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한국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4년에는 러시아 야말 프로젝트를 위한 쇄빙 LNG선 15척을 모두 수주, 세계에서 처음으로 LNG 운반 쇄빙선을 선보이기도 했다는 기사가 있었다.(코로나에 흔들리는 러시아의 북극 개발 꿈… 韓 노렸던 'LNG 프로젝트'도 위기 - 조선비즈 (chosun.com)) 그리고 작년 말에는 삼성중공업이 러시아 LNG 쇄빙선 2조 8천억 규모를 수주하는 쾌거가 있었다.(삼성중 2조 8000억 역대 최고액 수주…러 쇄빙 LNG선 한국이 '싹쓸이' - 중앙일보 (joins.com)) LNG 선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 조선사들의 기술은 이제 때를 만나 전 세계의 조선량을 휩쓸고 있다.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필자는 누구의 습관처럼 "그런데 말입니다"라고 한 마디를 던지고 싶다. 러시아가 왜 최근 들어 이렇게도 많은 LNG선박과 LNG 쇄빙선을 발주하는 것일까? 러시아는 크림 반도 전쟁 이후 서방의 지속적인 경제 제재로 매우 고통받고 있는데 말이다. 심지어 GDP가 이제는 한국보다도 작아져 버린지가 수년이다. 그런 나라가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서 선박을 발주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러시아의 NSR, 즉 Northern Sea Route의 전략적 의미와 동북아에 끼칠 영향에 대하여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인 데카르트 도법의 지도를 보면 북극해 항로는 꽤나 멀어 보이지만 아래에 보인 그림처럼 실제 루트를 그려보면 유럽까지의 거리는 NSR을 선택할 경우 상당히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야말에서 중국까지 오려면 겨울 루트를 택할 경우 북해에서 지중해를 거쳐 수에즈 운하, 인도양, 말라가 해협을 지나 중국까지 오게 되면 NSR 대비 6400km가 더 멀다고 한다. 그러니 이용만 가능하다면 NSR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러시아가 대형 화물선 에버기븐호의 좌초로 수에즈 운하 통행이 중단된 것을 기회로 북극 항로를 수에즈 운하를 대체할 새 항로로 개발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고 AFP 통신이 26일 보도했다고도 한다.
러, 수에즈 운하 대안으로 북극항로 개발 추진 (donga.com)
이 북극 항로는 얼음이 어는 기간 동안은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7월에서 11월까지 5개월 정도가 이용 가능하다. 현재는 켄테이너 선 같은 국제 통과 물류보다는 북극해에서 개발한 야말 유전으로부터 LNG 및 석유와 같은 에너지 제품의 운송량이 대부분이다. (북극항로의 성과와 활성화 전망 – 한국해양전략연구소 (kims.or.kr))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북극해의 빙하들이 기후 변화로 계속 녹고 있고 이에 따라 NSR을 이용할 수 있는 기간이 늘고 있거니와 NSR의 관리 비용이 줄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NSR을 자국 자산으로 보고 외국 선박이 NSR을 이용할 경우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도록 하고 있다.
- NSR 사용 허가 사전 신청
- NSR 사용 비용 지불
- 러시아 도선사의 승선
미국 같은 경우는 북극해는 특정 국가에 속한 것이 아니므로 러시아가 비용을 강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러시아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NSR의 일부 구간들은 확실히 러시아 영해를 통과하며 NSR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쇄빙선들이 루트를 항행하며 얼음과 빙하들을 깨고 다녀야 한다. 즉, 관리 비용이 상당히 들어가기 때문에 유료화는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이 NSR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에게 있어 NSR은 국가 전략 상 매우 중요하다. 우선 중국의 에너지 수입선이 주로 중동이기는 하지만 미국 및 서방의 경제 제재가 발생할 경우 에너지를 공급해 줄 수 있는 국가는 사실 상 이란과 러시아 두 나라로 집중된다. 중국은 러시아 야말 프로젝트에 상당한 자본을 이미 투자했고 상당량을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운송로이다. NSR이 가용한 하절기에는 베링 해협을 지나 태평양으로 도는 코스를 이용하지만 많은 기간을 겨울 항로인 유럽을 경유하는 항로를 택해야 한다. 그래서 중국과 러시아는 가스 파이프라인을 구축하여 공급하고 모자라는 양을 선박을 이용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유럽을 통하는 항로를 택하여 러시아의 에너지를 들여 오느니 중국 입장에서는 중동에서 들여 오는 편이 낫다.
