 보

니 기분이 나빴다.


표현을 내비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내가 기저질환이 있어서 아플 때마다

병원 다니며 결국엔 돈을 많이 썼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정 무료하면 뭐라도 취미 생활을 가

져 봐 살면서 당신이 해 보고 싶었던

거 찾아서..."


"내가 해 보고 싶었던 거??"


그때부터 나의 고민은

"뭘 하면 재미있을까?"였다.


노는 것도 너무 오래 쉬다 보니

막상 판을 깔아 주니 생각이 안 났다.


12살 때 엄마한테

"엄마, 나 미술 학원 다니고 싶어요"

태어나서 처음 졸랐는데 등짝 스매

싱을 당했다.

"우리 형편에 그럴 여유가 어딨 냐"

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제일 처음으로 화실에 등록

했다.

뭔가 제대로 그림을 배워 보고 싶었

다.


유튜브를 보다가 줌바댄스를 시청

하는 데 재미있어 보였다.

운동은 구청에서 하는 헬스를 조금

다닌 게 다 인 나,

워낙 운동하기를 싫어한다.

뭔가에 홀려 두 번째로 등록한 게

줌바댄스이다.


아침에 줌바를 다니니 아침 루틴이

생겼다.

뭔가 처음으로 나만을 위한 규칙적

인 일상이 생긴 게 좋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미술 학원에 가

그림을 그리며 노는 것도 재미있다.


하루가 그렇게도 길고 지루 하더니

이젠 하루가 재미있어졌다.


구청에서 하는 문화센터는 가격도

착하다. 그래서 캘리도 시작했다.


그림을 접목해서 글을 이쁘게 쓰

는 방법을 배우니 딱 내가 좋아하

는 스타일의 배움이었다.


틈틈이 시도 쓰고 이런저런 상상

놀이를 하며 소설도 끄적이고 일상

속에서 경험한 일들을 바탕으로 수

필도 습작한다.


무료했던 나의 일상이 다시금 풍성

해 졌다.

홀로 먹던 혼밥들이 외롭기만 했는

데 일상이 행복해지니 혼밥 먹는 것

도 외롭지 않다.


주변에서 표정부터 밝아졌다는 소리

를 자주 듣는다.

내가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일들을

찾아서 즐기니 그런가 보다.


평생 살림하고 아이들 키우고 살아

온 내게 주는 특별한 보너스라고

생각하며...


뭘 하면 재미있을까?

일주일에 한 번은 부모님과 꼭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평생 자식 위해 애쓰신 부모님을 위해

나의 시간을 나눔 해 드리는 것도 내

겐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이다.


부모님과는 맛집탐방 중이다.

맛난 점심을 사 먹기도 하고 이쁜 카

페를 다니기도 한다.


엄마가 수영을 좋아하셔서 10년

정도 수영을 다니셨다.

엄마는 그렇게 갱년기를 이기며 삶에

행복을 누리시고 계셨는데..


2016년에 내 병이 다시 재발하면서

다 올 스톱하고 큰딸 병원 쫓아 다니

시며 세월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내 마음에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늘 있는 것 같다.


"엄마, 이제 다시 수영 다니는 건

어때? 엄마 수영 반장도 할 만큼

좋아하고 열심이셨는데 그때 나

때문에 못 다닌 거지?"


"나이 70 넘어 뭔 수영이냐 이렇게

너랑 산책 다니는 게 더 좋아 가끔

자유 수영이나 다니지 뭐"


"내가 미안해서 그러지.. 엄마가

제일 하고 싶어 했던 수영이었는데

엄만 단절시키고 나만 여기저기

뭐 배우네 다니는 게.."


"괜찮아! 엄마도 네가 예전에 그림

배우고 싶다고 할 때 학원 못 끊어

준 게 평생 미안했는데 너 요새 그

림 그리러 다니는 거 보니 내가 더

기분 좋다"


그림이 한 작품 한 작품 완성 될 때

마다 마음에 드는 작품을 달라시는

엄마


엄마네 집, 거실 한쪽에는

인영이 표 미술 전시장이 생겼다.

동생들은

"언니, 이제 그림 좀 그만 보내"

하지만 엄마는

"좋은 그림 보니 좋구먼 너 왜 언니

한테 뭐라 하냔다"


"엄만, 뭘 하면 재미있어?"

"난 너네랑 노는 게 제일 재미있어"


그래서 난 오늘도

부모님과 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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