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현! 코로나 바이러스!
빠무는 분노했다. 오랜만에 인간 세상으로 나와 이런 쇠로 만든 탈 것이 달려올 줄 몰랐다. 아니 무엇보다도 목표물을 발견하고 지나치게 흥분한 것이 문제였다. 빠무는 반대편에서 달려온 지하철 열차에 부딪혀 머리가 깨졌다. 팔다리의 뼈도 부러진 것 같았지만 그런 것들은 문제가 아니었다. 골수가 너무 빠져나가면 임무 수행에 지장이 있어서 안된다.
빠무는 지하철 열차에 매달려 있다가 열차가 금방 역에 도착하는 것을 보고 플랫폼으로 뛰어내렸다. 지하철을 기다리던 승객들은 빠무의 출현을 보고 모두들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사람들은 얽히고설키며 아우성을 쳤다. 그러다 한 여성이 쓰러지자 사람들이 그 여자에 걸려 마구 넘어지기 시작했다. 빠무는 몸을 날려 쓰러진 사람들 속으로 몸을 숨겼다. 잠시 후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나며 출구를 향해 갔을 때 빠무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강남경찰서에 국정원 사람들이 찾아온 것은 빠무가 사라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들은 빠무에 대한 정보는 국가 기밀이라며 강남 경찰서 사람들에게 수사를 하지 말도록 협조 요청했다. 이미 지하철 CCTV도 그들에 의해 수거되고 삭제된 후였다. 강남 경찰서로서는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국정원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입이 쩍 벌어지는 여자 괴물을 상대로 수사가 가능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번 정부 들어서서 수사는 모두 정치적 맥락에서 기소되고 있기 때문에 경찰이 특별히 움직일 기력도 없었다. 하지만 이런 사건이 시민들에게 잊힐 리는 만무했다. 유튜브에는 그날의 상황과 충격을 담은 동영상들이 올라왔고 소문에는 다시 소문이 꼬리를 이었다.
바로 그때쯤 국정원 한외선 차장은 전화를 한 통 받았다. 그가 상하이에서 근무하던 시절 알게 된 인물, 바로 석장군이었다.
"한차장, 나 석장군이오."
"오! 오랜만입니다. 어디십니까?"
석장군은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물었다.
"요즘 지하철 사건으로 떠들썩하지요?"
"음? 그건 또 어떻게 아셨나?"
"그 일, 사실은 우리가 조금 관련이 있소. 그 여자는 원래 우리 쪽 요인인데 사정이 있어 오래 구금 상태에 있었소. 그런데 탈출을 했는데 어떤 영문인지 한국에서 난리를 친 모양이오."
"사람인 건 맞습니까?"
"허허허... 뭐 조금 생물학적인 실험을 했다고 할까... 뭐 그런 거지요."
그런 실험체가 실수로 비행기를 타고 여권을 제시한 후 출입국 관문을 거쳤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정보기관들 사이에는 알려 줄 수 있는 부분만 알려 주는 것이 통상 관행이었다.
"그럼 회수는 한 것이요?"
"그게 아직은 아니지만 곧 회수하게 될 거요. 우리가 키우는 개니까 우리가 잘 압니다."
"지금은 언론을 막고 있지만 또 다른 사건이 생긴다면 그때는..."
"잘 알고 있소. 그때는..."
두 사람은 머릿속으로 그때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하였다.
이윽고 석장군이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우리 한차장에게 폐를 끼쳤으니 내가 답례로 정보를 하나 드리겠소."
"뭡니까?"
"우리나라 우한에서 아무래도 사고가 발생한 것 같소."
"무슨 사고?"
"우리 P4 생물학 연구소에서 바이러스가 누출된 모양이오."
"바이러스?"
"그렇소. 코로나 바이러스의 일종이오."
"전염성과 감염 시 증상은?"
"공기 중 전염이고 감염되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소."
"봉쇄는 되었소?"
"지금 우한시 전체를 봉쇄했지만 다른 지역에서도 징후가 포착되고 있소."
"아직 지역 문제면 중앙에서 잘 봉쇄하고 처리하면 될 문제 아니요? 왜 우리에게 알리는 겁니까?"
"그게... 아무래도 감염자가 한국에 입국한 것 같소."
"그럼 한국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될 것이라는 뜻이요?"
"바로 그렇소.."
"그리고 그게 답례요?"
"한차장, 우리나라 중앙 관료들도 지금 우한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져나가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소. 현재 국가 1급 비일이오. 한차장도 잘 알지 않소. 중국 공산당에서 당의 비밀을 누설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지금부터 신속히 대처하면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요."
"감염자 정보는?"
"그건 알려 줄 수 없소."
"무에라? 그럼 어떻게 대응한단 말이오?"
"강남역 사건이 왜 생겼는지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지 않소?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요. 한차장, 무운을..."
