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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 Nov 16. 2024

사냥하는 빠무

빠무, 강남에 나타나다

성철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대학 시절 클럽을 전전하며 훤칠한 키와 앳된 얼굴로 여자들에게 인기를 끈 시절이 있었다. 그 후 마마에게 간택(?) 당하여 호스트 클럽에서 일한 지 벌써 5년이 넘었다. 그리고 그가 이 호스트 클럽 '아트홀'에서 넘버 원이 된 지도 이젠 3년이었다. 강남에 자리한 '아트홀'은 손님들이 남의 귀를 의식하지 않고 입에 담기 위해 고안된 이름이었고 제법 있어 보이는 이름인지라 고급 손님들이 많았다.


그런데 지난달부터 아트홀에는 이상한 긴장감이 흘렀다. 웨이터 놈 중 하나가 불쾌감을 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웨이터 놈은 오십은 되어 보이는 그야말로 개저씨였는데 틈틈이 여자 손님들을 헤벌쭉한 얼굴로 쳐다보곤 해서 신경이 쓰이긴 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마마와 붙어먹은 것이었다. 마마도 문제였다. 마마는 나이는 사십이 넘었지만 외모에는 끔찍하게 신경을 써서 삼십 대 중반으로 보였다. 젊었을 때 룸사롱에서 아가씨로 시작해서 산전수전 다 겪었고 언젠가부터 호빠를 시작한 후 영업 재능이 꽃 폈다. 마마가 아트홀에서 버는 돈이  한 달에 수 천은 될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오십 먹은 개저씨와 붙어먹다니!


성철, 아니 브랜트(그의 업소 명이다)는 딱히 마마를 여자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항상 자기를 가게 넘버원이라고 치켜세워주던 마마가 이제 웨이터와 매일 시시덕 거리는 모습을 보자니 속이 좋지 않았다. 마마가 남자를 사귀면 가게에는 전만큼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여자란 그런 것이다. 점점 가게 꼴이 이상해져 갈 것임이 틀림없었다. 가게를 들어서며 성철은 다른 호빠를 알아보아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가게에 들어서면서 마음을 다시 잡았다. 가게 문을 들어서면 그는 성철이 아니라 브랜트다. 그리고 브랜트는 여자들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마법사이다.


브랜트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입구 작은 홀에 있던 호스트들과 웨이터들이 인사했다. 브랜트가 "마마는?"이라고 묻자 다들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브랜트는 다시 외쳤다. "마마는?" 그러자 호스트 중 하나가 뒤쪽 쪽 룸이 있는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브랜트가 그리고 향하자 다들 손사래를 쳤다. 브랜트는 이들의 손짓 발짓을 무시하고 가장 안쪽, 항상 마마가 똬리를 터는 그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남자의 무릎 위에서 상하 운동을 하고 있는 마마였다. 마마는 "으허~ 으허~" 하면서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 마마의 몸 뒤로 사내의 웃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그 개자식이었다. 브랜트가 혐오의 표정을 짓자 그 개자식은 서양 사람처럼 두 손을 옆으로 벌리며 '내가 뭘'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이지....


브랜트는 씩씩 거리며 뒤돌아 나왔다. 홀에서는 다들 브랜트의 시선을 피하며 어색해하였다. 세상에. 영업장에서 이게 무슨 꼴인가? 이제 아르홀도 끝났군이라는 분위기가 흘렀다. 그때 갑자기 브랜트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니, 이게 기회일 지도 몰랐다. A급들을 이번 기회에 자기 밑으로 확보해서 항상 브랜트를 스카우트하고 싶어 했던 마담 쥴리에게 가면 더 좋은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이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브랜트는 리더십을 발휘해야겠다는 생각에 호스트들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됐어! 우리라도 영업 준비를 하자. 다들 정상적으로 준비해!"

호스트들은 어기적 어기적 일어나며 몸단장을 하기 시작했다. 웨이터들도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문이 열리며 한 여자가 들어왔다. 아트홀에 오기에는 너무 젊은, 어쩌면 어린 여자였다. 서른도 안 돼 보였다. 여자는 눈을 아래로 깔고 움직임이 침착했는데 그런 모습이 오히려 주의를 끌게 하였다. 있다. 이런 여자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별 다른 행동을 하지 않지만 남자들의 주의를 끌게 되는 여자 말이다. 브랜트는 머릿속에서 그의 본능이 이 여자는 위험해, 이 여자는 위험해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브랜트는 자신이 가게 넘버 원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고 마담 줄리 가게로 스카우트될 것을 또 생각하며 머릿속으로 여자를 공략할 전략을 골랐다.


