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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세살이 Feb 10. 2019

공무원 그만두고 여행중인 30대의 성찰기, 터키편2

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이라는

좁은 해로를 사이에 두고

유럽에 속하는 구역과

아시아에 속하는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아무래도 여행자들은 주요 관광지가 몰려 있는

유럽 지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우리는 한 달 동안 이스탄불에만 있었기 때문에,

바다 건너 아시아 지구에도

종종 방문할 시간이 있었다.

이스탄불의 아시아 지구에는

쳉겔쾨이(Cengelkoy)라는 지역이 있는데,

이곳에 간 이유는

특이한 컨셉의 찻집이 있다는 말을 들어서였다.

차 한 잔만 주문하면,

외부에서 가져온 음식을 먹어도 된다고 했다.

게다가 찻집은 바다 바로 옆에 있어서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몇 개의 빵을 들고 그 찻집을 방문했다.

소문대로 그곳은 차를 한 잔만 시켜도 됐고,

외부 음식이 허용됐고, 바다 바로 옆이었다.

하지만 그 소문이란 것은

우리에게만 독점으로 전달된 것이 아니었던지,

찻집은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로부터 필연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소음으로 가득했다.

바다와 마주한 명당자리에는

먼저 온 이들로 이미 만석이었고,

우리가 즐기고 싶었던 여유를

그들이라고 즐기고 싶지 않을 수는 없는지라

테이블이 비기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었다.

겨우 얻어낸 실내의 좁은 테이블에서

터키식 홍차와 함께 식사를 했지만

오래 앉아있을 분위기는 아니었다.


조금 아쉬운 마음으로 찻집을 나와 주변을 걸었다.

찻집과 멀지 않은 곳에

바다와 접해있는 작은 공터가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분주하게 낚싯대를 던지고 당기는

열 명 남짓의 낚시꾼들과,

그 뒤에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다섯 마리 남짓의 고양이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낚싯대를 물 밖으로 끌어 올릴 때마다

피라미처럼 생긴 작은 은빛 물고기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의 낚싯대마다 일고여덟 마리의 물고기들이

낚싯바늘에 걸려 올라오는 것 같았다.


사실 이스탄불에서 낚시꾼들을 만나는 건

아주 흔한 일이다.

바다 옆 항구에서건, 바다 위 다리에서건

사람이 서 있을 한 뼘의 공간만 있으면

그들은 자리를 잡고 낚싯대를 던지는 듯 했다.


쳉겔쾨이의 찻집 옆 공터에서 목격한 그들도

그런 흔한 이스탄불의 낚시꾼들로 보였다.

그런데 그 공간을 조금 지켜보고 있으니

특이한 점이 있었다.

낚시꾼들은 잡은 물고기 중 하나를

반드시 뒤편 고양이들을 향해 던져주었다.

고양이들은 그 물고기를

앞발로 툭툭 치며 잠시 갖고 놀다가

입에 물고는 꼭꼭 씹어 먹었다.


그런 장면들이 익숙한 듯 계속 반복됐다.

물고기를 잡아 고양이에게 던져주는 사람들도,

그 물고기를 받아들이는 고양이들도

언제나 그랬던 일인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열 명의 낚시꾼들과 다섯 마리의 고양이들이

공존하고 있는 이 공간을 바라보면서

나는 상상했다.


사실 이 공터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였다.

어느 날 굶주린 사람들이 고양이들을 찾아와

이곳에서 낚시를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고양이들은 자신들에게도

이득이 되는 방안을 고민했다.

고양이들은 사람들의 낚시를 허락하는 대신,

그 대가로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을 때마다

그 중 한 마리씩을 자신들에게 보상하도록

요구했던 게 아닐까하는, 그런 상상.



여행을 하다보면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나의 나라에서는 좀처럼 생각하기 어려운

독특한 공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이 독특한 공간이 갖고 있는 낯선 요소들은

내가 익숙한 공간에서는 쓰지 않았던

감각들을 자극한다.

무엇보다 그 감각들은 무던하고 차분했던

나를 움직여 상상하게 만든다.


우리와는 다른 지형, 종교, 제도, 문화를 갖고 있는

터키의 이스탄불은 우리를 상상하게 만드는

독특한 공간들이 넘쳐 났다.


이스탄불에서 페리를 타고 갈 수 있는

헤이벨리아다(Heybeliada)라는 섬도

그러한 공간 중 하나였다.

숙소 호스트의 남자친구인 칸(Kahn)이 추천해 줘서

알게 된 헤이벨리아다는

오스만제국 시절 왕족이나 귀족들의

유배지로 쓰였던 4개의 ‘왕자의 섬’ 중 하나다.


나와 아내는 자전거를 빌려 타고

헤이벨리아다를 돌아다녔다.

생각보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많아서

뜻하지 않은 체력훈련을 하게 됐지만,

자전거를 타고 직접 달린 곳들은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정이 들었다.


사실 이 섬에서도 나를 상상하게 해준 건

고양이들이었다.

