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제명 Aug 24. 2024

무지개를 향해 달리기

somewhere over the rainbow

올해 여름은 작년과 다르다. 매일이 같은 날이 있겠냐만은 올해는 유난히 예년 같지 않다. 한 달 넘게 이어진 폭염도 어색하지만 비 오는 모양새가 많이 바뀌었다. 불현듯 시작해서 바짝 쏟아내고 금방 끝난다. 차의 지붕이 찌그러질 듯이 비가 퍼붓다가도 금세 햇빛은 쨍쨍이다. 이제 패션푸르트가 경남지역의 특작물이 되었다는 뉴스까지 나온다. 살면서 기후대가 변하는 걸 경험하게 되다니. 럭키인건가.


부산에서 전주로 출장을 가는 길. 야외 일정이 있는데 비 소식이 있다. 전날 소멸된 태풍 종다리의 영향으로 전국적으로 내리는 비. 남부지방은 5~40mm의 비가 예보되었는데, 시시각각으로 날씨가 바뀐다. 검은 먹구름이 그르렁 대다가도 터널을 하나 지나면 차창을 뚫고 들어온 햇빛에 팔뚝이 벌겋게 익어간다. 그래서 오늘 오후 3시 전주에는 비가 올 것인가. 비가 오는 게 좋을까. 폭염보단 옷이 좀 젖는 게 수월하지 않을까. 예정시간이 되기 전에는 답을 알 수 없는 생각들을 반복하며 지루한 출장길을 견디어 본다. 그렇게 몇 번째 일지 모를 터널을 통과하고 나니 눈앞에 커다란


무지개가 보인다. 시작과 끝이 다 보이는 완벽한 아치. 빨간색부터 보라색까지 일곱 가지 색이 모두 선명한 무지개는 오랜만이다. 수돗가에서 호스로 물을 뿌려 만들던 무지개는 그냥 물장난이었던가. 산과 산을 가로지르는 스케일에 압도된다. 진짜 저 다리를 건너 누구라도 만날 수 있겠구나. 무지개다리를 먼저 건너간 사람들은 꿈꾸었던 꿈들을 다 이루며 살고 있을까. 사진을 찍을 생각도 못하고 감탄하기를 한참. 뒤늦게 핸드폰을 꺼내고 보니 눈앞에 구름만 보인다. 무지개는 가까이 가면 사라지는구나. 하긴 무지개를 향해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려가본 적은 처음이니.


[대충 이런 느낌이었는데.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쉬울 뿐]


'무지개는 실제 물체가 아닌 광학적 환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물리적으로 다가갈 수가 없다. 관찰자의 위치로부터 특정 거리에서 생기지 않고 공기 중 물방울들에 의한 빛의 굴절, 반사, 분산에 의해 발생하여 특정 각도로 볼 때 관찰 할 수 있다'


백과사전의 무심한 설명이 야속하다. 무지개는 정작 바로 앞에서는 볼 수 없는, 닿을 수 없는 꿈인 건가. 그래서 그렇게 아름다운가.


동경하던 무언가에 실제로 도달하고 나면 상상과의 낙차에 허탈해지곤 한다. 하지만, 그래도 무지개를 쫓아간 덕분에 몇 킬로미터는 즐겁게 달릴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인생은 어차피 필멸을 향해 가는 여정. 인생가도의 풍경이 익숙함을 지나 지루함으로 바뀔 때쯤 무지개가 나타나 준다면. 그래서 또 얼마간 설렘으로 즐거울 수 있다면 노래라도 부르면서 달릴 텐데. 무슨 노래가 좋을까.

[말하는 듯한 가사에서 느껴지는 빗방울이 튕기는 듯한 리듬감이 좋다.]
이전 14화 맛있는 술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