브랜트가 그러거나 말거나 여자는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들어와서는 홀의 한 자리에 앉았다. 그 움직임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사람들은 이 여자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을 할 지경이었다.   브랜트가 접근을 하기 위해 몸을 움직인 순간 찰스라는 녀석이 먼저 여자에게 다가가서 옆에 앉았다. 찰스는 어서 오세요 어쩌고 하며 누가 봐도 빤한 대사를 읊어댔다. 가게 안의 모든 호스트는 여자의 반응에 주의하고 있었다. 여자는 묵묵히 찰스가 떠벌이는 것을 듣고 있더니 고개를 들어 다른 호스트의 얼굴을 하나씩 쳐다보기 시작했다. 다들 얼굴에 싱긋한 미소를 만들기 시작했다. 여자가 파트너를 고르려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의외로 여자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올드맨...이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다들 어라? 하며 의아해했다. 여자는 다시 말했다. "I want older man." 


다들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 하며 놀랐다. 뭐지? 외국인인가? elder가 아니라 older? 그럼 비영어권 사람인가? 모두 상황을 이해하려 할 때 여자는 일어서더니 안쪽 룸들이 늘어선 복도로 들어섰다. 웨이터가 하나 여자의 길을 막아서며 말했다. 

"손님, 시간이 조금 일러서 준비가 덜 되었습니다. 제가 룸을 치워드릴 테니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여자는 웨이터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손을 들어 웨이터를 밀쳤다. 그리고는 안쪽 복도를 또각또각 힐 소리를 내며 걸어 들어갔다. 브랜트는 황급히 쫓아가서 말했다. 

"Let me help you, ma'am."

여자는 브랜트를 힐끗 쳐다보더니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브랜트는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이 손님은 내 거야 하고 기쁨에 잠겨 외쳤다.


여자는 똑바로 마담이 그 짓거리를 하고 있을 방을 향해 걸어갔다. 브랜트는 못 볼 꼴을 보일까 마음이 급해져 막아서려 했지만 여자는 이미 문을 연 다음이었다. 그리고 룸에는 마마 혼자 널브러져 있었고 웨이터는 보이지 않았다. 브랜트는 달려가 마마를 흔들어 깨우려 했다. 마마는 '홍야홍야' 알지 못할 신음 소리를 내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쨌든 별 탈은 없는 것으로 보여 브랜트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브랜트가 안도의 한숨을 쉬고 난 후 돌아본 순간 그가 그의 짧은 평생이 마지막에 잊지 못할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바로 방안에 같이 들어선 여자의 얼굴이 위아래로 길게 늘어지며 두 눈도 함께 크게 찢어졌고 이윽고 입을 열자 아나콘다의 입처럼 커다랗게 열리며 길고 큰 어금니를 들어낸 것이었다. 브랜트는 비명을 지를 수도 없이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이윽고 웨이터가 룸에 들어섰을 때 그가 본 장면은 사방에 핏자국이 펼쳐져 있는 방안에 배가 열린 채 내장이 모두 파 먹힌 마마와 브랜트의 시신이 버려진 인형처럼 사지가 꺾인 채  널브러져 있는 것이었다. 그는 평생 잊지 못할 트라우마를 그 순간 받았다고 후에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은 나중에 이 엽기적인 사건에 호빠 살인 사건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수사를 개시했다. 그리고 과학수사대를 동원해서 알게 된 사실은 오십대로 알려진 웨이터의 지문 조회 결과 그는 60대인 주영범이었다는 것뿐이었다. 여자의 정체를 알 수 있는 단서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이 사건은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경찰은 알지 못했지만 그 여자는 브랜트를 해치우고 나서 추적을 계속하고 있었다. 바로 주영범을 쫒는 추적 말이다. 여자가 마마의 내장을 파먹고 알게 된 것은 마마의 내장 기관이 이미 변이를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변이 유전자는 주영범으로부터 온 것이 틀림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유전자에는 틀림없는 붉은 뱀의 유전자가 섞여 있었다. 붉은 뱀의 유전자가 나타난 것은 여다혜가 다시 강호에 출현했다는 뜻이었다. 여자는 '으르르르' 하며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여자가 홍사방과 마지막 조우했던 것은 벌써 이십 년도 전의 일이었다. 여자가 갇혀 있는 동안 강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여자로서는 알 수 없었다. 


