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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 Nov 02. 2024

붉은 뱀의 반격(2)

우한의 대화

"청청을 놓쳤다고?"

책상 뒤에서 하관이 넓은 중년의 사내가 말했다.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장군이었다. 중년의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매우 심난한 모양이었다. 장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겸손한 자세로 책상 위만 쳐다보고 있었다.

"석 동생. 이건 곤란하지 않나. 곤란해..."

장군의 성은 석 씨였던 모양이었다. 석장군은 속으로 네 놈이 망쳤잖아라고 생각했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상대의 아버지는 다름 아닌 단 씨였다. 그 사람은 천안문 사건 후 중국의 주석이 되었고 다시 10년간 국가 주석이었으며 호주석이 취임한 10년 동안에도 사실상 그가 막후에서 중국을 지배했다. 비록 지금은 은퇴했다 해도 그들의 세력은 막강하며 석장군 자신 또한 단 씨 일파의 한 사람으로서 세도를 부려왔던 것이다. 그리고 외부에는 절대 말할 수 없는 비밀이지만 그들은 동족이기도 했다.


"다시 한번 설명해 주게. 장청청이 뿌린 바이러스가 어쨌다고?"

"우리가 P4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연구해 온 일은 알지?"

"물론이네. 바로 자네 여동생이 책임자이지 않은가!"

"그렇지. P4는  에볼라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여러 코로나 바이러스를 기본으로 여러 자기 생물학적 변형을 시도하고 있었네.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장청청이 그 병균 보관 시설에서 박쥐에서 추출한 코로나 바이러스를 변형시켜 뿌린 것 같네."

"박쥐?"

석장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그들에게 박쥐란 말은 매우 큰 의미가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침묵을 깬 것은 중년의 사내 단 씨였다. 

"고의적으로 우리를 피한 것일까?"

"모르겠어. 손에 닿는 대로 잡은 것이 박쥐 코로나였을 수도 있지. 탈출하느라 경황이 없었을 테니까."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은 어때?"

"아직은 통제가 되고 있지만 시간문제야. 이미 우한의 장례식장들이 처리를 못해서 SNS에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어. 우한중심의원의 의사들로부터 이미 전염병 보고가 올라왔고."

"사람들 피해는 어때? 그리고 우리 쪽 피해는?"

"그게 미묘해. 사람들 개인 차가 좀 심해. 일단 전염 속도가 매우 빨라. 그리고 주로 호흡기에 작용하고 있지. 어쩌면 그 점이 우리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원인일 수도 있고..."

"확실해?"

"내 여동생이 유전자 분석을 하고 있어. 조만간 결과가 나올 거야."


이윽고 단 씨가 말했다.

"석 동생. 내가 장청청을 놓친 것은 아버지에게는 비밀로 해주게."

그렇다. 장청청을 놓친 장본인은 바로 단 씨였다. 석장군은 이를 갈았다. 단 씨가 공연히 장청청을 찾아가서 방으로 끌고 가 범하지만 않았으면 연구실에서 장청청이 탈출할 수도 없었을 터였다. 게다가 자신의 성벽을 들킬까 봐 호위병들도 멀리 있게 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장청청은 단 씨를 올라타고는 묶어 버린 것이었다. 장청청 또한 단 씨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 해칠 수 없었을 것이었다. 정말이지 이런 얼다이(二代)들은 제대로 하는 일이 없었다.


석대장은 깊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아버지께는 내가 잘 말씀드렸어. 하지만 어느 정도 짐작은 하실지도 몰라. 형은 다른 아들들과는 다르잖아. 어차피 나 같은 아들들은.." 

석대장은 입을 닫았다. 소용없는 말 해봐야 무엇하랴. 석대장은 이윽고 말했다.

"아무튼 지금은 신속하게 바이러스 뒤처리를 하는 것이 중요해. 자칫하면 동 씨 일파가 먼저 손을 쓸 가능성이 있어."