사람에게는 유배지였던 이 작은 섬은

고양이들에게는 마치 유토피아처럼 보였다.

녀석들은 테이블이건 자전거건

어디든 올라가 햇볕을 즐겼고,

주민들은 고양이들을 찾아다니며 밥을 주었다.


아마도 한국의 길고양이들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다양한 고양이들이

터키의 어떤 섬에 

고양이들의 유토피아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곳 헤이벨리아다로 오기 위해

몰래 배를 타고, 천신만고 끝에 국경을 건너고,

그러면서 사랑과 배신과 우정이 가득찬

모험을 펼치고 있지 않을까하는, 그런 상상.



공간은 너와 내가 다름을 알려주기도 한다.

사람이 환경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는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그것은 정도나 비중에 대한 논쟁일 뿐

우리는 많든 적든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영향을 받게 된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속해 있는 공간의 특성은

우리의 행동과 생각으로 어떻게든 발현된다.


비슷한 모양으로 빼곡하게 들어찬 아파트와 빌라,

도시를 가로지르는 한강과

도심 속 곳곳에 자리한 산들,

그리고 대로를 달리는 차들을 바라보는

서울의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과,

가지각색의 낡은 주택들과

골목을 돌아다니는 고양이들,

좁은 해로를 끊임없이 왕복하는 수많은 페리들과

도심 곳곳에 위치한 이슬람 사원들을 바라보는

이스탄불의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분명 어떻게든 다를 것이다.


불과 70여 년 전에 민족 내부의 전쟁을 겪고,

그로 인해 그어진 선 때문에

물리적 영토 뿐 아니라

생각의 경계도 확장되기 어려운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생각과,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종교적 가치가 삶 속 깊숙이 뿌리내려 있는,

이웃 나라의 불안정한 상황으로 여론이 분열되고

그리 멀지 않은 최근에 테러라는

실제적 공격과 위협을 겪은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생각은,

분명 어떻게든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여행을 통한 새로운 공간에의 소속은

잠시나마 여태껏 내가 생각해왔던

방식의 한계를 느끼게 해 주고,

더불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을

깨닫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그게 가능하다면,

그것만으로도 여행은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현지인이 살고 있는 집도

우리에게는 낯설고 독특한 공간이었다.

우리가 이스탄불에서 한 달간 머무른

푼다(Funda)의 집은 작은 방 세 개, 작은 주방 하나,

좁은 복도, 그리고 넓은 거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문기관에서 수면을 연구하는 그녀는

직업의 특성상 일주일에 3일을

밤새 일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집에 있을 때면 주방에서는 언제나

2층으로 된 터키식 홍차 주전자가 끓고 있었고,

우리는 농도를 조절해 가면서

차를 마시는 방법을 배웠다.

그녀는 바쁜 와중에도 직접 차린 두 번의 식사에

우리를 초대해 주었고

그 식사 자리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그녀의 남자친구인 칸(Khan)도 만날 수 있었다.


한 번은 아침 식사였는데,

터키인들은 아침 식사를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과,

아침에는 시밋(Simit)이라는 터키 전통빵,

터키식 토마토계란볶음인 메네멘,

터키말로 '로카'라고 불리는 루꼴라,

싱싱한 치즈와 올리브, 아몬드와 꿀,

그리고 무한대의 홍차 등을

먹는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도 우리는 가끔 비슷한 방식으로

아침 식사를 하면서 이스탄불을 생각한다.


7시쯤 시작된 저녁 식사에서는

이스탄불의 바다에서 잡히는 생선 요리를 먹으며

새벽 한 시까지 대화를 나눴다.


지금 생각해보니,

터키인 두 명과 한국인 두 명이 식사를 함께 하는

이스탄불 어떤 집의 거실이라는 공간이

우리에게만 낯설었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푼다와 칸은 우리와 한국에 대해

궁금한 것들이 많았고,

한국의 식사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혹은

한국인들은 직접 투표를 할 수 있는지와 같이

우리에게는 특별한 일이 아닌 것들에도

큰 관심을 보이면서 귀를 기울였다.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한국과는 스타일이 많이 다른,

터키에서 유명하다는 가수의 노래를 들었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가 보여준

빅뱅의 판타스틱 베이비 뮤직비디오를

그들은 이해해보려 노력했다.



낯선 공간은 우리를 상상하게 하고,

우리를 돌아보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타인을 이해하게 한다.


여행이라는 것이 반드시 어떤 성찰이라는 것을

가져다주지는 않겠지만,

평소에는 알 수 없었던 낯선 공간은

그 가능성을 조금은 높여주지 않을까.


그리고 낯선 공간에서

새롭게 발견한 나의 감정들은

어쩌면 내가 여태껏 알지 못했던

나의 일부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조금은 동의가 된다면,

여행을 떠나도 좋다.

그리고 그곳이 터키의 이스탄불이라면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이스탄불에서 한 달을 여행하고

스페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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