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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 Oct 19. 2024

우한중심의원

관료주의가 더 큰 병이다

Z는 좌절했다. 

이제 병원으로 오는 호흡기 환자의 수는 누구의 눈에도 크게 늘어났고, 방사선과에는 엑스레이를 찍으려는 장사진이 들어섰다. Z는 얼마 되지도 않는 스태프들과 손을 바꾸어가며 밤에도 야근을 계속했다. 그리고 틈틈이 환자들의 경과를 살폈는데 이제 더 많은 환자들이 입원하는 쪽을 선택했고 병상은 금방 찼다. 환자들은 입원할 병실이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

Z는 이제 확신을 가졌지만 리원량이 출근을 하지 않았다. 그가 공안국에서 진술을 했다는 소문은 이미 병원에 파다하게 퍼졌다. Z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번 상황이 전염병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외에는 없었다. Z는 의심되는 환자들을 병실로 방문하여 증상을 조사하고 경과를 기록했다. 병원 내에서는 이제 그가 이 조사를 하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리고 원장이 그를 호출한 것은 이즈음이었다.

원장은 살이 찐 데다가 흐물거리는 얼굴이어서 정말 비호감이었다. 그러나 그는 상하이의 권력층과의 연줄이 있었고 그가 방역센터의 장이 되려고 하는 것도 상하이 권력의 의지라는 소문이 있었다. 지금 주석은 시진핑이지만 후진타오 주석 시절에도 변함없이 권력을 휘두르던 상하이방과 장쩌민 세력은 건재했다. 더구나 의료계는 상하이 방의 텃밭이었다. 원장은 거슬려서는 안 되는 인물인 것이다. 그런 원장이 Z를 불러 물었다.


"자네, 요즘 전염병이 돈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면서?"

"..."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네. 전염병인가?"

"그럴 소지가 큽니다."

"근거를 말해보게."

"우선 호흡기 환자가 계속 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견은 대부분 독감이나 폐렴으로 나고 있는데 엑스레이 결과가 매우 다릅니다. 대부분의 환자의 폐가 백색증을 보이고 있습니다. 신종 바이러스 같습니다."

"그래서? 그게 전염병이라는 증거가 되나?"

"나름대로 역학 조사를 해 보았는데 환자 가정에서 다시 동일 증상이 발생하는 비율이 매우 높습니다. 그래서 원내 감염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원장님, 최소한 입원 환자들은 격리해야 합니다."

원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Z를 바라보았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윽고 원장은 입을 열었다.

"전염병이라고 치세. 그렇다고 꼭 위험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아직 중환자가 나온 것도 아니고."

"그게 중환자는 병증을 급성 폐렴으로 내리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미 중증을 보이는 환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신속하게 신종 바이러스로 판정하고 일단 환자들을 격리해야 합니다."

"그건 방사선과인 자네가 판단할 일이 아니지. 부족해. 그 정도 이유로 전염병이라고 보고할 수는 없어. 자네도 알고 있지? 만일 심각한 전염병으로 보고하면 우리 성의 양회를 못 열게 된단 말일세. 그렇게 되면 베이징에서는 상하이 파벌이 시진핑 주석의 연임을 반대하는 수작이라고 생각할 것일세. 그러면 어떤 결과가 올지 아나?"

안다. 자칫하면 감옥에 갈 수도 있다. 건물에서 떨어지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원장, 당신은 말이다. 그러나 나 같은 말단 의사에게 누가 신경을 쓰겠나 말이다. Z는 속으로 냉소를 쳤다.

원장은 아무튼 방역 센터에는 비공식으로 Z의 의견을 전하겠다며 생색을 냈다. 그렇다. 이런 점이 원장의 무서운 점이다. 만일의 경우를 위해서 자신을 위한 보호책을 미리 준비해 놓는 것이다.


결국 우한시에서 후베이성 양회가 열렸다. 그리고 후베성 각지에서 인민대표들이 우한시로 몰려왔다. 우한시 방역 당국이 아무런 일을 안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우한시 각 병원에 공문을 보내 양회가 열리는 기간 동안 각별히 전염병이나 의료 사고가 없도록 하라는 지시를 하였다. 모두들 여차할 경우 자신의 책임을 피할 근거를 만들었던 것이다. 양회는 큰 사고 없이 끝났다. 그리고 인민대표들도 각자의 도시로 돌아갔다.  어차피 당에서 내려온 지시를 따를 뿐이었고 의제에 대한 당의 방침대로 지지를 표명할 뿐이었다.


모든 것이 조용히 지나간 것을 확인한 리원량은 병원에 출근하였다. 병원은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가 Z를 찾았을 때 Z는 방사선과에 있지 않았다. Z는 입원하여 있던 것이다. 리원량은 병실로 Z를 찾아갔다.

"어이어이,  웬 입원인가?"

Z의 얼굴은 검은 기미가 자욱했다.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의 얼굴처럼 보였다.

Z는 리원량의 얼굴을 보더니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리원량은 가까이 가서 귀를 기울였다.

"원량. 전염병이야."

"응?"

"그러니 다시는 찾아오지 말게. 그리고 내일부터 이 도시에서 먼 곳으로 도망가게."

리원량은 깜짝 놀랐다. 전염병이라니? 정말로?