동 씨는 현재 중국 주석을 말한다. 그는 항상 후덕한 얼굴로 웃고 다니지만 무서운 '사람'이다.  단 씨 그룹은 언제나 웃는 얼굴로 대하며 의견을 거스르는 적이 없던 동 씨를 주석으로 추대했다. 물론 단 씨 그룹 사람을 주석으로 앉히고 싶었지만 바지 사장 격으로 앉혀놓았던 전임 주석이 맹렬히 반대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동 씨를 주석으로 추천한 것은 단 씨 그룹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대 실수였던 것이다.

한숨을 쉬는 단 씨를 보며 석대장은 다시 입을 열었다.

"청청과 함께 있을 때 뭔가 특이 사항은 없었나? 이상한 점이나, 이상한 말이나 그 어떤 것이라도 말일세."

"이건 말하기 좀 그런데... 그러고 보면 이상한 점이 있긴 했어."

"뭐지?"

"우리가 섹스를 할 때 거기의 느낌이 많이 달랐어."

석대장은 상대를 쥐어 패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참고 다시 물었다.

"어떻게 이상하던가?"

"청청의 그곳이 원래 명기에 속하기는 하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거든? 그런데 이번에는 막 내 물건을 꽉 잡고는 마치 내 온몸의 정액을 펌프로 뽑아가는 느낌이었어. 그런데 그 느낌이 좋은 느낌이 아니라 불길한 느낌이더라고."

"그래서?"

"그래서 내가 물건을 빼내려 했는데 글쎄 꽉 물고 안 놓아주는 거야. 몸을 붙잡고 밀고서야 간신히 뺄 수 있었네.'

석대장이 말없이 보고만 있자 단 씨는 쑥스러웠는지 험험 하고 헛기침을 하고는 시선을 바깥으로 돌리며 말했다.

"그런데 온몸에 힘이 쭉 빠져서 손가락 하나 쳐들기가 어렵더라고. 청청은 이상한 얼굴 표정을 하고는 나에게 한 마디 했어."

"뭐라고?"

"넌 사람도 아니야라고 했어..."

두 사람은 입을 닫고 조용히 허공을 노려 보았다. 도대체 장청청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이윽고 석대장이 단 씨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형, 형은 의료 쪽을 잘 알기도 하고 자원도 많으니 청청이 뿌려놓고 간 바이러스를 해결해 줘. 난 한국으로 가서 청청을 추적해 보아야겠어. 간 김에 먼저 없어진 주영범이라는 놈도 확보해 보고..."

"한국은 우리나라가 아니야. 해결할 수 있겠어?"

"난 예전에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무관으로 있었어. 그때 아이들을 몇 준비해 놓았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야."

"그래 그럼 부탁해. 돈이나 장비는 내가 따로 지원해 줄게."

"한국 쪽 공안 계통 자산을 붙여줘."

"알았어"


석 대장이 문을 닫고 나가자 단 씨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석 대장을 좋아해 본 적이 없었다. 석대장의 아버지 덕을 단 씨 아버지가 크게 본 적이 있어 단 씨의 아버지, 그러니까 단주석은 석 대장을 총애했다. 물론 그것이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문제가 되기는커녕 단 주석이 사조직으로 키운 100명의 양 아들들은 그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석대장은 총명했고, 냉정했으며, 예뻤다. 잘 생긴 것이 아니라 예쁘게 생겼다. 나이만 어리다면 미소년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어릴 때에는 미소년이었다. 그래서 단 씨 주위의 여자들은 모두 석대장에게 꼬리를 쳤던 것이다. 질투일까? 그래 아마도 그럴 것이다. 나이가 들고 아버지의 후광으로 갖은 이권에 개입해 큰 부를 축적하고 단 씨 파벌을 이끌게 되었으니 이제는 그런 질투는 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하지만 석 대장은 한 번도 자기에게 굽신거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건방지게 군 적도 없다. 그러나 언제나 자신을 쳐다보는 석 대장의 눈빛은 차갑고 자신의 모자란 면을 지켜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언젠가 자신을 뒤에서 모해할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석 대장이라면 단 씨는 놀라지 않을 것이었다.


