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을 위한 심리학 레시피 5
직장인을 위한 심리학 레시피
강지현 팀장은 상담실에서 팀원인 민영민 사원이 보낸 이메일을 출력해서 몇 번째 읽고 있다. 혹시 행간을 잘못 읽은 것이 있나 없나 체크했고, 그 메일 내용에 대한 자신의 피드백도 메모했다. 자주 팀원들과 면담을 하지만 사표를 쓰겠다고 하는 팀원과의 면담은 처음 이었다. 회의실 문이 열리고 이영민 사원이 들어왔다.
”어서와 영민! 팀장 놀라게 하는 메일 보내고 얼굴은 편해 보이네?“
”죄송합니다. 팀장님.. “ 영민은 약간 머리를 긁적이면서 자리에 앉았다.
”아니야.. 그래도 고민을 이렇게 먼저 알려줘서 나는 영민씨가 고마워..
일단 나는 팀장으로서 우수한 인재인 영민씨가 사표를 쓰겠다는 것에 대해 그 뜻을 잘 이해하고 설득을 하거나 동조를 해야 하는 입장 이라서.. 메일로 보낸 것도 있지만 일단 영민씨의 생각을 직접 듣고 싶어 자리를 마련하자고 했어.“
” 네! 저도 직접 설명드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영민은 약간 긴장되었지만 정확한 발음으로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기 시작했다.
”팀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저는 신입사원 연수시절 동기회장 이었습니다. 제가 동기회장이 되었던 것은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제 모습을 많은 동기들이 인정하고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이 회사는 제가 1지망으로 원했던 회사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분명 좋은 회사였고 2지망으로 원했던 곳이었기에 더 열심히 제 열정을 쏟아 1지망 회사를 못 간 것이 후회되지 않도록 하고 싶어 연수생 시절부터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강팀장도 신입사원 연수생 동기회장 이었던 영민을 기억하고 있었다. 연수기간 강팀장이 한시간 동안 석유팀 부서 소개 시간을 가졌고, 그 때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질문하면서 무역관련 전문용어를 잘 알고 있던 영민을 처음 만났다. 잘 가르치면 석유팀의 좋은 인재가 되겠다 싶어서 본부장님께 신입으로 꼭 데리고 오고 싶다고 강력히 말씀 드렸고, 당시 영민을 노리는 팀장들이 몇 명 더 있었지만 본부장님의 지원으로 강팀장은 여유 있게 영민을 팀원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팀장님! 저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이런건줄 몰랐습니다.
선배들에게 제가 1년간 배운 것은 장표 만들고, 오타 체크하고, 업체 리스트 작성하고, 단체 이메일 보내고, 컴플레인 정리해서 통계 만드는 것이 전부입니다. 저는 정말 열정적으로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사업을 만들고, 다이나믹한 새로운 석유소재를 찾아내고, 많은 해외에서 제대로 된 물건을 찾아 진정한 무역전쟁에서 승리하는 주인공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단순 반복적이고 지겨운 일을 하는게 지쳤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직급이 올라가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죄송한 말씀이지만 선배이신 최과장님이나 박대리님을 보면 지금 제 모습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몇 년후에도 제 모습이 저럴 것이라 생각하니 더 막막합니다.
팀장님! 저는 진정으로 제 열정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강팀장은 영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영민의 멘토였던 최과장은 강팀장에게 몇 개월전 이렇게 보고한 적이 있었다.
” 팀장님! 저도 팀장님 말씀처럼 영민씨에게 큰 기대를 했었는데요.. 음.. 생각보다 일 처리가 서툰 것이 많습니다. 일단 기본적인 업무에 실수가 많아요, 대외 문서를 작성할 때 사후 검토를 잘 안해서 오타도 많고, 기본적 제품 코드도 아직 숙지가 안되어서 엉뚱하게 입력해서 전산 처리가 안된 경우도 있었구요.. 대화를 해 보면 신사업 아이디어나, 기존 업무 방식에 대한 개선점은 잘 이야기 하는데, 기본적 실무처리나 단순 업무에서 누구나 알아야 할 기본이 너무 부족합니다.“
강팀장은 영민이 생각보다 오해하고 있는 것이 많다고 느끼면서 자신이 미리미리 챙기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도 밀려왔다.
