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아파트 커뮤니티(인터넷 단톡방)에 들어가 보면 코로나-19 다음으로 가장 핫이슈는 층간소음 이야기이다.
물론 층간소음 문제가 한 두해 이야기는 아니지만 코로나-19로 애들이 계속 집에 있다 보니 답답함에 집안에서 뛰고, 이는 자연스레 아래층으로 전달되면서 가뜩이나 스트레스가 많은 형국에 또 하나의 스트레스가 추가되는 상황인가 보다.
항의방문했더니 위층 사람이 몰지각하게 나오더라, 먹을 것으로 읍소하니 도움이 되더라, 반드시 경비실을 통해서 방문하라 등등의 고전적 이야기부터,
보복용으로 스피커를 천정에 붙여서 음악을 틀면 그 소음이 위층으로 전달되어 복수가 가능하다, 법적 분쟁 가능성이 있으므로 천장을 두드리는 것은 가능하지만 현관문을 두드리는 것은 위법이라는 판례를 알아야 한다는 최신 이야기까지 나온다.
건설사가 제대로 공사하지 못해 피해가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갔는데,
아파트값 때문에 외부에는
"우리 아파트는 층간소음 절대 없어요"
라고 하면서도 안으로는 속끓이를 하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특성으로 살인까지 가는 엄청난 문제를 야기시키지만 제대로 된 해결책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는 이 현실을 보면서 내가 경험했던 층간소음 문제가 하나의 해결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지금은 애들이 고2, 중1이다 보니 걱정이 덜하지만, 이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내게 층간소음은 항상 가해자 입장에서의 미안하고 조심스러운 숙제였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이전의 아파트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딸이 여섯 살, 아들 녀석이 세 살 때였는데 그 집은 처음 이사 간 날부터 쉽지 않은 생활이 시작될 것을 예감하게 했다.
이사하는 당일 아래층 아주머니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 오늘 이사 오시나 봐요? "
" 아.. 네 안녕하세요!"
" 이사 언제까지 하실 건가요?" (약간 피곤한 말투)
" 아.. 글쎄요.. 이제 시작하면 저녁 6시 정도에는 끝날 것 같은데요." (약간 황당)
" 아유.. 우리 딸 지금 시험기간인데.. 시끄러워서 어째.. 조용해야 하는데.." (짜증스러운 표정)
" 아. 네 죄송합니다." (미안하지만 많이 황당... 당신도 이사 온 날이 있었을 텐데..)
이사 첫날부터 보통 아주머니가 아니라는 생각에 걱정이 한가득 몰려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창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윽박도 지르고, 타이르고, 매트를 깔아서 기술적으로 막으려 하기도 했지만 결국 층간소음을 막지 못했고 그로인한 민감한 아래층 아주머니의 항의는 본격화 되었다.
경비실을 통해 또는 직접, 수시로 항의할 때마다 죄송하다는 말로 머리를 조아렸지만,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는 그 횟수도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자 아내도 나도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애들이 뛰어서 소음이 가는 건 미안한데.. 하지만 이렇게 찾아오는 건 뭐 숨 쉬지도 말라는 거야 뭐야..'
가끔씩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어색한 인사를 하고 서로 침묵을 유지하며 긴장감이 흐르는..
그 긴장의 무게만큼 스트레스가 조금씩 커져가던 그 무렵..
놀랍게도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해결되어 버렸다.
이사 오고 1년쯤 지났을 때 아래층 아주머니가 갑자기 가정집 주산 보습학원을 열었다.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주산을 가르친다는 유인물이 붙어 있었고 나는 이를 보자마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은솔이 당장 등록시켜!"
"갑자기 주산은 왜? 아래층 그 아줌마한테?"
"주산을 잘하면 머리가 좋다고.. 그리고 그게 우리한테 도움이 될 것 같아"
우리 딸은 그 주산 보습학원의 첫 번째 등록 학생이 되었다.
놀랍게도 모든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이후에 한 번도 아래층 아주머니는 우리 집에 층간소음 문제를 항의하지 않았다.
한 달이 되어 처음 교육비를 직접 주고 온 날 아내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 어제.. 아래층에 교육비 내러 갔었는데.. 세상에 그 아주머니가 그렇게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맞이한 게 처음인 것 같아.. 너무 밝게 웃으면서 은솔이 칭찬을 하더라고.."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바로 해석 수준의 전환이다.
지난번 작성했던 "내로남불은 과학이다"에서 밝힌 적이 있듯이 해석수준이론 (Consrual Level Theory)에 따르면 어떠한 현상에 대해 해석을 할 때 사람들은 각자에게 있는 심리적 거리를 통해 해석을 결정하게 된다. 심리적 거리가 멀수록 상위 수준으로 해석하고, 가까울수록 하위 수준으로 해석하게 되며, 이러한 해석 수준으로 판단과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상위 수준 해석이란 추상적, 원칙적, 본질적, 중요성 등을 기준으로 why 관점의 해석을 말하고, 하위 수준 해석이란 구체적, 예외적, 활용성, 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how의 관점에 따른 해석이다.
애초 아래층 아주머니에게 우리 딸은 시끄러운 위층 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해석이 되었다.
따라서 이웃 간에 서로 피해를 주면 안 된다, 층간소음은 매우 큰 피해 행위, 따라서 이에 항의하고 못하도록 이의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나의 권리이다.라는 관점에서 해석하고 접근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우리 딸이 보습학원에 등록을 하면서 추상적 개념이 구체적 개념으로 바뀐 것이다.
이제는 위층 아이가 아니라 우리 학원에 다니는 위층 은솔이가 된 것이다.
그러면 층간소음이 들린다, 아~ 은솔이가 뛰네.. 녀석 뭐 신나는 일이라도 생겼나? 내일 만나면 너무 뛰면 아래층에 피해 간다고 타일러야지..라는 관점으로 해석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나는 위층의 소음 때문에 지금도 피해를 받고 있다. 짜증이 난다. 그럼 나도 보습학원을 열어서 위층 아이를 등록시키란 말인가?
나의 제안은
"위층 아이의 이름을 알아두세요"이다.
위층 아이의 이름을 알게 되면 나의 해석을 바꿀 수 있다.
즉 "추상적 윗집 아이"가 "구체적 윗집 6살 OO이"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는 고도의 노력이 요구되는 문제이다.
내가 피해자인데 그것까지 해야하느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당신이 어떤 방식으로 하던 층간소음은 해결 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위층 사람이 상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각자의 상반된 입장이 지속적으로 부딛치면 어떤 가해자도 기분이 상하고 처음의 미안한 마음은 갈등으로 사라지고 적대감이 커질것이 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