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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명 May 03. 2024

나의 심야식당은 어디인가

2024 오뚜기 푸드에세이 낙선작

평양온반은 평양 지역의 전통 장국밥이자 온반으로서 겨울철에 즐겨 먹는다. 보통은 밥에 닭이나 꿩 또는 쇠고기를 고아 우려낸 뜨거운 육수를 더하고, 그 위에 고기와 버섯·호박·당근 등 야채와 달걀지단을 고명으로 올리는데 고명 중 하나로 녹두지짐 또한 같이 올려서 빨리 식지 않게끔 하며 양념장과 함께 상에 낸다. 나박김치와 물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금상첨화. 다만, 현대 북한에선 오직 닭고기만을 평양온반 조리에 사용하고 있으며, 다른 종류의 고기는 사용을 금기시한다. 평양온반의 유래에는 다음과 설화가 있다. 의경이라는 사람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는 연인을 지극정성으로 돌봤는데, 추운 겨울날 밥에 여러 고명을 올려 뜨거운 국을 붓고 식지 않게 지짐으로 덮은 다음 치마폭에 감싸 가져다준 것이 지금의 평양온반의 시초라는 것이다. 그 후 평양에서는 의경과 형달처럼 뜨겁게 사랑하며 살라는 의미를 담아 온반을 결혼식 상에 올린다고 한다. 평양온반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오찬 메뉴로 나와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당시 북한음식점 사장에 의하면,  생소한 메뉴이다 보니 평소 손님들이 별로 찾지 않았으나, 남북정상회담 후에는 너도 나도 찾게 되었다고 한다. 삼계탕을 온반으로 만든 삼계 온반도 있다. 2018년 9월 방한한 인도네시아 대통령 조코 위도도가 한국 음식 중 삼계탕을 가장 좋아한다고 알려졌는데, 그를 위해 국빈 만찬으로 준비했다고 한다. -나무위키 '평양온반' 참조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하여, 대학가에서 북한 바로 알기 캠페인이 진행되었다. 모교에서도 비슷한 행사가 진행되었는데 다른 대학과는 다르게 이북 음식 맛보기 코너가 있었다. 취사병으로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선배가 야심 차게 아이디어를 냈고, 결국 혼자서 모든 코너를 맡아서 준비했었다. 제한된 예산과 열악한 조리환경으로 인해 평양냉면, 어복쟁반 같이 유명한 음식들은 사진을 부착한 대자보로 소개하고, 평양온반은 실제로 시식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는 계획이었는데, 부산 촌놈들 중 그 누구도 평양온반을 먹어보기는커녕  본 적도 없었고,  제대로 된 레시피를 찾을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기에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다. 엉성한 조리법만을 붙들고 어떻게든 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


‘밥에 닭·꿩 또는 쇠고기를 고아낸 육수를 더하고, 그 위에 고기와 야채, 달걀지단을 고명으로 올린다. 고명 중 하나로 녹두지짐 또한 같이 올려서 양념장과 함께 낸다.’


녹두전은 빈대떡 비슷한 것인가. 꿩은 귀하고, 소고기는 비싸니 그럼 닭을 삶아서 육수를 내야 하겠구나. 호박당근 야채는 나물 하듯이 볶고, 지단은 구워서 칼로 자르면 되겠구나, 그나저나 도마는 어디 있는 거지? 행사 4시간 전부터 생닭을 고으기 시작한 선배는 그 육수를 따로 덜어서 식히고, 잔치국수에 넣을법한 지단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군대에서 배운 기술이 유용하게 쓰이는 것이 기분이 좋았는지, 아니면 개똥밭에 굴러도 싸제가 좋았는지. 시종일관 유쾌하게 일을 했던 선배는 참 군인.. 아니 참 선배였지만, 닭을 고으기엔 버너의 화력은 너무 약했고, 프라이팬은 녹두전을 굽기에 너무 작았다. 요리라곤 라면밖에 해본 적이 없었던 후배들은, 닭을 찢어 하얀 고명을 만들고, 삐뚤삐뚤 지단을 썰고, 좌충우돌, 야단법석. 그렇게 만든 7~8인분의 온반. 민족상대 2천 명이 맛보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예수님이 강림하시어 오병이어의 기적 시즌2를 행하시기를 기다려 보았지만. 주님이라고는 주(酒)님 밖에 몰랐던 우리에게 기적을 주실 리가 만부당. 원자단위로 나눠 담았던 온반은 30분도 안되어서 전부 사라지고, 닭육수 냄새만 로비에 남았다. 너무나 맛이 궁금했던 평양온반은 그렇게 미결사건이 되어 내 기억 속에 남겨졌다.


