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의 시작
Z는 이상했다.
오늘 하루 동안 무려 80여 명의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평소보다 꽤 많은 숫자였던 것이다. 오늘 하루만 그랬다면 그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주 내내 엑스레이를 찍는 환자수가 늘어난 것이다. 월요일 보다 화요일이 많았고 화요일 보다 수요일이 많았다. 그리고는 목요일에는 더욱 많았고 금요일인 오늘은 정말 많았다.
이상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통상 환자들의 폐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엑스레이를 찍지만 대부분은 폐렴까지 가지 않는다. 그런데 환자들을 두 번 세 번 다시 엑스레이를 찍게 하는 일이 늘어났다. 그리고 CT 촬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Z는 방사선과 의사로서 이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내과, 호흡기과 의사들에게 요즘 무슨 유행병이 있는가 확인해 보았지만 그런 특별한 징후는 없다는 대답이었다.
그런데 다음 주가 되자 방사선과에 와서 엑스레이나 CT를 찍는 환자들이 두 배의 곱절로 늘었다. 전에는 엑스레이 환자 한 두 사람 찍고 나면 차 한잔할 시간이 있었는데 이제는 방사선과 앞에 환자들이 늘어서서 그 줄이 줄어들지를 않았다. 정말 이상하다고 느낀 Z는 부원장을 찾아갔다. 부원장은 사실상 우한중심의원의 의료를 총괄하는 실력파였다. 원장은 위에서 내려온 낙하산이고. 하지만 언제나 모든 의사결정은 원장이 내리는 것이 현실이었다. 원장은 자신과 같은 평의사들과는 식사도 별로 같이 하지 않았다. 그저 가능만 하면 시 의료위원회나 성 의료위원회를 들락거리며 꽌시를 쌓는데 주력할 뿐이었다.
Z는 시골 출신이었다. 우한중심의원의 방사선 의사가 된 것만 해도 고향에서는 알아주었다. 하지만 병원 일을 해보니 방사선과는 생색이 나지 않았다. 다른 과처럼 환자들이 선물을 보내오지도 않는다. 또 처방을 할 일도 없으니 병원 측에서도 함부로 대했다. 시골에서 온 그로서는 높은 사람들과의 꽌시도 없었다. 돈도 별로 없으니 남들처럼 고가의 선물을 보낼 능력도 없었다. Z는 이런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려면 전문 능력 외에 수단이 없음을 잘 알았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논문을 쓰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엑스레이를 찍으면서 논문 거리를 발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평소와 다른 현상이, 그것도 논문 거리 찾기 어려운 이 방사선 과에 나타난 것이다. Z는 이 상황 뒤에는 무엇인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있어야 했다. 그래야 논문을 쓰고 학계의 인정을 받고 출세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려면 타과의 협조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의사 회식에도 가끔씩 자신을 빼먹는 그 인간들이 자신이 요청한들 협조해 줄리가 만무했다.
'역시 높은 사람의 지원 사격을 받아야 해'
라고 Z는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높은 사람을 만나려면 준비가 있어야 했다. 공연히 기분 나쁠 때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미운 털이라도 박히면 생활이 피곤해지는 것은 물론 향후 출세에 큰 지장이 있을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Z는 평소 친하게 지내는 리원량을 찾아갔다. 리원량은 성격도 활달하고 대인 관계도 좋은 편이어서 높은 사람 동향 파악에는 딱이었다. 좀 입이 가벼운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대인 관계가 좋다는 사람들은 대개 다 이렇지 않은가. 하지만 공짜는 없다.
Z는 병원에서 멀지 않은 샤오타오위엔(小桃园), 즉 작은 도원이라는 이름의 음식점에 예약을 하였다. 이곳은 뜨겁고 진한 탕요리, 웨이탕(煨汤)이 유명했다. 여기에 러깐몐(热干面)을 식사로 하고 리원량이 좋아하는 바이주를 곁들이면 될 터이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나면 뭐 일주일은 이제 단단면이나 먹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금요일 저녁 리원량은 저녁 먹으러 나왔다. 자기 말로는 병원의 높은 사람들의 자리에 가야 하는데 워낙 오랜만에 Z가 한 저녁 식사 초대를 거부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리원량은 '너도 내가 하는 말 빈말인 거 알지?' 하는 사람 좋은 얼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렇다. 이 녀석은 언제나 이렇게 사람 좋은 웃음을 웃으며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어두운 골방에서 엑스레이나 찍고 있는 나와는 다르다.
"원량, 사실은 부탁이 있네."
"응, 그럴 줄 알았어. 이번 인사이동 때문이지?"
아... 그렇다. 인사이동이 다가오고 있구나. Z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 그 인사도 중요하지. 사실은 부원장 하고 말할 기회를 좀 만들어 주었으면 했는데..."
"응? 장 부원장? 그보다는 원장이 더 중요하지 않아? 어차피 인사권은 원장이 휘두르잖아."
"인사 문제가 아니라 요즘 환자들 상황이 좀 이상해서 말이지.."
