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라서가 아니라 아침 듀티때문에 일어난다. 크루즈선에서 일하는 크루들의 아침은 대개 해 없이 시작된다. 왜냐하면 직원 방에는 창문이 없으니까! 그리고 보통 맨 아랫층에 방이 있다. 때때로 파도가 거세게 치는 날이면 파도 소리와 함께 잠이 든다...
내 룸메이트가 깨지 않도록 제일 작은 불을 켜고 살금살금 아침 듀티 준비를 한다. 옷? 고를 필요가 없다. 매일매일 유니폼만 입으니까 잘 세탁만 되어 있으면 된다. 통근시간?도 없다. 30분 전에만 일어나면 충분히 출근(?)할 수 있다. 난 레스토랑 부서라 항상 이른 시간에 아침듀티가 시작되지만 오픈시간 전에 출근하는 우리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밥 먹는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 항상 경이롭다. 매일과 같은 하루가 시작되고 손님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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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 COVID-19이 설쳐대기 전 아침이고,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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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로 떠들썩하다. 하지만 여기 말고 바깥세상이. 우리 배에 손님들은 적어도 2달째 없다. 직원 식당에서 밥 먹을 때 마다 흘러 나오는 뉴스는 매일 경신되는 코로나 바이러스 양성자 숫자고, 이젠 나라들끼리 서로 비교도 한다. 그런데도 바깥과 격리되어서 배에서만 생활하는 우리들은 바이러스, 양성, 검사, 병원 뭐 이런 단어들이 매우 먼나라 이야기이다. 그저 매일이 우리끼리만 배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가득하다.
2020년 4월 19일
모든 크루에게 크루객실에서 손님 객실로 옮기라는 지시가 있었다. 바이러스는 지난 몇개월 동안도 기승을 부렸는데 최근 일본에서도 폭발적으로 감염자가 늘어나고 있어 1인 1실이 권고가 된 것이다. 왜 이렇게 갑자기 기승을 부리나 투덜대며 8개월 동안의 모든 짐을 다시 한 번 싸서 손님 객실로 옮겨갔다. 그리고 격리를 시작한다는 안내가 있었다. 모든 크루가 듀티 없이 각자의 방에서 격리되어 방 밖으로는 나갈 수 없다는 의미였는데,
"불행히도- "
라며 캡틴의 방송이 흘러나왔다.
불행히도, Unfortunately 이 말이 너무나도 불길하고 어이없고 지난 몇달간 아무렇지 않게 생활 해왔던 우리는,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불행히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 1명이 발생했습니다."
캡틴은 매우 덤덤하게 말했다. 감정적인 동요를 유발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느껴졌지만, 그 덤덤함이 또 너무 허탈하고 어이가 없었다. 언제나 떠들어대는 뉴스를 보면 이 바이러스는 1명, 2명 감염되는 정도가 아니었다. 나와 즐겁게 이야기만 했는데도 전염되어 폐를 끼치고, 내가 있던 장소에 흔적을 남기는 요상한 병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한창 감염자수가 늘어가던 그때, 일본 나가사키에 정박하면서 일정 시간 외출이 가능했고 일본 시내를 돌아다녔다. 그래도 마스크가 의무였었고. 그런데 3월 중순부터 배 밖에 나가는 것이 아예 금지되었는데, 이미 한달이 넘은 4월 19일, 캡틴이 지금 딱 '1명'이 양성이란다. 허탈했다.
'격리 하는데 문 밖으로 나오는 행동 하지 말라고 캡틴이 겁주는거겠지?'
'아마 우리한테 더욱 경각심을 주려는걸꺼야.'
'아니 이 바이러스 번지는 속도가 어마어마한데 무슨 1명이람?'
라고 생각하며 600명이라는 크루가 있지만 그 동안은 감염자가 없어서 마스크를 하고 다니지 않았던 내가 조금은 후회되었다. 아주 조금의 후회, 왜냐하면 그 1명이 양성이라는 사실을 그때까지도 믿지 않았으니까.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나요?"
나가사키에 사시는 한국분이 보내주신 일본 뉴스 번역본. 우리 배에 진짜 감염자가 발견됐나봐.
일본 나가사키에 사시는 한국분이 내 SNS를 우연하게 보시고 메세지를 보내왔다.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지금 심각하게 보도되고 있는 뉴스라며. 일본어에서 한국어를 번역한 페이지와 함께 말이다.
'이제 진짜 1명이 양성이라는 사실을 믿어야하나?'
우리 배에 진짜 양성자가 있는게 사실인가보다. 지난 날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마치 세상을 떠나기 전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이 머릿속을 스치듯 말이다. 내가 어디를 가고 어디를 만졌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누구랑 말을 했는지. 아니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다. 진짜 딱 1명이 감염이라고? 그런데 그럼 나는??
'불행히도'라는 방송과 함께 시작된 객실 격리는 사실은 편안한 생활이다. 이젠 듀티도 없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도 된다. 발코니가 있는 객실에서 끼니마다 배달되는 밥을 가져다 주는대로 먹으면 되고 물도 많고 조용하게 혼자 지내는 나날이다.
그런데,
이 격리가 언제까지일지 모른다. 이 격리를 시작하자마자 우리 배에 양성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격리를 시작했지만 난 언제 어디에서 이 바이러스에 노출되었는지 모른다. 이 격리 전에는 그렇게 배를 휘젓고 다닐동안 보통의 생활을 했다 마스크 없이.
'아니야 괜찮을거야 난 그래도 가끔은 마스크를 했으니까.'
'그래 괜찮을거야 왜냐면 난 손을 진짜 자주 씻었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난 괜찮을거야 오피스에서 일했고, 많은 수의 사람도 안만난 것 같고, 저번에 크루파티도 자느라 못갔잖아?'
-그래 괜찮을거야-와 -세상에 단 1명의 감염자는 생길 수 없어 이 지독한 코로나 바이러스! 그럼 나도 예외는 아니잖아- 라는 생각이 서로 충돌하면서 첫 날이 지나갔다. 다음날 알람을 맞추지 않은 방에서 혼자 일어났다. 배달 된 아침을 먹고 다시 밖에 내놓았다. 공교롭게도 나는 제일 첫 방이자 끝 방에 배정되어 긴 복도가 한 눈에 보였다. 조용하다. 고요하고. 그리고 바이러스가 어딘가에 있을 것 같고. 빨리 문을 닫는다.
"직원 54명을 추가로 검사했습니다. 다시 불행하게도 우린 33명의 양성을 추가로 확진했으며 모든 크루가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