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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 Dec 14. 2024

사랑하는 청청씨

북둥이의 편지

청청씨, 

당신이 제 메일을 볼 수 있는지 모르겠군요. 저는 당신과 헤어진 후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중국에 더 이상 있기 어려워졌잖아요.


제가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제 신상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전 집도 절도 없는 신세입니다. 그래서 우선 생계가 막막했지요. 하지만 산 입에 거미줄칠 일은 없었어요. 결국 어느 한 술집에서 웨이터 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이 술집은 전문적으로 여자들에게 술을 팔고, 또 남자도 파는 집이었어요. 하지만 신분을 묻지 않고 숙식도 제공하는 곳은 이곳뿐이었어요. 나이 든 남자는 아무도 원하지 않거든요. 여기서는 인생의 바닥을 있어요. 사실 인생이라는 말도 우스워요. 사람이 동물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으니까요. 부처의 말처럼 중생이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동물들도 함께 포함해서 말이죠.


한 번은 술에 취한 아주머니가 저를 붙잡고 유혹을 해서 술집 화장실에서 섹스를 한 적이 있어요. 원해서 한 것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이 일자리가 저에게는 너무나 소중해서 손님들이 저를 해고하라고 할까 두려웠어요. 이런 술집의 웨이터 자리야 언제든지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제가 지금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못되거든요.


그런데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어요. 당신에게 메일을 보내는 이유 중에는 이 사실을 당신에게 알리고 조언을 받고 싶은 것도 있어요. 여자 손님과 섹스를 저는 몸에 활력이 도는 것을 느꼈어요. 처음에는 오랜만에 섹스를 해서 그런 알았어요. 그런데 다음날 거울을 보니 얼굴에 주름이 조금 줄어든 같았어요. 조금 젊어진 기분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다음에는 취한 손님이 저를 붙잡고 요구하면 거절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섹스를 하고 나면 확실히 젊어진다고 느낄 있었어요. 다른 것은 몰라도 머리카락이 다시 나기 시작했거든요. 저는 지난 이십 년 이상 대머리였어요. 그런데 머리카락이 났다고요!


저는 이제 사십 줄로 보여요. 머리숱이 제법 늘어서 이제는 대머리 소리도 안 들어요. 그냥 머리숱이 많이 줄어든 아저씨인 거죠. 이대로 가면 머리숱이 젊었을 때처럼 다시 울창한 숲처럼 변할 수도 있겠어요. 운동도 지속적으로 했더니 뱃살도 많이 빠졌어요. 이제 80kg 대랍니다. 저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전 거의 100kg에 가까웠어요. 


청청씨, 

연구소에서 청청씨와 있었던 일을 저는 잊을 수가 없어요. 제가 청청씨에게 한 행동은 정말이지 청청씨에게 얼굴을 들을 수가 없는 잔인하고 수치스러운 것이었어요.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주세요. 저는 청청씨를 처음 본 순간부터 청청씨의 모습을 뇌리에서 지울 수가 없었어요. 그날 청청씨에서 몹쓸 짓을 하면서 저는 마음속으로 저 자신을 저주하고 또 저주했어요. 하지만 저처럼 나이 많고 뚱뚱한 대머리 아저씨가 어떻게 청청씨 같이 젊고 아름다운 처녀에게 연정을 품을 수 있겠어요? 세상 사람들이 모두 비웃을 거예요. 저 자신도 비웃었고요.


청청씨,

그 이상하고 괴기스러운 붉은 살덩어리 기억하세요? 이제 그 붉은 살덩어리는 완전히 제 몸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붉은색도 옅어져서 지금은 그저 처음부터 제가 달고 태어난 것처럼 보여요. 가끔 새벽에 잠을 깨면 그 '북둥이'(제가 지어준 별명이에요. 붉은 기둥이라는 뜻이죠)가 혼자 치솟아 있기도 해요. 그놈은 그저 멍청이 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가끔 움찔거리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저는 혼자 팔베개를 하고 물끄러미 그놈을 바라보아요. 북둥이는 누구일까?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허공에 물어보기도 해요.


하지만 이제 다 지난 일이죠. 저는 아마도 이렇게 어둠의 거리를 전전하며 살아가겠죠. 운이 좋으면 조금은 나은 일자리를 찾을 수도 있을 거예요. 아니, 어려울 거예요. 한국은 정보화가 잘 되어 있어요.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지려면 신분을 밝혀야 해요. 회사를 세울 때에도 마찬가지예요. 지금 제 나이가 오십을 훌쩍 넘었는데 이렇게 나이 많은 사람(차마 노인이라고 하지는 싫군요)을 고용할 데가 없어요.