영민은 점점 상기되었는지 목소리가 커졌다.
“팀장님! 저는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대학 졸업연설을 지금도 자주 봅니다.
잡스가 거기서 이렇게 말하죠.. 내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나 살고 있는지에 대한 존재 이유를 찾아라, 그리고 그 존재 이유에 도달하기 위한 구체적 비전을 설정하라,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일을 찾아라. 그 일은 열정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좋아하면서 잘 할 수 있고, 밤을 새도 지치지 않으며, 그 어떤 장애가 와도 헤쳐 나갈 수 있으며, 천직이라 생각되어야 한다. 팀장님께 사표 낸다는 메일을 보내기 직전에도 이 영상을 보았습니다. "
강팀장은 영민의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때로는 공감이 되고, 때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가급적 영민의 말을 끊지 않고 다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팀장님! 저는 매일 저녁마다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나는 과연 오늘 하루 가슴 뛰는 열정으로 살았는가? 늘 대답은 아니더라구요, 그렇다면 열정이 없는 직장을 그만두고 나와서 가슴 뛰는 일을 찾아야 하는가? 다음 달 카드값을 생각하면 그건 용기가 없어 안되니 그냥 다니자.. 이러는 제가 그렇게 한심해 보일 수 없습니다.
팀장님! 저는 아무래도 발로 뛰어 새로운 계약을 따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창의적으로 기획하는 일에 열정이 많습니다. 이처럼 큰 기업의 이미 셋팅된 업무에서 단순히 숫자 채워 넣고, 장표그리고, 계약서 체크하고 하는 일에는 제 열정을 쏟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용기를 가지고 떠나려고 합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열정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그리고 세상은 당신의 열정을 파악하고 그 열정에 맞는 일을 찾아 떠나라고 말한다. 스티브 잡스도 그랬고, 수많은 자기계발 서적들도 열정 이야기를 했으며, 다단계 자석요를 파는 네트워크 마케팅 현장에서도 늘 열정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열정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열정을 가지고 있고 그 열정을 어떤 분야에서 쏟을까?
캐나다 심리학자 로버트 밸러랜드는 2002년 연구에서 대학생 539명을 대상으로 두가지 질문을 했다. (Les passions de I’ame : On Obsessive and Harmonious Pass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5,no 4(2003): 756-67.)
하나. 당신은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까?
둘. 그 열정을 어디에 쏟고 있습니까?
조사결과 학생들 중 84퍼센트가 열정을 품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것으로 보면 학생시절부터 많은 사람들이 열정을 알고 실제 이를 품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재미있었던 것은 과연 어디에 열정을 쏟고 있는가? 라는 것이었다.
이 조사결과에서 사이클,조깅,수영 등 개인적 운동에서 35%,농구,하키,축구 등 팀 스포츠에서 25%, 음악감상, 영화 등에서 15%, 기타연주,피아노 연주에서 10%, 소설,시 읽기에 5% 정도의 비율로 열정을 가장 쏟는다고 말했고 정말 중요한 일이나 학습, 공부에 대해서는 4% 정도만 열정을 쏟는다고 대답했다.
사람의 4%가 업무나 일에서 열정을 쏟는다고 답한 것이다. 물론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다 보니 직장인과 연관성이 떨어진다고 반론 할 수도 있겠지만 열정적으로 어떤 것에 몰입한다고 할 때 그 대상이 업무가 되는 비율이 매우 작다는 것이 증명된다.
