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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세살이 Mar 29. 2018

공무원 그만두고 여행중인 30대의 성찰기, 독일편(2)


우리 방을 칠흑 같은 암흑으로 만들어 주던

유럽식의 무거운 암막커튼을 걷어내면

기분 좋은 파란 하늘이 우리를 반겨준다.


속이 다 시원한 큰 창문을 통해 

방에 앉아 하늘과 구름을 실컷 볼 수 있다.


4월부터 10월까지,

이때의 유럽 대륙은 햇살로 가득하다.

깨끗한 하늘은 언제 봐도 지루하지 않고,

각양각색의 구름들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곳에서는 파란 하늘이 일상적인 일이지만,

한국에서 온 나는

그것이 분명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독일의 소세지와 돼지족발은 아주 맛있지만,

여느 여행처럼 모든 끼니를 

밖에서 해결할 수는 없었다.

독일의 외식비는 비싸다.


우리는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와 밥을 해 먹었다.

한국에서 구해간 2인용 밥솥으로 한 밥이나,

간단한 파스타 요리에

현지의 식재료로 만든 반찬들을 곁들이면

우리만의 훌륭한 밥상이 된다.


독일의 외식비는 비싸지만 

식재료는 저렴하다.

특히 싸고 싱싱한 과일과 야채를 먹는 건

지금도 여전히 즐거운 일 중의 하나다.



예상보다 이르게 치러진 대통령 선거로

한 표 행사를 위해 프랑크푸르트에 방문했다.


프랑크푸르트는 

여느 대도시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기차역과 숙소 근처의 많은 걸인들과

정돈되지 않은 거리는 

우리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숙소에서 만난 어떤 분은

골목길에서 마약 주사를 

놓는 사람을 봤다고 했다.


만약 이 시점에서 

내가 프랑크푸르트를 떠났다면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그곳을 

안 좋은 이미지로만

소개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투표를 마친 후, 

잠시 시간을 내 돌아본

프랑크푸르트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인강을 따라 형성된 도시는 아름다웠고,

마침 광장에서 펼쳐지고 있던 

퍼레이드도 흥겨웠다.


누군가를 평가하는 일은,

정말로 조심스러워야 한다.



에를랑겐 숙소 호스트인 쟈넷과 디온은

사진 속 마을에 살고 있는 부부다.

부인인 쟈넷은 

아디다스에서 일을 하고 있고,

남편인 디온은 

집안일과 자녀들을 책임지고 있다.


감사하게도 그들은 

우리를 저녁식사에 초대했고,

생애 처음 외국인의 집에서 

라자냐를 먹으면서

어설픈 영어로 꽤나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남편인 디온이 나에게

한국은 어떤 곳인지 

설명해 줄 수 있냐고 물었을 때,

나는 잘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상투적인 한강의 기적 정도를 언급했다.


내가 30년이 넘게 살았던 곳을

누군가에게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정리되어 있는 생각이 없었다.


그 일은 아직까지도 

마음 속 짐으로 남아 있다.



호스트인 쟈넷은 또한 감사하게도

자신의 근무지인 

아디다스 본사를 견학시켜 주었다.

넓은 부지에 산재해 있는 

여러 독특한 건물들이

마치 대학 캠퍼스를 연상시킨다.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업무에 열중하고 있었다.


쟈넷은 아디다스가 

저개발국 아이들을 대상으로

후원과 기부를 꾸준히 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스포츠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고 이야기했다.


공공의 역할과 민간의 역할의 구분은

더 이상 큰 의미가 없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참고로, 아디다스 본사 내에서는

나이키나 퓨마 운동화를 신을 수 없다.



에를랑겐 근처에는 

한두 시간 내에 다녀올만한

매력적인 곳들이 제법 있다.


뉘른베르크의 고풍스러운 성과 손가락 소세지,

밤베르크의 물 위의 시청사와 훈제맥주,

레겐스부르크의 천 년 역사의 소세지 가게,

로텐부르크의 슈니발렌과 조마조마한 전망대 등이다.


그 중에서도 나는 뷔르츠부르크가 가장 좋았다.

사진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요새 위에서 바라본 그 곳의 풍경은

낭떠러지인 성벽에 커플이 걸터앉아 

키스를 할 수밖에 없는 그런 풍경이었다.


강 위 작은 다리에서 마실 수 있는 화이트 와인은

술을 잘 못하는 나에겐 과분한 것이었다.



우리 숙소는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이어서

시내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만 다녔다.


소음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저 낮은 집들과 

파란 하늘이 보이는 정류장에 앉아

아내와 함께 버스를 기다렸던 일 역시 

소중한 추억이다.


이렇게 우리는

독일에서의 한 달 살이를 마무리하고

폴란드를 향해 오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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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글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며칠 후 폴란드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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