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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명 Aug 18. 2024

맛있는 술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

처음으로 마시는 한잔이 행복입니다.

단언컨대 가장 맛있는 술은 첫 잔이다. 그 술이 무엇이던 자리가 시작하고 처음으로 마시는 한잔이 행복이다. 그 한잔은 일상과 휴식의 경계를 가르는 신호. 쏘맥 한잔을 단숨에 들이켜고 내뱉는 '캬야'소리는. 풀어짐의 시작을 알리는 호각소리이다. 요시땅! 이 한 잔의 맛있는 술을 위해 세상은 끊임없이 술땡기는 일들을 내게 선물하는지도. 모르겠다.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주류박람회에 다녀왔다. 부산에서 세계를 만나다니 이 얼마나 좋은가. 세계일화(世界一花) 붓다의 가르침이 알코올에도 이르렀음이 감사할 따름이다. 국제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았던 와인과 사케, 위스키와 막걸리, 맥주와 소주가 어우러진 동서양 대화합의 장. 발그레 혹은 불그락해진 얼굴로 부스 사이를 오가는 바쿠스의 신도들. 그들의 분주한 발걸음으로 소란스러운 행사장 한편에 헤밍웨이가 남긴 문장도 보인다.


'지혜로운 사람은 종종 멍청이들과 어울리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한다(an intelligent man is sometimes forced to be drunk to spend time with his fools)' 스페인 내전을 다룬 헤밍웨이 의 소설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에서 나온 문장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조종이 울리고 있을 건데. 그나저나 나는 인텔리전트 맨일까. 그의 바보들 중에 한 명일까.

[나는 지혜로운 사람일까. 멍청이에 속한다 믿는게 정신건강에 좋을듯]


하이볼 한 잔과 돼지갈비 후라이드를 사서 행사장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는다. 오늘의 첫 번째 술. 행복이 파도처럼 밀려오며 얼굴에도 살짝 열이 오른다. 역시 첫 잔은 진리다. 술을 맛있게 먹기 위해 술자리를 바꾸며 첫 잔만 마시는 캐릭터는 어떨까 상상해 본다. 그런 잔기술로 술자리에서 제일 맛있는 부분만 얌체처럼 탐닉해 오던 그가 어느 날 살인사건의 용의자이자 목격자로 지목된다. 사간당일 무려 일곱 곳의 술자리에서 목격된 사람. 수사망을 좁혀가다 보니 증인들의 진술에서 미세한 모순이 발견된다. 취한 사람들의 기억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것일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각자의 동기는 무엇이 있을까. 증거는 어디에 있고 어떻게 발견될 것인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자


가장 맛있는 술은 첫 번째 잔속에 있다. 그리고 그 술 한잔은 세상이 던지는 치욕을 견디고 살아남은 이들을 위한 선물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 힘든 일이 있더라도 그 한 잔의 술을 생각하며 한 번 더 참아봐도 괜찮지 않을까. 했던 말을 계속하는 것 보니 시음만으로도 사람이 취할 수 있구나. 아직 맛보지 못한 술이 많은데.


[내년에 다시 가게된다면, 케리어를 하나 끌고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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