최근 우리나라의 혐중 정서가 대단해 보이는데 우리 조선사들이 수주하여 만들고 있는 러시아의 LNG 운반선이나 LNG 쇄빙선들은 그 돈이 사실 상 대부분 중국에서 나온 것은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 조선사들이 만든 LNG 쇄빙선과 LNG 운반선들은 앞으로 중국에게 큰 전략적 이점을 가져다주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야말에서 중국에 이르는 NSR은 러시아의 관할이며 러시아가 지켜 주고 주로 러시아 선반에 의해 운반되기 때문에 미국이 제재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러시아는 이미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고 더 이상 제재를 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북극해 지역에서의 군사력의 균형은 완전히 러시아의 영향권 하에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2007년 북극해 해저에 티타늄으로 만든 러시아 국기를 설치하고 북극해가 자국의 영해임을 선언한 이후 북부 함대를 비롯하여 군사 기지를 강화해 왔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북극해는 자국의 앞마당이고 타국에 의해 침범당하는 것은 곧 국가 안보의 위협이다. 북극해 항해를 위하여 수십 척의 쇄빙선을 운영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혹한기 전투를 위한 각종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군대 또한 북극권에 낙하산 공습 훈련을 할 정도로 북극권에 잘 적응되어 있다.
반면 미국의 경우 알래스카에 기지가 있는 정도이며 쇄빙선은 전무하다가 해안 경비대가 한 척을 마련하였고 이제 금년에 두 번째 쇄빙선 예산을 확보하여 건조하고 있는 상태이다. 유일한 군사적 우위는 F-35 두 개 대대를 알래스카에 배치하여 작전 능력을 향상한 정도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이에 대비하여 S-400 미사일을 촘촘히 설치하고 있고 무엇 보다도 육상 작전 능력의 차이가 커서 사실 상 북극해 지역은 러시아의 바다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중국 입장에서는 야말 에너지를 NSR을 통과하여 가져온다는 것은 전략적으로 매우 안전한 수송로라는 의미가 된다. 게다가 이 NSR을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이 조금씩 늘고 있고 게다가 한국의 기술력으로 LNG 쇄빙선, LNG 수송선들이 보다 안전된 소송을 해주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KMI 북방 물류 리포트 Vol. 162에 따르면 러시아는 북방항로(NSR) 활성화하는 방안의 하나로 핵 추진 쇄빙선 구축 프로그램을 추진해왔으며, 리더급 3척을 포함하여 최소 8척의 신규 선박을 2033년까지 건조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코라벨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로사톰 뱌체슬라프 루크샤 북방항로 부장은 NSR을 연중 운항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신규 쇄빙선이 필요 없을 것 같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핵 쇄빙선 6척이 추가적으로 필요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반면, 지금은 3척이면 충분하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한국도 야말의 에너지를 도입하고 있고 따라서 NSR 가용성 증가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공급에도 지대한 이점을 가져온다. 다시 말해 북국권 에너지 개발 및 NSR에 대한 이해관계는 러시아, 중국, 한국이 모두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러시아나 중국과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해서 협력을 강화해 나가면 미국의 입장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우리나라 일부 인사들이 비난하는 것처럼 문재인 정권이 중국의 하수인이고 빨갱이이기 때문에 미국이 분노할 것인가?
