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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봉희 Apr 21. 2020

날씨 알림 서비스

 5년을 근무했던 미술학원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짜리 건물이었다. 나는 매일 학원에 오는 작고 귀여운 아이들을 데리러 3층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어느 날은 시간이 촉박해서 아이를 안고 아주 다급하게, 또 어느 날은 걸음이 느린 아이의 손을 잡고 아주 여유롭게 오르고 내렸다.


 퇴근이 가까워져 갈 때 하루에도 열 번이 넘게 오르내리는 계단 덕분에 내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그런 모습을 본 고학년 친구들은 내게 안쓰럽고 동정 어린 눈빛을 보내왔다. 가끔은 내가 수업을 하는 건지 아이들 픽업을 하러 다니는 건지 내 주 업무가 무엇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그런 정체성 혼란 속에서도 나는 맡은 일을 곧잘 해냈었다. 혼자서 잘 해내는 내 모습이 대견하도, 지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내 왼쪽 무릎은 혼자 외롭게 병이 나고 있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느껴지는 무릎 통증. 통증의 원인을 알고 있었지만, 나의 계단 오르내리기는 멈출 수 없었다. 무릎이 아픔의 고함을 질러도 병원에도 가보지 않았다. 늘 며칠 아프다 괜찮아지고, 견딜만했다. 의사 면허도 없는 내가 자가 진단을 내렸었고, 주인 잘못 만난 무릎이 돌팔이 의사한테 된통 당한 셈이었다.


 지금은 미술학원을 퇴사해 무릎과 눈치 게임을 할 일이 없다. 나의 퇴사가 무릎에는 아주 좋은 소식이었을 거다. 그렇게 한동안 무릎은 고함을 지르지 않았고, 내가 비록 돌팔이 의사였지만 꽤 괜찮은 진단이었다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자만이었음을 깨달았다.


 걷는 게 힘들 정도로 무릎의 통증이 짜릿하지 않은가. 하루아침에 절룩이 신세가 되었다. 소파에 바르게 앉아도 아프고, 바닥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아도 아프고, 침대에 누워봐도 아프니 이게 무슨 일인가 겁이 났다. 혹시 내가 어제 너무 무리했나 싶어 눈동자를 위로 추켜올리며 복기해보지만, 어제의 나는 집순이였다.


 무릎의 멈추지 않는 고함으로 종일 병원에 갈지 말지 고민으로 가득 찼고, 고민을 오래 한 나머지 해가 저물어버렸다. 결국 나는 또 병원을 가지 않고 잠자리에 누웠다. 뒤척이지 않고 잘 잤다면 좋았으련만 밤새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통증을 최소화하려 노력했다. 오랜 시간 이리저리 뒤척이다 어느새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얕은 잠에서 깨어 몸을 일으켰다. 무릎은 어제보다 더 짙은 통증을 호소했고, 다리를 절룩거리며 거실로 향해 창에 커튼을 걷어 올려 묶었다. 내 눈에 보이는 창밖의 날씨는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창밖에는 보슬보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창밖 비에 젖은 놀이터를 보며 한참을 넋 놓고 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가 내리려나 보다. 무릎이 아프네." 어릴 적 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때의 나는 엄마의 말을 공감할 수 없었다. 비가 내리는데 무릎이 왜 아프지? 무릎이 비가 내릴 거라는 걸 미리 알려준다고? '내일은 비가 내릴 예정이니 우산 챙기시길 바랍니다.'라고 기상캐스터가 알려주는 거잖아? 신기할 노릇이었다. 내가 더 공감할 수 없었던 건 그때의 내 뼈들은 너무 튼튼했다. 그랬기에 몸이 알려주는 날씨 알림은 더욱 믿음이 가지 않는 말이었다. 그렇게 의문만 가득 남긴 채 엄마의 말을 잊고 았다.


 그런데 지금 내 무릎은 어제부터 아팠고,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다. 내 무릎이 이렇게 아팠던 게 설마 비가 내릴 거여서 그랬던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아니, 내 무릎이 벌써부터 비 소식을 알려준다고? 맙소사. 엄마 무릎은 정말 진실을 말하는 거였어? 내가 엄마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었네? 내 무릎이 날씨 알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이가 없다가 웃음이 피식 나온다.


 스물아홉의 시간을 걷고 있는 요즘, 엄마가 느꼈던 날씨 알림을 내 몸에서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 이제 내 무릎이 걷는 게 힘들 정도로 고함을 지르는 날은 곧 비가 내릴 거라는 소식이다. 세상에서 제일 정확한 기상청이 하나 생겼다. 엄마와 웃으며 이야기할 게 생겼다. 비가 내리면 알려주는 것처럼 겨울이 찾아와 눈이 내리는 날도 알려줄지 궁금해진다. 눈이 내릴 때는 내 몸 어느 곳에서 고함이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비도 눈도 자주 내렸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면 내 몸 날씨 알림 서비스가 반가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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