뭐 아무래도 좋았다. 여자는 이따금 세상에 나올 수 있을 뿐이었기에 한껏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미 주영범과 붉은 뱀의 냄새를 머리에 각인시켰고 호스트 클럽의 뒷문부터 줄곧 냄새를 따라갈 수 있었기 때문에 추적에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었다. 아! 그리고 그 호스트 놈의 내장은 썩어서 정말 맛이 없었다. 반면 마마의 내장은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특히 주영범의 유전자와 붉은 뱀의 유전자가 함께 버무려진 부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싱그러운 맛이었다. 여자는 입술을 만지작 거렸다. 아직도 입술에 그 맛과 향기가 남아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맛이 나면 인간의 여자들은 미칠 지경일 것이었다. 아마 그 여자는 매일 주영범의 성기를 물고 빨고 했을 것이다. 여자는 쿡쿡 웃었다. 내 이빨로 주영범의 성기를 물어뜯으면 어떤 맛일까 하는 행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여자의 옆을 스치고 지나가던 청년이 눈을 크게 뜨며 연신 뒤돌아 보며 갔다. 여자는 안다. 사람의 아들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빠무는 사내들에게 말할 수 없는 매력을 풍긴다. 설령 비루한 얼굴에 초췌한 형상을 하여도 사내들은 빠무의 매력에 이끌려 온다. 그리고 빠무에게 희생되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빠무가 남자의 정기를 빼앗아버린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빠무는 남자의 유전자를 냄새 맡고 그들과 같은 종족이 아니면 사냥을 한다.  빠무는 허공을 향해 다시 코를 쫑긋 세우고 냄새를 맡았다. 자. 주영범. 내가 간다.


영범은 달리고 있었다. 본능이 도망치라고 하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다리에 힘이 붙었다. 전과는 달리 달려도 그리 힘이 들지 않았다. 영범은 멈추지 않고 사람들이 많은 곳을 선택해 가며 달렸다. 사람들은 강남의 복잡한 거리에서 뛰는 그를 보며 질겁했지만 영범은 한 번도 부딪히지 않고 뛸 수 있었다. 영범은 달리며 안마시술소에서 나오던 때를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자신의 신체에 변화가 생긴 것은 미미한 정도였다. 하지만 안마하던 아가씨가 비틀거리며 자신을 배웅할 때 그는 아가씨와는 반대로 힘이 넘치고 활력이 있었던 것은 확실했다. 보통 여자를 안고 난 다음 날이면 자신의 양물은 하루 이틀 지나야 회복이 되었는데 그는 거리로 나오자마자 두 다리 사이가 뻑적 지끈한 것이 이미 다시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 한 푼도 없었기 때문에 그저 하릴없이 거리를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의아해했다. 자신의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젊어진 것 같았고 머리에도 숱이 조금은 늘은 것 같았다.


그는 안마시술소를 나온 날 다시는 먹고 잘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날 이후 영범은 거리를 걷는 여자들 중 섹스를 갈구하는 상태에 있는 여자를 본능적으로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범은 안마시술소를 나와 헤매던 거리에서 우연히 그의 앞에 걷고 있는 중년 여자의 엉덩이와 걸음걸이를 보자 그 여자가 섹스에 굶주려 있음을 직감했다. 그는 그 여자를 따라 걸어갔다. 그리고 그 여자가 들어가는 아파트를 따라 들어가 여자가 집 문을 열 때 뒤에서 여자를 밀며 들어갔다.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영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불문곡직 여자의 옷을 벗겨가며 가슴을 애무하였다. 여자는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영범이 한 손으로 입을 막으며 위협적으로 쳐다보자 동작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영범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동안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호흡을 몰아쉬었다.