"환자들을 추적하느라 정신이 없어 나 자신이 감염될 줄 몰랐네. 충분히 주의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Z는 얼굴을 돌리고 쿨럭댔다. 그리고는 리원량의 귀에 대고 나지막이 다시 말을 이었다.

"원량, 이건 보통 전염병이 아니야. 누군가가 유전자 조작을 한 바이러스야." 

리원량은 순간 Z가 제정신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섬망. 그래 섬망 현상이야. 섬망은 의학적 이유로 인해 수 시간에서 수 일에 걸쳐 나타나는 급성 혼란 상태다. 질병이나 약물 등 원인으로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노인,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 수술 전 또는 끝나고 회복 중인 환자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그동안 Z는 너무 과하게 전염병 이론에 몰입되었던 것이다. 리원량은 그러다가 자신을 보고 있는 Z를 보고 애써 태연한 척했다.

"Z, 아무튼 몸조리 잘하게. 빨리 건강을 회복해서 같이 원인을 찾아내자고."

"아니. 그건 불가능할 것 같아. 이미 조직이 움직이고 있거든."

Z는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쉿! 하는 입모양을 하였다. 

"자네라도 빨리 병원을 떠나서 베이징의 방역 센터에 신고하게. 절대 상하이 사람들은 모르게 하고. 특히 원장은 몰라야 하네."

그러더니 Z는 이제 가라고 손짓을 하였다.


리원량은 불안감이 엄습해 오는 것을 느끼며 Z의 병실을 나섰다. 그리고 그가 병실을 나서자마자 제복을 입은 두 사람이 막아섰다. 그들은 다짜고짜 리원량을 체포하여 병원을 나섰다. 그들의 견장에는 '무장경찰'이라는 마크가 달려 있었다. 그 후 리원량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리원량은 코로나 19에 감염되어 격리된 병원에 수용된 후 거기서 코로나19의 바이러스와 싸우다 결국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장 경찰들이 모르는 일이 하나 있었다. 리원량은 Z의 병실을 나서기 전에 이미 단톡방에 우한시에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났음을 알리고 동료들 모두 주의할 것을 촉구했기 때문이다. 결국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출현은 중국 정부가 그 사실을 막으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알려져 버렸다. 그리고 리원량은 병실에서 코로나 19에 신음하다 사망하였다.


"리원량 사망입니다."

무장 경찰이라는 마크를 제복에 단 사나이가 책상 뒤의 남자에게 보고하였다. 책상 뒤의 남자는 다름 아닌 바로 '장군'이었다. 장군은 고개를 끄떡했는데 별 일 아니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장군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어 번 두들기더니 물었다.

"장청청도 노출되었나?"

제복의 사내는 고개를 흔들었다.

"소재지는 아직도 파악이 안 되었나?"

"파악이 되었습니다."

"그래? 지금 어디야?"

"그게 출국을 한 것 같습니다."

"출국? 어떻게?"

"그게... 이 동영상을 한번 보시죠."

사내가 내놓은 USB에는 공항 출국 심사장에 찍힌 한 여자의 영상이 있었다. 분명히 장청청은 아니었다. 

"이 여자가 뭐 어쨌길래?"

"그 여자가 돌아설 때 목덜미 부분을 보십시오."

장군이 여자가 심사대에서 돌아설 때 사내는 영상을 멈췄다. 그리고 여자의 목덜미 부분을 확대하였다. 여자의 목덜미에는 붉은 선들이 보였다.

"이게 장청청이라는 보장은 없는 것 아닌가? 그리고 이 여자 신분은 뭔가?"

"이 여자는 장메이링이라는 베이징 여자입니다. 그런데 이 영상 확인 후 자택으로 가서 확인하니 본인은 집에 사망해 있었습니다. 사망 시각은 출국 시간보다 하루 전입니다."

"그럼 장청청이라는 증거는?"

"하루 전에 이 여자 집에 장청청이 들어가는 모습이 확인되었고 장메이링 사망 후 장메이링의 모습을 한 여자가 나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


그렇다면 장청청이 틀림없다. 그리고 장청청이 무슨 방법인지 몰라도 장메이링의 모습으로 면장을 한 것일 터였다.  장군은 다시 물었다.

"장청청은 어디로 갔나?"

"한국 제주도로 향했습니다. 장메이링의 여권을 사용했습니다."

장청청이 한국은 물론 어느 나라에도 가 본 적이 없다는 것은 장군이야 말로 잘 알고 있었다.

장군은 결심을 하고는 명령을 내렸다.

"한국으로 갈 특공조를 조직해라. 그리고 그 장메이링 집에 지난 1주일 동안 드나든 모든 인물들을 체포해. 그리고 장메이링과 접촉한 사유를 확인하도록 해."

"특공조는 어느 팀을?"

"하마조다!"

하마조라는 말을 듣자 사내는 낯빛이 확 변했다. 그리고는 절도 있게 경례를 하고는 방을 나섰다. 혼자 남은 장군은 중얼거렸다.

"장청청! 너 한 년 편하자고 천하를 질병 속으로 빠뜨려? 내가 꼭 그 업보를 받게 해 주마..."

 장군은 천장을 바라보며 주먹을 쥐었다. 꼭 장청청을 잡아 응보를 받게 해 주리라 맹세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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