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철 Nov 09. 2024

붉은 뱀의 반격(3)

주석을 만나다

감전수가 단 씨를 데리고 간 곳은 공항이었다. 공항에는 감전수의 전용 비행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활주로가 비워져 있는 것을 보니 프로토콜에 따라 모든 항공기의 이착륙을 막은 것이 분명했다.  저들은 이륙하다 말고 왜 비행기가 활주로에 서 있는지, 왜 착륙을 하지 않고 공항 상공을 선회하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상무위원이 비행기를 이용하면 160~200㎞에 내에서는 모든 항공기가 떠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만일을 위해서 전투기도 상공에서 대기한다. 일반인들에게는 갑자기 실시하는 공군 훈련으로 알린다. 항공기들의 모습을 보니 이런 정지 상태가 꽤 되어 보였다. 그것은 단 씨에게는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 풍경이었다.


감전수와 단 씨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소형 여객기였다. 서방 세계에서는 기업인들도 자가용 비행기를 탄다. 중국에서도 기업인들이 자가용 비행기를 탄다. 그러나 이들이 타는 비행기는 주로 지방이다. 우한은 후베이성의 성도이다. 이런 곳의 비행장을 이용하는 비행기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국가의 항공기이며 이들 고위직들의 항공기는 경호국의 항공기이다. 그리고 이들 항공기를 탈 수 있는 사람들은 제한적인 사람일 수밖에 없다. 물론 감전수나 단 씨는 늘 이용하고 있지만 말이다.


베이징까지 날아갈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 씨야 동주석과 만나는 일이 즐거울 리 없지만 사실은 감전수 또한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감전수와 동주석은 한창나이에 만나 평생의 친구요 동지로 지냈다. 그러나 동주석이 어떤 인생의 무게를 짊어지고 사는지, 그 진정한 무게를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이후 감전수가 동주석을 만나는 일의 내용은 완전히 달라졌다. 국가와 인민을 위해 주석의 부담을 나누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런 정도의 무게가 아니었던 것이었다.


감전수는 한숨을 쉬고는 단 씨를 바라보았다. 그 기름기 흐르는 얼굴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달려들어 목을 졸라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감전수는 고개를 돌리고 비행기의 창문밖을 쳐다보며 말없이 베이징에 도착할 때까지 침묵을 지켰다. 단 씨의 비린내 나는 입에서 나오는 냄새를 맡느니 그냥 조용히 입 다물고 가는 편이 훨씬 나았던 것이다.


베이징 공항에서 영접 나온 경호국의 차량을 타고 중난하이(中南海)로 향하자 감전수는 기분이 좀 나아졌다. 반면 단 씨는 안절부절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안절부절 하는 단 씨를 보자 감전수는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단 씨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행한 짓들을 생각하면, 그리고 앞으로 동주석과 감전수가 그들에게 할 일을 생각하면 더욱 기분이 좋았다. 


한편 단 씨는 쉴 새 없이 동주석이 자기를 부른 이유와 만났을 때 어떻게 답변할지를 되뇌며 시뮬레이션을 하였다. 동주석은 처음에는 몰랐지만 문자 그대로 너무나 무서운 '사람'이었다. 자기를 베이징으로 부르는 것은 장청청 때문일 수도, 아니면 바이러스 때문일 수도, 그것도 아니면 아버지 때문일 수도 있었다. 동주석의 평소 스타일로 미루어 생각할 때 그 모두일 가능성이 제일 컸다.


이윽고 승용차는 중난하이에 들어섰다. 중난하이는 이름에는 바다 해(海)라는 글자가 들어있지만 사실은 호수의 이름이다. 자금성의 서쪽에 있으며 지금은 국가 지도자 가족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당연히 철저하게 외부와는 차단되어 있으며 그들만의 공간으로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는 신비로운 곳이다. 두 사람은 중난하이에서 내려 몸수색을 받은 후 다시 주석 경호실의 차량으로 바꾸어 탔다. 그리고 차량은 지하도로 들어가 주석 사무실로 향했다. 단 씨 또한 어렸을 때부터 중난하이에서 살았다. 그의 아버지가 주석이던 시절 중국은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사유화 정책을 실행하기 전에는 중국의 소득은 그야말로 볼품없었고 사람들의 주머니에는 한 푼도 없는 일이 많았다. 그렇다. 지금 중국이 누리고 있는 번영은 그의 아버지가 이룬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단 주석의 아들이다. 나의 뒤에는 거대한 상하이 방이 있다.


단 씨는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굳혔다. 그러자 자기도 모르게 쉬~잇 하는 소리가 입에서 새어 나왔다. 그는 혀로 입술을 적시고는 손을 들어 침을 닦았다. 그러다 옆을 보니 감전수가 한 겨울의 다싱안링(大興安嶺) 보다도 차가운 눈을 하고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단 씨는 이거 아무래도 길보다 흉이 많겠군 이라고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주석 사무실에 도착한 것이다. 


