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은 작년과 다르다. 매일이 같은 날이 있겠냐만은 올해는 유난히 예년 같지 않다. 한 달 넘게 이어진 폭염도 어색하지만 비 오는 모양새가 많이 바뀌었다. 불현듯 시작해서 바짝 쏟아내고 금방 끝난다. 차의 지붕이 찌그러질 듯이 비가 퍼붓다가도 금세 햇빛은 쨍쨍이다. 이제 패션푸르트가 경남지역의 특작물이 되었다는 뉴스까지 나온다. 살면서 기후대가 변하는 걸 경험하게 되다니. 럭키인건가.
부산에서 전주로 출장을 가는 길. 야외 일정이 있는데 비 소식이 있다. 전날 소멸된 태풍 종다리의 영향으로 전국적으로 내리는 비. 남부지방은 5~40mm의 비가 예보되었는데, 시시각각으로 날씨가 바뀐다. 검은 먹구름이 그르렁 대다가도 터널을 하나 지나면 차창을 뚫고 들어온 햇빛에 팔뚝이 벌겋게 익어간다. 그래서 오늘 오후 3시 전주에는 비가 올 것인가. 비가 오는 게 좋을까. 폭염보단 옷이 좀 젖는 게 수월하지 않을까. 예정시간이 되기 전에는 답을 알 수 없는 생각들을 반복하며 지루한 출장길을 견디어 본다. 그렇게 몇 번째 일지 모를 터널을 통과하고 나니 눈앞에 커다란
무지개가 보인다. 시작과 끝이 다 보이는 완벽한 아치. 빨간색부터 보라색까지 일곱 가지 색이 모두 선명한 무지개는 오랜만이다. 수돗가에서 호스로 물을 뿌려 만들던 무지개는 그냥 물장난이었던가. 산과 산을 가로지르는 스케일에 압도된다. 진짜 저 다리를 건너 누구라도 만날 수 있겠구나. 무지개다리를 먼저 건너간 사람들은 꿈꾸었던 꿈들을 다 이루며 살고 있을까. 사진을 찍을 생각도 못하고 감탄하기를 한참. 뒤늦게 핸드폰을 꺼내고 보니 눈앞에 구름만 보인다. 무지개는 가까이 가면 사라지는구나. 하긴 무지개를 향해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려가본 적은 처음이니.
[대충 이런 느낌이었는데.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쉬울 뿐]
'무지개는 실제 물체가 아닌 광학적 환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물리적으로 다가갈 수가 없다. 관찰자의 위치로부터 특정 거리에서 생기지 않고 공기 중 물방울들에 의한 빛의 굴절, 반사, 분산에 의해 발생하여 특정 각도로 볼 때 관찰 할 수 있다'
백과사전의 무심한 설명이 야속하다. 무지개는 정작 바로 앞에서는 볼 수 없는, 닿을 수 없는 꿈인 건가. 그래서 그렇게 아름다운가.
동경하던 무언가에 실제로 도달하고 나면 상상과의 낙차에 허탈해지곤 한다. 하지만, 그래도 무지개를 쫓아간 덕분에 몇 킬로미터는 즐겁게 달릴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인생은 어차피 필멸을 향해 가는 여정. 인생가도의 풍경이 익숙함을 지나 지루함으로 바뀔 때쯤 무지개가 나타나 준다면. 그래서 또 얼마간 설렘으로 즐거울 수 있다면노래라도 부르면서 달릴 텐데. 무슨 노래가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