” 영민씨! 마음은 내가 잘 알겠어.. 그리고 영민씨가 선배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내가 이해해.. 하지만 그게 선배들이 너무 한심하고, 열정적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일이나 업무에 열정을 쏟는 것 자체가 이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봐.“
강팀장은 녹차를 한모금 마시면서 말을 이어갔다.
” 애초에 영민씨가 원하는 1지망 회사를 갔더라면 더 열정적이 되었을까? 또는 지금 대기업의 셋팅된 보수적 업무처리 방식이 재미없으니 좀 더 다이나믹한 중소기업의 영업기획이나 마케팅으로 간다면 영민씨의 열정이 맞아서 열심히 일을 하게 될까?
영민씨에게 잡크래프팅의 대가인 예일대학교 브제니브스키 교수 이야기를 좀 해줘야 할 것 같아“
잡크래프팅의 대가인 브제니브스키 교수는 우리가 일 혹은 직업이라고 불리우는 것을 잡,커리어, 콜링(job, carrer, calling) 이렇게 세가지로 구별했다. (브제니브스키, 1997)
내가 하고 있는 일을 Job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 회사를 다니는 이유는 다음달 카드값 때문에 다니는 것이다. 한마디로 생계를 위해서 이다.
만약 자신이 재정적으로 조금만 안전하다면 이 회사를 다니지 않고 다른 일을 할 것이다.
회사에 오면 빨리 퇴근하고 싶고, 만약 자신의 자녀가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겠다고 하면 절대 권유하지 않고, 말린다. 오직 지금의 일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 그들에게 하고 있는 일은 바로 Job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Career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이 회사는 내가 더 좋은 목표와 궁극적으로 가서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한 중간 지점이다.
나에게 하고 싶은일이 있는데 그 일을 바로 시작하기에 실력이나 경험이 부족하다.
이때 부족한 경험과 실력을 쌓기 위해 이 회사와 이 일을 선택하는 것이고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더 좋은 목표로 가기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몇 년후에 내가 이 직장에 있을것으로 기대하지 않느다. 더 좋고, 더 높은 곳으로 갈 것이다. 그 목표로 나아가기 위해 지금의 일이 지루하고 시간낭비 같지만 잘 해야 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Calling이라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내 삶의 존재 이유이다. 나는 지금 일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과 연결되기에 지금 나의 일을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 일을 하는 것이 너무 기쁘고, 나에게 일이란 곧 내 자신이다. 일을 집에 가져가서 하기도 하고, 휴가에도 일에 신경이 쓰여 지속적으로 확인한다. 친구 대부분이 직장동료이고 일과 관련된 사적모임이나 관련 단체등에 소속되어 있다.
자신이 하는 일로 세상이 더 좋아진다고 생각하고, 친구와 아이들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하겠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동참시키고, 격려한다.
이들은 자신의 일을 Calling 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하나의 직업군에서 3가지로 자신의 일에 구별한다는 것이 모든 직업군에 적용되는 것일까?
브제니브스키는 의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사무직 직원 등 다양한 직업군을 조사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이 3가지 중 하나로 인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대학 행정 직원 연구에서 이렇게 자신의 일을 각각 Job, Career, Calling으로 생각하는 비율이 거의 비슷하게 나타났음을 증명했다.
이는 업무유형 즉 직업의 유형만 가지고 그것이 좋으면 대부분 Calling 으로 생각하고, 그렇지 않으면 Job으로 생각할 것이라는 연구 전 가설을 깨트렸고 업무의 객관적 요인 보다 일을 하는 사람 스스로가 자신의 일을 어떻게 인식하고 바라보는가가 더 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브제니브스키는 여기서 한발 더 연구를 진행했다. 같은 직장내 에서도 자신의 일을 Calling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Job 또는 Career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차이가 발생하는 요인이 무엇일까?를 찾은 것이었다.