자초지종을 들은 리원량은 혀를 찼다. 특정 환자가 이상하게 늘어나는 것은 그야말로 공무 아닌가? 대낮에 사무실로 찾아가서 이야기하면 될 것을 공연히 어렵게 식사 대접까지 하는 Z가 딱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도 있다. 사실은 꽤 많을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을 상대하기는 쉽다. 리원량은 처음에는 짐짓 곤란한 듯이 고개를 젓다가 결국은 끄덕이고는 Z가 부원장에게 보고할 기회를 만들어 주기로 하였다. 그리고는 전매특허인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는 이제 먹어도 되지? 하며 아구아구 웨이탕을 마셨다. 샤오타오위엔의 웨이탕은 정말이지 일품이었다.
수 일이 지난 후 리원량은 부원장 실에서 Z를 불렀다. Z는 긴장한 모습으로 들어오더니 부원장에게 꾸벅 인사를 하였다. 부원장이 앉으라고 손짓하자 Z는 어색한 동작으로 의자 끝에 엉덩이를 조금 붙이고는 허리를 세우고 앉았다. 부원장은 장딩위(張定宇)라는 사람으로 우한 토박이였다. 그는 Z가 앉는 것을 기다려 물었다.
"그래 뭐 보고할 것이 있다고?"
"네.. 그것이.."
Z의 버벅대는 보고가 끝나자 장딩위 부원장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럼 지금 상황은 어떤가? 여전히 방사선과 환자들이 많은가?"
"지금 매일매일 잔업을 하며 방사선과 인원이 총동원되고 있습니다."
그러자 장딩위와 리원량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원래 이 두 사람이 먼저 만났을 때 리원량은 Z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요즘 수입 올리라는 압력으로 각 과에서 필요도 없는 엑스레이나 CT를 찍게 하는 모양이라고 말해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만일 매일 전 인원이 잔업을 한다면 이건 경우가 달랐다.
"그럼 환자들 병변은 어떤가?"
"그게 점점 더 엑스레이의 결과에서 폐가 하얗게 나타나는 비율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일종의 석화 현상 같습니다."
"그럼 증상이 모두 비슷하단 말인가?"
"네"
장딩위 부원장의 얼굴이 변했다.
"그럼 전염병이란 말인가?"
Z는 이제야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었다.
"네! 부원장님, 아무래도 전염병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무슨 병이란 말인가?"
"그건 제가 판단하기는 어렵고 문진 의사들이 판단해야 할 일입니다."
장딩위 부원잔은 리원량에게 눈짓을 했다. 리원량은 재빨리 방을 나섰는데 이어서 바깥에서 여기 전기 전화하며 의사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소리가 들렸다.
Z는 조심스럽게 부원장에게 말했다.
"저... 부원장님. 괜찮으시다면 제가 병인을 밝혀보고 싶습니다."
부원장은 Z를 향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직 전염병이라고 판단하기는 일러!"
부원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Z에게 다시 이번에는 부드러운 소리로 말했다.
"이보게. 만일 전염병이 발생했다면 우리 우한시 방역 센터에도 알려야 하네. 그런데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원장님은 다음 센터장이 되려 노력 중 아닌가. 우리 병원에서 전염병이 발생한다면 원장님이 방역 센터장이 되기가 어려워. 그러니 대로하실 것일세."
Z는 어이가 없었다. 그깟 것들이 지금 대규모 전염병이 발생했을지도 모르는데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나한테 맡겨주면 내가 병인을 밝혀서... 그는 생각을 멈추었지만 머릿속으로는 이미 TV 방송국의 기자들이 앞다투어 찾아와서 자신에게 전염병은 어떤 전염병인지, 어떻게 병인을 찾았는지, 어떻게 치료하면 좋을지 묻는 모습이 떠올랐다. 어쩌면 승진을 하게 될지도 몰랐다. 적어도 과장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때 리원량이 돌아왔다. 그는 부원장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특별 징후는 없단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장딩위 부원장은 Z에게 말했다.
"자네 조금 더 지켜보게. 그리고 전염병 건은 쉬운 일이 아니야 우리 우한시 방역 센터로 안 끝날 수도 있으니 경거망동하지 말게!"
Z는 부원장실을 나오면서 분개했다. 관료주의! 형식주의! 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Z는 기필코 증거를 잡아서 이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며칠이 지나자 이제 우한 중심의원뿐만 아니라 우한 시내 다른 병원의 방사선과 의사들도 환자가 너무 증가한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료들로부터 이 말을 들은 Z는 자신이 엑스레이나 CT를 찍은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나는 대로 엑스레이나 CT를 찍은 환자 중에서 폐의 백화 현상이 심각한 환자들부터 전화하여 상태가 어떤지 물어보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 종일 환자들에게 시달리고 나서 다시 전화를 돌리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다. 하지만 Z는 오기가 생겼다. 꼭 자신의 합리적 의심이 문자 그대로 '합리적인 의심'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점차 Z는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병원에 다시 오지 않은 환자들의 상당 수가 집에서 앓아누워있거나 이미 사망했던 것이다. 이제 호흡기과에서도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원량이 다시 Z를 찾아왔다.
