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꽃길만 걷자
"생존율 10% 미만입니다
길어야 6개월...
더 짧을 수도 있어요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제부는 그냥 감기가 오래가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개인병원에서 큰 병원을
가라고 권유했고 대학병원에서
알게 된 병명은 낯선 이름의 소세
포암이라고 했다.
그때 조카 나이 13살,
내 동생나이 39밖에 안 되었다.
제부나이도 39살,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내 동생은 다리가 풀려
한참을 주저앉아 병원 복도에서
울었다 했다.
13살에 아버지를 보내며 어린
조카가 상주가 되었다. 내 동생은
서른아홉에 혼자가 되어 어린 아들을
홀로 키워냈다. 어린 조카는 또래
아이보다 철이 너무 일찍 든 애어른
같았다.
항상 밝게 웃고 있지만 왠지 어른들
눈에는 늘 우수에 찬 아이의 모습이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 엄마부터 나, 그리고 온 식구
가 합심하여 동생이 힘들어할 때
마다 동생 곁에서 서포트 해 주었다.
우리가 그 아이를 위해 해 줄 수 있
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함께 으싸! 으싸! 해 주는 것.
나는 조카가 14살부터 고등학교 졸업
할 때까지 내 아이들이랑 똑같이 매달
10만 원씩 용돈을 주었다.
그렇게나마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
던 것 같다.
동생을 보면 늘 안쓰럽고 기특하다.
조카가 며칠 전에
"나는 결혼 안 하고 엄마랑 단 둘이
살게! 그래야 엄마가 외롭지 않지!"
라고 했다며 엄마가
"어린 게 벌써부터 마음의 짐을 지고
사나 보더라"
하셨다.
걱정하시는 엄마를 위해
"애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덕을
부려 엄마, 너무 심각하게 받아 들이
지 마셔요"
그리고 조카한테 톡을 보냈다
"ㅇㅇ야! 너는 너의 인생을 살고
엄마는 또 엄마의 인생을 살게 해
야지 엄마가 좋은 분도 사귀게 틈
도 주고.. 네 엄만 이모가 든든히
지킬게 벌써부터 그런 말 하지 말
아라"
"이모, 사랑해요 늘 제게 큰 힘이
되어 주셔서.."
13살 꼬맹이가 이제 21살이 되어
더 어른스러워 졌네~
사랑하는 내 동생.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조카
늘 꽃길만 걷자! 그동안 너무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