그날 영범은 그 여자와 대 여섯 번의 섹스를 했다. 두, 세 번이 지나자 여자는 소리를 지르며 문자 그대로 발광을 했다. 그리고 섹스를 거듭할수록 영범은 더욱 힘이 났다. 양물도 점점 더 딱딱해지고 조금씩 커져갔다. 다섯 번째쯤인가에서 영범은 여자의 음부에 집어넣은 양물에서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양물이 영범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꼬물거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여자가 절정에 당해 몸부림을 치자 양물은 여자의 몸에서 무엇인가를 빨아 마시기 시작했다. 영범은 양물이 빨아들이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그것이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오며 마치 박하향이 입안에 퍼지는 것처럼 몸안 구석구석에 퍼져나가는 것을 느끼고 희열을 느꼈다. 여자는 허리를 뒤집으며 헐떡였는데 어쩐지 허리가 줄어든 것 같았다. 여자는 고개를 돌려 영범을 바라보았는데 흰 자위의 가장자리가 핑크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여자는 약간 고개를 꼬며 교태를 지었다. 영범이 한번 더?라고 묻자 여자는 고개를 외면하더니 끄덕였다. 여자는 굴복한 것이다.


그날 영범이 한번 더 섹스를 하고 나자 더 이상 여자로부터 에너지가 들어온다는 감각이 없었다. 그리고 여자는 확실히 몸무게를 잃은 것으로 보였다. 여자는 더 이상 영범을 거부하지 않았지만 영범이 여자의 지갑을 열고 신용카드를 집어 들고나갈 때에도 저지하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들고 또 언제 올 건가요?라고 물었을 뿐이었다.


영범은 이런 식으로 중년 여자들을 섭렵해 나갔다. 섹스를 갈구하는 중년 여자들은 대개 혼자 살고 있었고 영범은 그들의 집을 전전하며 한 달 정도를 살았다. 그날 이후 영범은 섹스를 하면 무엇인가 자신의 몸으로 보충이 되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여자 쪽은 에너지를 빼앗기는지 점점 더 허해져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점점 조금씩 젊어지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그는 희열을 감출 수 없었다. 그가 호스트 바의 웨이터로 나선 것은 호스트 바에서 성에 굶주린 여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일을 생각하며 달리던 영범은 뒤통수에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 뒤돌아 보지도 않았지만 영범은 호스트 클럽의 그 여자가 쫓아오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이런 젠장. 영범은 그 여자가 누구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지만 그 여자가 위험하다는 것만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영범은 지하철 역으로 뛰어 내려갔다. 개찰구를 훌쩍 뛰어넘은 영범은 플랫폼으로 달렸다. 마침 지하철 차량이 문을 닫으려 하고 있었고 그는 전력을 다해 달려가 지하철 차량 안으로 굴러 들어갔다. 그제야 뒤를 돌아본 영범은 그 여자가 달려들어 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지하철 차량은 출발했기에 영범은 비로소 안심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다음 순간 영범의 눈에 비친 풍경은 그 여자가 전력을 다해 달려와 점프를 하여 지하철 차량에 달라붙는 것이었다. 여자는 팔을 비틀어 열차의 지붕을 잡았는데 팔 길이가 두 세배는 늘어난 것 같았다. 다리 또한 늘어나더니 열차의 아래쪽과 천장에 발을 사용해 붙잡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도어 창문을 통해 영범을 보고는 입을 벌리며 웃었다. 여자가 웃자 입이 쩍 벌어지며 기괴하게도 얼굴이 위아래로 길어졌다. 눈도 왕방울처럼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쩍 벌어지는 입에는 짐승의 어금니 같은 이빨이 빼곡했다. 열차 안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영범은 공포에 사로 잡혔다. 이게 무슨 괴물인가? 할리우드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이 서울 시내의 현실 세계에 펼쳐진 모습이었다. 영범은 소리를 지르며 다음 열차 칸으로 뛰어갔다. 여자는 영범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열차 차량을 싸안은 모습으로 영범을 추적하였다. 열차는 그야말로 광기의 도가니가 되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여자의 반대 방향으로 뛰어갔고 서로 밀치고 넘어지며 아수라장이 되었다. 영범이 다시 다음 열차 칸으로 옮겨 가고는 절망했다. 열차의 끝이었던 것이다. 여자는 하나를 뻗어 차량의 문을 열려고 했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지하찰 열차와 충돌한 것이었다. 영범은 기절할 것 같았지만 온 힘을 다해 깨어 있으려 애썼다. 마침 지하철이 역에 도착하여 문을 열자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모두 뛰쳐나갔다. 바깥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밀려 나오는 사람들이 덮치자 화를 내며 욕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두 내렸을 때 주영범의 모습 또한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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