‘내 사진 벽에 붙여놓고 잠도 못 자고 내 생각만 해요’ 잠도 못 자고 평양온반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침내', 평양온반을 먹게 되었다. 그것도 부산의 작은 오피스텔 상가에서. 이번에 찾은 식당은 두 번 방문했는데, 첫 방문 시에 남긴 메모는 다음과 같다. '평양냉면, 들기름 막국수, 녹두전. 과연 빕구르망에 어울리는 ‘합리적인 가격과 적절한 맛'. 그러니까 눈이 번쩍 떠지진 않지만 그래도 기본은 하는, 그렇지만 또 일부러 차를 타고 가서 먹기에는 애매한 맛.’ 약 한 달의 시간이 난 후 그 가게를 다시 찾았고 조금 여유 있게 메뉴를 보다가 발견한 ‘온반’.


‘온반’이라고만 되어 있었지만 혼자 ‘평양’을 붙여, 여보 마누라 여기 평양온반을 다 파네, 평양온반이 뭔지 알아? 하며, 6.25 사변 때 내려온 실향민 마냥 신나서 떠들다가, 결국 냉면집에서 냉면은 안 시키고, 온반을 시켰다. 24년의 기다림 끝에 맛본 평양온반은 닭인지 소인지 모를 육향이 살짝 느껴지는 담백한 국물, 토렴을 해서 적당히 살찐 밥알들, 계란 지단 약간과, 주먹만 한 녹두전. 그리고 고기국물에 어울리는 양지 고기. 글자만 보고 만들었던 그 온반보다 훨씬 소박하고 단정한 음식. 화려하진 않지만 따뜻한 한 끼. 같이 나온 나박김치가 어울리는 슴슴한 맛. 평양냉면의 국밥 버전이라 불러도 될만한 중독성 있는 감칠맛. 이제야 해결된 호기심.

[사진을 이쁘게 찍었어야 했는데, 대충 이런 느낌입니다. 평양온반]

자극적인 맛을 무차별로 때려 붓기 바쁜 요즈음, 슴슴한 감칠맛이 오히려 필요한 게 아닐까. 아무 맛도 아닌 듯한 맛이지만. 행여 국이 식을까 뜨거운 지짐을 붙여 위에 얹고서,  또 한 겹 싸서 잰걸음으로 걸어가던 그 마음. 최첨단의 위생적인 시스템에서 만들어낸 표준화된 맛에는 담을 수 없는 무언가가 아쉬운 시절인 듯하다. 누가 먹게 될지 알 수 없는 도시락과 밀키트를 만드는 사람에게 조리의 과정은 밥벌이를 위한 노동에 그칠 것이며, 만든 사람의 얼굴도 모르고 먹는 편의식들은 하루를 유지하게 하는 음식. 자동차에 넣는 기름 정도의 기능일 것이다. 사람이 자동차가 아닌데, 연료만으로 거친 세상을 버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심야식당’  류의 이야기들이 사랑받는 게 아닐까. 언제나 자리를 지키는 무심한 마스터가 만든 나만을 위한 요리. 심심하고 슴슴한 그 한 끼가 주는 위로가 그리운 날. 오뚜기 카레를 먹자.

[그런 사람도 있지 않을까. 오뚜기 카레로 위로를 받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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