두 사람이 주석 사무실에 들어가자 자리에 앉아있던 동 주석이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는 두 사람을 맞이하였다. 저 사람 좋은 웃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넘어갔던가! 단 씨는 허튼소리를 해서는 안돼하며 속으로 다시 한번 자신을 다독거렸다. 감전수는 단 씨가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하고는 옆으로 걸어가서 두 손을 모으고 섰다. 동 주석은 단 씨의 맞은편 소파 자리를 가리켰지만 감전수는 정중하게 사양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두 손을 모으고 찌르는 듯한 눈빛으로 단 씨를 바라보았다.


동주석은 허허하며 다시 예의 사람 좋은 웃음을 하며 단 씨와 악수를 하고는 차를 권했다. 단 씨는 손을 떨며 악수를 하고는 감히 찻잔에 손을 대지 못했다. 악수를 하는 순간 동주석의 손에서 기이한 기운이 뻗어 나와 자신의 손 안으로 들어오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이 동주석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단 씨 가문 최대의 위협이며 적이었다.


동주석은 단 씨를 손을 급히 움츠리는 것을 보고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자리에 허리를 묻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단 동사장, 아버님은 별래무양하시지요? 이번에 우한에서 난 사건이 심상치 않다고 해서 바쁜 단 동사장을 모셨소이다. 개의치 않으셨으면 좋겠소."

"아. 주석님이 불러주시면 저야 영광일 뿐이지요. 우한 사건은 사소한 일인데 어찌 주석께서 마음을 쓰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단 씨가 사소한 일이라고 하는 순간 옆에 서 있던 감전수가 흥 하며 냉소를 날렸다. 단 씨는 황급히 입을 닫으며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동주석은 말을 이었다.

"우리가 장청청을 단 동사장에게 맡긴 것은 단 주석님의 얼굴을 보아서이고 또 단 동사장의 바이오 기술이 뛰어나서 우리 두 파벌이 모두 원하는 연구를 하기 위한 것이었소. 잊으셨소?"

단 씨는 아! 장청청의 일이구나 하고 깨닫자 마음이 다소 가벼워졌다.

"네 주석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장청청과 주야장천 뒹굴었다지? 장청청이 어떤 존재인지 잊었소?"

"그게 아니라 장청청과 몸을 섞은 것은 실험의 일환이었습니다."

"실험?"

"네!"

"그 실험을 당시 자신이 했어야 했단 말이오?"

단 씨는 의아했다. 장청청과 몸을 섞은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그 긴 세월을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갑자기 힐문을 하다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주석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 집안의 유전자는 저희 집안 삼대 밖에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것을..."

"10년이 지나도 성과를 낼 수 없었다면 이제 우리에게 돌려주었어야지요?"

단 씨는 아연 실색했다. 이들은 장청청을 원하는 것이다.

"장청청은 지금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없기는.. 한국에 넘어간 사실을 보고 받았지 않소."

"네..."

"장청청에 대해서는 이제부터 우리가 맡겠소. 단 씨 가문은 이제 장청청에게 손을 떼시오."

"아니 그건.."

"발견 당시부터 20년이나 붙잡고 있지 않았소. 이제 그만하면 충분합니다. 우리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소. 게다가 이미 장청청을 놓쳐 버리지 않았소?"

단 씨는 말문이 막혔다. 

말 문이 막힌 단 씨를 보며 동주석은 말했다.

"장청청은 이제부터 우리가 수배하겠소. 이제 단 씨 가문은 손을 떼는 것이오."

동 주석은 손짓을 했다. 이제 가라는 것이다.

단 씨는 일어서 뒤돌아 나오며 생각했다.

"흥, 장청청에게 쏟은 시간만큼 우리도 아무 소득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장청청이 갑자기 발현한 것은 틀림없이 그 주영범이라는 놈 때문이야. 주염범을 우리가 먼저 확보하면 된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복로를 지나 차량으로 돌아가는 통로에서 감전수가 귓가에 속삭인 말로 깨져버렸다. 감전수는 이렇게 말했다.

"단 동사장, 꿈에라도 주영범을 확보할 생각 하지 마시요. 우리 국가안전부가 이미 총 출동했소. 단 씨가 만일 개입한다면..."

단 씨가 감전수를 돌아보자 감전수는 조용히 웃었다.

단 씨는 머리끝까지 뜨거운 감정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이것들이 정말 나를 뭘로 보고!

그 순간 단 씨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며 입에서 꾸룩꾸룩하는 소리가 나왔다. 단 씨는 손을 파르르 떨더니 이윽고 가까스로 이 떨리는 몸을 추스르고는 차에 올라탔다. 차가 출발하고 단 씨가 붉으락 푸르락 냉정을 찾으려 애쓰고 있을 때 저 멀리서 감전수가 하늘을 바라보며 앙천대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단 씨는 조용히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빠무를 풀어라!"

전화기 너머로 흥분하는 소리들이 들렸다. 그렇다. 빠무는 백 년도 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빠무가 세상을 만날 때가 온 것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