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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세살이 Mar 26. 2018

공무원 그만두고 여행중인 30대의 성찰기, 독일편(1)

7년간 있었던 공직을 그만 두었다.

행정고시 패스는 분명 큰 기쁨이었고,

사무관 생활은 때때로 보람과 긍지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조직의 희로애락에 휩쓸리는 존재였다.

10년, 20년 후의 나의 모습이 뻔히 그려졌다.

33년간 나는 그렇게 누군가의 틀 속에서 살아왔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 주위의 소중한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지금 이대로라면 영영 알 수 없을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에서부터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을 찾아보고 싶었다.

지금의 아내인 당시의 여자친구는 정말 고맙게도

전적으로 동의해 주었고, 역시 직장을 그만 두었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식을 치렀고, 

남아 있는 3천만 원을 가지고

한 달에 한 도시에 머무르는 느린 여행을 시작했다.

모든 숙소는 에어비앤비를 이용하기로 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독일이었다.


현재 11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이 여행은,

나를 성찰하고 타인을 이해하게 해주는

소중한 순간순간들을 아낌없이 선사하고 있다.



그래도 명색이 신혼여행인데

일단은 5일 동안 뮌헨의 좋은 호텔에서 먹고 놀았다.

호텔 옆에는 영국정원이라는 큰 공원이 있었다.

여의도 공원의 16배 크기에 숲과 나무가 가득하다.


영국정원에서 뮌헨 사람들은 너도나도 조깅을 한다.

이곳은 사람을 쉬게 하고, 뛰게 하고, 어울리게 한다.

푸르른 공간이 주는 힘이 부드러우면서도 압도적이다.


그 힘에 이끌려 이곳에서 조깅에 도전한 나는

4도의 날씨에 길을 잃고 한 시간을 벌벌 떨었다.



뮌헨에서 바이에른 뮌헨의 경기를 지나칠 수 없다.

경기장에서 만난 한 독일 아저씨의 말로는

뮌헨뿐만 아니라 독일 전역에서

바이에른 뮌헨의 축구를 보러 온다고 한다.


독일인들은 축구를 볼 때도 상대적으로 차분하다.

다만 이 사람들도

뮌헨과 도르트문트 매치에서는 꽤나 흥분하더라.


정말 아쉽게도 내가 본 두 경기에서

그 강력한 바이에른 뮌헨은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뮌헨을 떠나 독일의 소도시 에를랑겐으로 향했다.

우리가 한 달간 머무를 첫 여행지였다.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이라 모든 것이 긴장됐지만,

가장 큰 걱정은 처음 이용해보는 에어비앤비 숙소였다.


현지인의 집에서 장기간 머무르는 일은

분명 크고 작은 문제들의 연속일 것이다.

이런저런 우려 속에,

우리가 빌린 녹색 방 한 칸과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독일에 우리의 첫 집이 생겼다.

이곳은 한 달 동안 우리의 소중한 보금자리가 되었다.

걱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에를랑겐은 독일 바이에른주의 작은 도시다.

관광지로 알려져 있는 도시는 아니지만,

이 곳 역시 유럽의 여느 도시처럼

광장이 있고 성당이 있고 구시가지가 있다.


꽤나 큰 규모의 대학이 있고, 

아디다스, 퓨마, 지멘스 같은 기업의 본사도 있다.

숙소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푸른 들판이 나온다.

한적하고, 평화롭다. 가끔 양치기가 양떼를 이끈다.


해외여행에서 관광지가 아닌 도시를 방문하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짧은 일정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모든 도시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과감하게 하루 정도는, 그 누구도 모르는

나만의 도시를 만나러 가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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