전화는 끊겼다. 한차장은 곰곰이 전화 내용을 검토해 보았다. 강남역에 괴물 여자가 나타났다. 정상적인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여자는 중국 권력 내부에서 보낸 괴물이라는 것이 된다. 분명히 그 괴물 여자는 무엇인가를 쫒고 있었다. 석장군의 말에서 추측하자면 괴물 여자가 쫒고 있던 것은 바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일 것이다. 한차장은 인터폰을 눌렀다. 그리고 말했다.
"청와대를 연결해."
대통령은 역시 정론을 내밀뿐이었다. 한차장의 건의로 열린 국가안보회의에서는 강남역 괴물 여자 사건과 중국 우한 바이러스에 대한 보고가 있었고 국정원이 정보 봉쇄를 했다는 것과 괴물 여자가 쫓고 있는 대상이 아무래도 한 중년 남자인 것 같다는 추정이 소개되었다. 그리고 한자장과 국정원장은 대통령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러나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것은 역시나 구체적인 지시나 명확한 목적은 아니었다. 그는 단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최선을 다하여 국민의 안전을 지켜달라고 하는 말 뿐이었다. 한차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대처 방안까지 준비해서 보고했어야 했다. 그가 보건행정까지 책임질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말이다. 최선을 다할 수 없다면 차선을 해야 하는 법이다. 그는 회의가 끝나고 나가는 박은주 질병관리본부장을 붙잡았다. 박은주 본부장은 국가안보회의에 처음 참석하여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는데 사실 그는 언제나 어리둥절한 모습인 사람이었다.
"박본부장님, 잠깐 이야기 좀 하십시다."
"네?"
"사실은 이번 바이러스 상황은 매우 심각해 보입니다. 저희 직원들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한에 바이러스가 발생한 사실은 중국에서도 비밀로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만..."
한차장은 품 안에서 사진을 한 장 꺼내 박은주에게 주었다.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우한의 모든 화장장에 시체가 몰려와 쌓이고 있습니다. 장례용품장에도 장례 물품 재고가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요원들의 분석으로는 하루 사망자가 백여 명이 넘는 것 같습니다."
박은주는 이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전염병 전문가이고 역학 조사의 경험이 있던 박은주는 이야기를 듣는 동시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감이 잡혔기 때문이었다.
한차장은 다시 사진을 한 장 꺼내 주었다.
"얼마 전 강남의 한 지하철 역에서 이런 괴물 여자가 나타났습니다. 금장 사라졌지만 말입니다."
박은주가 사진을 보자 도저히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는, 마치 야차처럼 생긴 여자가 찍혀있었다. 박은주가 이 무슨...이라는 얼굴로 쳐다보자 한차장은 다시 사진을 한 장 꺼내 주었다. 거기에는 중년의 남자가 뒤돌아 보는 모습이 찍혀있었는데 화질로 보아 CCTV의 한 장면 같았다.
"자세한 내용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괴물 여자가 쫓고 있던 것은 바로 이 남자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남자가 이번 중국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이 깊다고 보고 있습니다."
박은주가 예의 그 어리둥절한 얼굴로 다시 한번 한차장을 쳐다보았다. 한차장은 한숨을 쉬고는 다시 말했다.
"박 본부장님은 역학조사 경험이 있으시지요? 이 남자로부터 시작해서 역학 조사를 시작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국정원은 이미 추적 팀을 꾸렸습니다. 그러나 추적에 이용할 수 있는 정보가 너무 없습니다. 하지만 이 남자가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되어 있거나 감염되어 있다면 생물학적인 연관 정보가 있을 수 있을 겁니다. 협조를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협조해 드릴까요?"
"역학 전문가 두 사람 정보를 우리 추적 팀에 투입해 주시고 관련 회의에 본부장님도 참석해 주십시오. 단 이 일과 관련된 모든 사항은 비밀로 유지해야 합니다."
박은주는 고개를 끄덕했다. 순간 잠시지만 박은주의 어리둥절한 표정이 냉랭한 얼굴로 변했다. 그렇다. 박은주는 결코 보이는 것처럼 어수룩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일에 관한 한 누구보다도 프로페셔널이었던 것이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보건소 의사 생활을 하다가 특채가 된 그는 전형적인 외유내강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번 일이 그녀의 일생 중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물론입니다. 전력을 다해서 지원하겠습니다. 아니, 원래부터 이 일은 우리 질병관리본주의 일입니다."
한차장은 박은주의 얼굴 표정이 변하는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국정원 차장도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한차장은 갑자기 이번 일이 잘 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싱긋 웃으며 박은주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한차장은 뒤돌아 걸어갔는데 박은주는 한차장의 등판을 바라보며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만일 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매우 치명적이라면 감염자가 강남에 나타날 때까지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치명적이 아니라면 우한에서 화장터에 사람들이 줄을 설 이유도 없었다. 그렇다면 바이러스는 상당한 잠복기가 있다는 것인데 그 잠복기의 길이가 이번 대처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었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는 바로 이런 때를 위해서 존재한다. 그리고 그 모든 책임은 그녀의 작은 두 어깨 위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