상념에 잡혀 있던 단 씨는 비서가 갑자기 들어오는 바람에 놀라서 쳐다보았다. 이렇게 비서가 쳐들어 오는 일은 없기 때문이었다.

"라오반(중국말로 윗사람을 칭하는 말), 손님이 오셨습니다."

"누구?"

"중앙당 판공실 주임입니다."

당 중앙 판공실 주임이라면 감전수였다. 동주석의 최측근이자 평생의 친구. 그와 같은 거물이 어떻게 친히 왔단 말인가? 단 씨는 놀라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비서의 뒤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감전수를 보았다. 감전수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앉아. 앉아 내가 뭐 손님인가?"

"아니 어떻게 오셨습니까? 알려주시지 않고, 제가 영접 나갔을 텐데요."

"괜찮네. 내가 이 근처에 온 김에 자네를 좀 만날까 했지."

그럴 리가... 천하의 감전수가 누구를 만나러 베이징을 떠날 리가 만무했다. 당연히 그를 노리고 온 것이다. 불시에...

감전수는 단 씨 앞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더니 비서에게 나가라고 눈짓을 했다. 비서가 단 씨를 바라보며 잠시 주저하더니 문을 닫고 나갔다.


단 씨가 차를 준비하려 하자 감전수는 손을 뻗어 저지했다. 감전수는 키가 큰 인물이었고 손과 발이 모두 컸다. 그리고 사나이다운 사람이어서 어딘지 모르게 사람을 위압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감전수는 입을 열었다.

"우한중심의원에서 문제가 생긴 것 알지?"

"네 방금 석 대장이 알려 주었습니다."

"석 대장이 알려줘? 시작점은 네가 운영하는 P4 연구소인데?"

단 씨가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감전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자네 나하고 같이 베이징에 가야겠어."

"베이징을요?"

감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 씨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의 몸짓을 하려고 했는데 그 순간 감전수의 눈빛을 보고 멈추었다. 거절하는 몸짓을 한다면 확실하게 목숨을 잃을 것을 감전수의 순간적으로 빛나는 눈빛에서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바깥에는 이미 병력들이 와 있을 것이다. 비대한 몸과 비대한 머리를 가진 자신이 탈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단 씨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아.. 그럼 석 대장과 함께 가겠습니다."

석 대장과 함께라면 즐겁지는 않아도 훨씬 안전할 터였다.

감전수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그러게나 말이야. 석 대장도 함께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내가 와보니 그새 어디론가 없어졌더라고. 그 친구 내가 오는 걸 알았다면 인사를 했을 텐데 말이야. 안 그런가?"

감전수가 다시 한번 눈을 가늘게 뜨며 단 씨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는데  단 씨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감전수 이 사람 홍사방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동 주석은 홍사방이든 단 씨 파벌이든 절대로 자신의 가까이에 둘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파벌의 조사 결과 감전수는 확실히 그쪽 사람이었다.


단 씨는 기합을 넣고 일어나 감전수를 따라 방안을 나섰다. 방 바깥의 복도에는 이미 해방군의 쫙 깔려 있었다. 그는 해방군 인원들의 뒤에서 간신히 비서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약속된 입 모양을 보여 주었다. 비서는 고개를 끄떡하고는 슬그머니 뒤로 사라졌다. 그렇다. 비서가 아버지에게 연락을 하는 데 성공한다면 아버지가 어떻게든 자신의 안전을 지켜줄 것이다. 갑자기 단 씨는 별로 무서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표정으로 나타난 모양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싸늘한 얼굴로 냉소를 짓고 있는 감전수가 문을 열며 오라고 손짓을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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