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즈머스 다윈(Erasmus Darwin, 1731. 12~ 1802. 4)은 영국의 의사, 자연철학자, 생리학자, 발명가, 시인이다. 그리고 무려 찰스 다윈과 프랜시스 골턴의 할아버지이다. 진화론과, 우생학의 대명사인 두 사람이 모두 그의 손자이다. 인류의 위대한 과학적 성취 중 하나인 진화론과, 인상적인 실패 중의 하나인 우생학에 모두 지분이 있는 셈이다. 그는 지금 천국과 지옥. 어느 편에 있을까.
[다윈, 골턴의 할아버지이자 루나 소사이어티의 발기인 이래즈머 다윈]
1776년 경에 이래즈머스는 동료들과 함께 ‘루나 소사이어티(Lunar Society)’ 설립했다. 회원으로서는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와트(James Watt), 산소를 발견한 조셉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 기체 등불을 발명한 윌리암 머독(William Murdock), 도자기를 산업화한 조시아 웨지우드(Josiah Wedgwood), 제조 업자이자 공학자로 증기기관을 대중화시킨 매튜 볼턴(Matthew Boulton), 그리고 무기회사 사장이었던 사무엘 골턴(Samuel Galton)이 있다. 미국의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과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도 참석한 바 있다. 가로등이 없던 시절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갈 때 불빛이 필요해서 보름날 모였다는 모임. 매번 모임 때마다 루나맨을 선정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발제를 하고 토론을 했다고 하는데 주제는 사회, 경제, 문학, 철학을 가리지 않았다고 한다. 옛날식 번역으로 만월회. 회원들의 이름만 쭉 나열했는데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참가자의 전기로만 전집을 만들어도 될 수준이다. 타이틀은 '만월 총서'
'만월 총서'에 담길 유의미하지만 뻔한 얘기들은 잠시 두고, 그 모임의 풍경에 대해 마음대로 상상해 본다. 모임이 있기 몇 달 전부터 발표를 준비하며 머리를 쥐어뜯었을 발제자, 술 마시며 떠들고 놀 생각에 전날부터 행복했을 나 같은 사람, 따라가서 용돈도 받고 친구들과 놀 생각에 신났을 자녀들. 오늘은 쓸데없이 잘난 척하지 말라고 핀잔을 들었을 박사님들. 말과 술. 분위기가 익어가는 밤. 시간이 멈춰버린 그 풍경 속 만월회에서 잉태된 생명과 아이디어가 현재의 인류에게 제공한 편의를 생각한다면, 오늘날 밤이 늦도록 술잔 기울이며 얘기 나누는 이들을 좀 더 따뜻하게 볼 수 있지는 않을까. 술병사이로 오가는 수많은 가능성의 말들. 그중 몇 가지는 현실로 실현되어 우리 앞에 다가올 것이고, 그들 중 몇몇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데 성공할 것이니. 적어도 보름달이 뜨는 밤은 술꾼들을 욕하지 않는 것으로 해보는 건 어떨까.
*루나 소사이어티 회원들은 모임에 자녀들을 동반하기도 했었는데, 아빠들이 열띤 토론을 하는 동안 사랑을 키우는 꿈나무들도 있었다. 도자기 회사 사장님인 웨지우드가 찰스 다윈의 외할아버지. 무기회사 사장님인 사무엘 골턴이 프랜시스 골턴의 할아버지인 이유가 아닐까.('루나'님의 브런치 글, '산업혁명의 시작 루나 소사이어티' 참조) https://brunch.co.kr/@hvnpoet/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