메일이 길어졌어요. 서툰 중국어로 써서 청청이 제대로 이해할까 모르겠네요. 언젠가 세상이 바뀌면 멀리서나마 청청을 볼 수 있기를 바라요. 아. 가슴 한쪽이 아련해지네요. 사춘기 소년 시절 이래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날 줄은 몰랐어요. 미안해요. 청청 입장에서는 비릿한 중년 남자에게 이런 말을 듣는 것은 매우 불쾌한 일일 텐데 말이에요. 부디 건강하세요. 그리고 제가 한 일들을 잊고 행복한 삶을 살아나가기를 정말 정말 빌겠어요.




따거, 

당신이 메일을 보내오리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했어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난 당신이 좋아요.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면 이 말을 못 할 것 같아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먼저 이 말을 하는 거예요.


당신과 연구소에서 있었던 일은 저에게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뒤집히는 일이었어요. 그것은 당신이 한 일이 싫거나 미워서가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였어요. 난 당신과 하나가 된 일을 잊을 수가 없어요. 정말이에요.


저는 사실은 높은 사람들의 정부 노릇을 하고 있었어요. 생각해 보세요. 저처럼 젊은 여자가 어떻게 중요한 국가 비밀 연구소의 중요 간부가 될 수 있겠어요? 연구소장? 그런 인간은 자격이 없지요. 저를 노리개로 삼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나라의 가장 높은 권력자들이었어요. 그리고 그들의 힘으로 저는 연구소에 있었던 거예요. 연구소장 같은 놈은 그냥 대외용이었어요. 


알아요. 제가 따거를 처음 만났을 때 더러운 물건 보듯이 했다는 것을(죄송해요). 알아요, 제 태도가 안하무인이었다는 것을(아! 제가 그때 왜 그랬을까요?)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지금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잖아요? 저는 알아요. 이건 사랑이에요. 난 당신을 사랑한다고요!


알아요. 따거가 지금 어려운 처지에 있다는 것을. 알아요. 따거가 감히 저에게 다시 접근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다는 것을.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이건 운명이에요. 우리는 처음부터 운명으로 이어져 있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꼭 다시 만나 행복한 한 쌍이 될 거예요. 저는 그 미래가 보여요.


당신의 다리 사이에 늠름하게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을 그놈(북둥이라고 했나요?)을 생각하니 제 몸이 꼬여요. 당신도 알지요? 그놈이 따거의 일부분이 되기 전에 잠시이지만 저의 일부분이기도 했었다는 것을. 그러니까 우리는 북둥이를 통해서 한 몸이 되어 있는 거예요. 아. 저는 참지 못하겠어요. 제 손은 지금 북둥이가 있었던 곳으로 내려가 있어요. 저는 지금 북둥이가 있었던 자리를 매만지고 있어요. 당신의 북둥이는 반응하고 있나요? 틀림없이 반응하고 있을 거예요? 하나도 이상할 것 없어요. 내 몸에 남아 있는 북둥이는 당신 몽에 자리 잡은 북둥이와 틀림없이 교감하고 있을 거예요. 양자 엮임이 그런 거잖아요?(따거는 엔지니어니까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죠?) 몸이 이미 뜨거워졌어요. 아.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거예요. 아무래도 따거를 만나야 같아요. 몸에 남아있는 북둥이가 맹렬하게 따거 몸의 북둥이를 원하고 있나 봐요.(저도요!) 


따거가 연구소를 떠난 뒤 저도 연구소를 나왔어요. 어떻게 나왔는지는 지루한 이야기이니까 생략할게요. 제가 일단 연구소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로 나왔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따거가 어디에 있는지 알겠더라고요. 느낄 수 있었어요. 우리는 한 마음 한 몸인 거예요! 따거가 섹스를 하면 저는 느낄 수 있었어요. 따거가 절정에 다다를 때 저도 절정에 도달했다고요, 젠장할! 그게 저한테 얼마나 큰 고통인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은 우리가 서로 떨어져 있으니 용서할게요. 더구나 젊어지고 있다니 저와 다시 만날 때까지 충분히 섹스하고 충분히 젊어지세요. 하지만 우리가 다시 만나면 저만 바라봐야 돼요. 저하고만 섹스해야 한다고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북둥이를 다시 떼어서 제 몸에 넣겠어요. 어떻게 하면 그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따거에게 메일을 쓰고 있으니 북둥이가 있던 자리에서 스멀스멀 뜨거운 기운이 솟아올라요. 보이지는 않지만 정말 북둥이의 일부가 제 몸 안에 남아있나 봐요. 아! 견딜 수 없어요. 제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그곳으로 가고 있어요. 당신도 느낄 수 있나요? 제 손가락이 느끼는 뜨거운 감촉을? 제 다른 손은 가슴을 매만지고 있어요. 따거가 뜨거운 숨을 불어넣으며 입 안에 넣던 제 유두가 지금 딱딱하게 일어났어요. 모두 당신 때문이야!

오늘 편히 자기는 틀렸어요. 아! 어서 빨리 만나요. 어떻게 해야 만날 수 있는지 알려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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