나이, 수입, 학력, 건강과 관련성을 찾으려 했지만 발견되지 못했다. 유일하게 자신의 일이 Calling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Job이나 Career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차별화 되는 점은 바로 근속년수 였다. 즉 더 오래 일한 사람들이 주로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소명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즉 가장 행복하고, 가장 열정적인 직원들은 열정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의 일에 충분히 능숙해질 만큼 오래 일한 사람들이란 이야기 였다.
강팀장은 관련 논문에 대한 내용을 쭉 설명한 이후 정리를 했다.
”영민씨가 하던 일이 Job 이었을까? 아니면 Career? Calling?
아마 영민씨는 본인의 일을 Job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 그런데 그 이유가 과연 일의 종류 때문 이었을까? 영민씨가 1지망 이었던 회사에 입사하고, 우리 석유팀이 아닌 영업과 마케팅을 총괄하는 팀으로 가서 다이나믹 한 일을 했다면 다르게 생각했을까? 나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이미 수많은 근거가 이를 가리키고 있잖아,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자신의 일이 Job, Career, Calling 중에서 하나로 선택되고 영민씨가 이야기 하는 열정으로 가슴뛰게 자신의 일을 Calling으로 하는 사람들은 근속 년수가 긴, 즉 이미 일에 숙달되어 아주 잘 하는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해
영민씨! 좀 아프겠지만 말할께..
나는 팀장으로써 영민씨의 사표를 수리할 수 없어! 왜냐면 영민씨가 생각하는 그 열정을 찾아 몰입한다는 것이 너무 허망된 이야기이기 때문이지.
그리고 영민씨는 지금 우리팀 일이 안맞아서 열정이 없는게 아니라 일을 못하니 열정이 안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해! 이런 영민씨가 다른회사, 다른 직무로 이동하게 되면 열정을 가지고 일을 잘할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영민씨는 일단 일을 잘해야 해!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일을 잘하고 난 이후에 다시 이야기 하자구!“
영민은 매우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강팀장을 바라보았다.
그로부터 2년후
전자결재가 올라온 것을 처리하던 강팀장은 영민을 불렀다.
”우와! 영민씨! 아이디어 제출했던 석유화학제품 신규프로젝트 있잖아! 지금 본부장님 결재 떨어졌어.. 사장님께 보고 할 수 있도록 프리젠테이션 자료 준비해야 겠는데?“
”우와! 예스! 하하하 감사합니다. 팀장님!“
영민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옆에 있던 최과장, 박대리도 자리에 일어서서 축하 해주었다.
” 오! 영민! 대단한데?“ ”축하해 영민!“
”아닙니다. 다 선배님들이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팀장님! 사장님 보고는 저희팀 이름으로 최과장님, 박대리님과 함께 협업해서 준비해 보겠습니다.“
” 그래! 아마 혼자 준비하기에 버거울거야, 최과장이 주로 많이 도와줘, 영민씨 덜렁거리는 업무처리를 바로 잡느라고 최과장이 가장 고생 많이 했잖아!“
” 맞습니다. 팀장님이 재작년 제가 사표냈을 때 일 잘하기 전까지는 사표수리 못한다고 하셨고, 이후 팀장님이 직접 제 업무에 대해 하나하나 가르치시면서 저를 깨트리면 최과장님이 다독거리면서 하나하나 챙겨주셨어요...
특히 저는 장표만들고, 통계 정리하고, 업체 리스트 엑셀자료 만드는 것이 단순 리스트 정리라고 생각했는데 최과장님은 그게 단순 정리업무 같지만 거기서 흐름을 읽고, 차이를 발견하고, 새로운 시각을 얻는다면 충분히 제 능력을 이 곳에서 발휘할 수 있다는 말씀이 제게 큰 용기가 되었습니다. 두분 너무 고맙습니다.“
” 그럼 오늘 커피는 우리 영민씨가 사는건가?“
” 넵! 당장 벤티(venti) 사이즈로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