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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세살이 Apr 02. 2018

공무원 그만두고 여행중인 30대의 성찰기, 폴란드편1


우리는 2017년 5월 중순부터 

한 달 동안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머물렀다.


집단의 광기에 마비된 인간의 추악함을 볼 수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물론이고,

독일군에 최대 규모로 대항했지만

그만큼 참혹했던 바르샤바 봉기의 흔적들도

폴란드를 여행해야 하는 이유로 충분하다.


뿐만 아니라

5월과 6월의 폴란드의 날씨는 완벽하다.

그 찬란한 날씨를 온전히 누릴 수 있었던

때 묻지 않은 산과 호수도 여전히 생생하다.


봄 한복판에서의 폴란드 여행은 행운이었다.



돌이켜 보면,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을

제대로 즐겨본 적이 없었다.


분명 한국에서도 5월은 찾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사무실의 작은 창문을 통해서,

또는 주말 결혼식을 가는 길에서나

잠깐씩 5월이 왔음을 느낄 수 있었을 뿐이었다.


바르샤바의 넓고 한적한 공원들은

따사롭게 기분 좋은 5월의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이다.


사실 반드시 바르샤바가 아니라 해도

우리가 어디에 있든

5월에는 마땅히 선물 같은 햇살을 즐겨야 한다.



폴란드의 물가는 꽤 저렴하다.

아보카도, 석류, 바나나, 

소세지, 파프리카 같은 식재료를 포함해서 

잔뜩 장을 봐도 2만 원 대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서유럽에 비해 외식비도 상대적으로 저렴해서

폴란드식 만두인 피에로기 같은 전통 음식을 

음료와 함께 만원 이내에 충분히 먹을 수 있다.

우리 같은 여행자들에겐 참 감사한 곳이다.


하지만 깨진 휴대폰 액정을 수리하는 비용은

서울이나 바르샤바나 똑같더라.



바르샤바 구시가지 광장은

폴란드 여행자라면 누구나 찾는 핵심 장소다.

바르샤바 왕궁 같은 수도의 상징을 비롯해서

쇼팽의 심장이 묻혀 있다는 성당도 있다.


사실 바르샤바는

1944년 바르샤바 봉기 등에 대한 보복으로

독일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바르샤바 봉기 박물관에 방문한다면

그때의 처참한 모습을 3D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전쟁 이후 바르샤바 시민들은

남아 있는 잔해와 사진 자료들을 참고해서

당시의 도시를 완벽하게 재건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까지 등재시켰다.


건물과 주택들은 재건되어

바르샤바를 찾는 여행자는 

그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전쟁에 희생된 20만 명의 바르샤바 시민들은

영원히 그들의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전쟁의 폭격 속에서도

제 모습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 건물이 있는데

바르샤바 외곽에 있는 빌라노프 궁전이다.


빌라노프 궁전은 참 예쁘다.

아담한 크기의 궁전은 연노랑색이 잘 어울린다.

궁전 뒤로는 꽤 큰 크기의 호수도 있어서

이곳에서 살았던 귀족들의 삶을 동경하다가도,

그들 역시 궁전 안의 초상화 정도만을 남긴 채

지금은 땅 속에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쓸쓸하다.


이 예쁜 곳을,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들은

자신들의 사무실과 병원으로 사용했고

그 때문에 폭격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지금까지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바르샤바 시내에 있는 와지엔키 공원에서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

숲과 나무들 속에서 휴식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공원 안 호수에서 노 젓는 보트를 타거나

특정 기간에는 무료 쇼팽 음악회도 볼 수 있다.


공원에서 살고 있는 다람쥐들은 낯을 가리지 않아서

사람들이 주는 견과류를 잘 낚아채 간다.

견과류를 주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있는 우리에게

아몬드 몇 알을 주신 폴란드 아저씨 덕분에

우리도 폴란드의 다람쥐들과 교감할 수 있었다.


공원에는 공작도 몇 마리 살고 있다.

우리가 본 공작은 무슨 사연이 있는 것처럼

물가에서 하염없이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 그 공작의 뒷모습이 아련히 생각난다.



바르샤바에서 우리가 한 달간 머문 곳은

에어비앤비를 통해 빌린 작은 원룸 아파트였다.

폭스바겐 미니버스를 좋아하는 것이 분명한

집주인의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곳이었다.


집주인은 일 때문에 다른 도시에 있어서

사실상 한 달 동안 우리가 주인 행세를 했다. 

이웃들과 인사하고, 

테라스에 찾아오는 새들에게 빵을 줬으며,

정기적인 가스검침을 받고 사인을 했다.

물론 집 청소와 분리수거도 우리 몫이었다.


전기 퓨즈가 나갔을 때에는 우리도 어쩔 수 없어

집주인에게 연락했더니 건장한 친구를 보내 주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퓨즈를 갈아준 그를 위해

맥주를 건네주었을 때,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며

한사코 거절한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숙소에서 바르샤바 구시가지로 

걸어가는 중간쯤엔

조용한 놀이터가 하나 있었다.

우리는 그 곳 벤치에 앉아 

물을 한 모금씩 마시면서

잠시 숨을 고르며 쉬어 갔다.


이 놀이터는 어느새 우리의 단골 쉼터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가는 명소를 방문하는 것도

즐거운 여행의 방식 중에 하나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함께 하는 사람과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라면

그 곳 역시 우리만의 명소가 될 수 있다.


오랜 기간 머무르는 여행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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