필자가 보기에 미국이 분노하느냐 마느냐는 한국의 행동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 아니면 그 반대로 미국의 국익을 저해하느냐에 달린 일이다. 여기서 필자는 미국의 한 싱크탱크의 리포트를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대표적인 미국의 안보 싱크탱크인 CSIS의 Heather A. Conley, Michael J. Green, Cyrus Newlin의 의견이다. (The Return of the Quad: Will Russia and China Form Their Own Bloc? |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csis.org)) 이들은 쿠드의 등장에 따라 러중이 동맹을 맺을 것인가에 대한 이 글에서 러중 간의 비대칭성을 지적하고 있다. 즉, 러시아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과의 경제 규모의 차이가 이미 너무나 크게 벌어졌고, 중국이 러시아로부터의 군사 기술 등을 제공받고자 하지만 드론, IT 등 일부 하이테크 분야에서는 중국의 기술이 러시아를 압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과 수천 km의 국경선을 마주하고 있고 과거 한번 무력 충돌 사태까지 갔던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있다는 것이다.
중간 과정을 건너뛰고 이들의 결론을 소개하면 미국은 중국에 관하여 러시아와 좁지만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영역이 있다는 것이고 이를 활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러시아를 잘 다루어 중국과의 거리를 구데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쿼드와 중국이 갈라서는 국가를 활용하여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러시아와 쿼드가 갈리는 국가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들고 있다. 이 두 나라는 서방과의 관계가 우호적이면서 동시에 러시아와 친하다. 그래서 베트남-인도네시아 영역에서 러시아와 함께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함께 도모하면서 이 지역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함과 동시에 이 지역에서 "일방주의가 아닌 다자주의"의 균형을 이루도록 한다는 것이다. 즉 이 지역에서 중국 혼자 패권을 휘두르는 상황을 만들지 않고 러시아와 함께 경제 협력을 함으로써 중국의 지나친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는 러시아의 입장을 활용하여 중국 혼자 상황을 주도하지 못하고 러시아 및 베트남, 인도네시아와 상의해가며 일을 해야 하는 "다자주의 세력 균형"을 일구어 낸다는 의미이다.
어찌 보면 미국은 손 안 대고 코 풀겠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되는데 이렇게 될 수만 있다면 미국으로서야 마다할 이유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글에서 필자가 재미있게 생각하는 점은 이들이 "쿼드와 중국이 갈라서는 국가"라고 표현하는 점이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제외하고도 이런 상황에 해당되는 국가들이 또 있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럼 그런 국가가 또 어디 있을까? 쿼드와 중국이 갈라서는 국가라면 목전에 한국이 아닐 수 없다. 미중 양쪽 진영 모두에게 자기편으로 서라는 강력한 요구를 받고 있으며 세계 10위의 경제 규모와 세계 6위의 군사력, 그리고 중국이 갈구하고 미국이 집중 제재하는 반도체 등의 기술을 보유한 국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한국을 지목하지 않았다. 필자는 이들 싱크탱크들이 고의로 한국이라는 국호를 지목하지 않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한국이 아직 입장을 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극하지 않으려는 것일 수도 있겠고 어쩌면 한국과 이미 약속이 되어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즉 한국이 쿼드에 가입하지 않고 중국, 러시아 및 북한을 끌어들여 여러 경제 협력을 추구하는 것이야 말로 러시아와 중국이 필요 이상으로 동맹을 맺는 것을 막고 이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한국이 이러한 외교 노선을 추구하는 것을 미국은 이미 한국 정부과 동의했고 비밀리에 협력하고 있다는 시나리오가 상정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국이 쿼드에 가입할지 안 할지 불확실한 상황은 중국이 타이완 공격이나 미국과의 무력 충돌 시나리오를 확정할 수 없게 만드는 큰 요소이다. 그러므로 중국은 지속적으로 한국에게 커드 가입 의사 여부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고 한국의 답변이 "미국은 한국에게 쿼드 가입을 요청한 적이 없다"라고 답변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물론 모두 필자의 상상의 산물이며 근거는 없다. 다만 독자 여러분들에게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