"여보게 Z.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네."
"흥"
Z는 심사가 뒤틀렸다. 부원장에게 헤헤거릴 때는 Z의 의견에 한 마디도 지원을 하지 않은 리원량이 미웠던 것이다.
"여보게 Z. 자네 너무 그러지 말게. 부원장이 한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어. 지금 호흡기과나 내과에서도 뭔가 이상하다는 말이 나오지만 아무도 보고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모르나? 보고해 봐야 원장에게 찍힐 뿐이야."
"아 그러셔? 그럼 가만히 있으면 되겠구먼"
"아 사람 꼬여있기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우한시 방역 센터 간부가 있네. 자네가 뭔가 확실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으면 그 사람에게 알려주잔 말이지. 그렇게 해서 거꾸로 방역 센터에서 우리 병원으로 보고를 하라고 지시가 내려오면 원장이 어쩌지 못할 걸세."
"그 사람이라고 다르겠나? 그리고 방역 센터 사람들이 알아들을까?"
그러자 리원량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서 위챗 대화를 보여 주었다. 거기에는 십 수 명의 우한시 의사들이 서로 공유하는 단톡방이 있었다.
리원량은 말을 이었다.
"여기 20명 정도 되는 우한시 여러 병원 의사들이 있어. 우리 모임이거든. 그리고 이 양반 있지."
리원량은 단톡방 중 한 인물을 짚으며 말했다.
"이 사람이 우리 우한시 방역센터 임원이야. 우린 거먼(중국에서 형제와 같이 친한 친구들을 일컫는 말)이야. 자네가 믿을만하고 과학적 근거를 나한테 주면 내가 이 사람에게 연락해서 조치를 하게 만들겠어."
Z는 이름을 보고 인터넷에서 조회를 해 보았다. 과연 그 사람은 우한시 방역센터의 임원이었다. Z는 리원량에게 말했다.
"원량, 난 이미 상당한 데이터를 분석했어. 하지만 아직 샘플링에 대한 신뢰도가 부족해. 뭐라 해도 다 우리 병원 환자들이니까 말이야. 자네 인맥을 통해서 이 사람들한테 자료를 부탁해 주지 않겠어? 여러 병원의 여러 질병으로 온 환자들이라는 산포가 필요하거든."
"물론이네. 그럼 자네가 위챗으로 필요한 자료가 뭔지 보내줘. 내가 단톡방에 돌릴게."
"좋아. 나는 환자들을 좀 만나보고 증상과 환자들 간의 유사성을 더 조사해 보겠어."
일주일 후 두 사람은, 아니 정확하게는 Z가 병증 분석 보고서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리원량은 그 보고서를 우한시 방역 센터로 송부하였다. 계획대로 우한시 방역센터는 우한중심의원에 최근 유행병에 대한 보고를 지시했다. 리원량과 Z는 상황의 진전에 고무되었다. Z는 의사로서의 명성을 날릴 생각에, 리원량은 이 상황의 주인공이 되는 생각에 기뻤다. 상황이 이렇게 전재되자 원장은 보고서 작성을 리원량에게 지시했고 리원량은 다시 Z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며칠 후 리원장은 우한시 공안국으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그가 공안국에 가자 공안은 그가 유언비어를 퍼뜨린다며 당장 중지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리고는 훈방을 받으려면 각서를 쓰라는 것이었다. 리원량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공안이 딱하다는 듯이 설명을 해 주었다.
"이보게. 이제 이틀 후면 우한시에서 후베이 성 양회가 열린다네. 이럴 때 우한에서 심각한 돌림병이 돌고 있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나. 우한에서 양회를 열 수 없게 되면 우리 성 주석과 성장님 모두 중앙에서 크게 문책을 당할 것이야."
리원량은 이 말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 양회가 열린다. 게다가 이번 양회에서 시진핑 주석이 3 연임을 하는 결정이 내려질 것이었다. 그래서 그러지 않아도 중앙과 시주석 그룹이 여기저기 사람들의 동향을 조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하! 리원량은 속으로 외쳤다. 내가 어쩌다 이런 중요한 변수를 생각 못했나?
리원량은 공안국이 타이핑해 놓은 각서에 서명을 하였다. 각서에는 리원량이 과거 유행했던 질병 SARS와 유사한 질병이 확산되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인터넷에 확산하고 있으니 다시 이런 일을 할 경우 엄벌에 처한다고 쓰여 있었고 리원량은 모든 사항을 숙지했다고 쓰고 서명을 하였다.
리원량은 병원에 전화를 걸어 몸이 불편해서 며칠 쉬겠다고 병가를 내었다. Z로부터 몇 차례 전화도 오고 위쳇 메시지도 왔지만 일절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또 Z와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서 좋을 일이 하나도 없었다. 리원량은 1, 2주 쉰 후에 상황이 지나가고 양회가 끝나고 나면 그때 출근을 할 결심을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