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일, 18일 차, 부다페스트

낯선 풍경과 시작이 불안한 부다페스트입니다.

by 현준

오늘도 아침부터 분주합니다. 항상 그렇듯이 예정했던 것보다 살짝 늦게 일어납니다. 늦게 일어날 것까지 계산해서 30분 정도 일찍 알람을 맞추는데도 결국에는 생각만큼 빨리 일어나지 못합니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납니다. 아침부터 화장실에서 씻는 사람들과 복도에서 주섬주섬 먹는 사람들로 너무 혼잡합니다. 아무래도 호스텔이 조금 작다 보니까 이래저래 부딪치는데 이 틈에서 씻고 짐을 싸려고 하니 진이 빠집니다. Execuse me를 연발하며 사람들 틈을 비집고 캐리어를 끌고 나오며 호스텔을 떠납니다.


브라티슬라바 역에서 브라티슬라바발 부다페스트행 기차의 플랫폼 정보를 확인합니다. 기차가 어느 플랫폼에 들어설지는 그날그날의 기차 운행상태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항상 역에서 전광판을 보고 확인해야 합니다. 다행히 큰 역이 아니라서 기차를 찾는 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기차의 일등석 칸을 찾아 타고, 일단 예약이 된 좌석인지 아닌지 확인해봅니다. 좌석 위에 예약석인지 아닌지, 예약석이면 어느 역부터 어느 역까지 예약인지 표시해 놓는 칸이 있습니다. 저번에 빈으로 갈 때 예약석인지 확인하지 않고 예약된 자리에 앉아서 이리저리 옮겨다닌 것을 교훈 삼아 괜한 고생을 덜기 위한 작업입니다. 다행히 대부분의 손님들이 이미 브라티슬라바에서 내리는 예약이라서 대부분의 자리가 빈자리입니다. 부다페스트로 가는 두 시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열차 칸에 탄 손님이 없어서 열차 칸 하나를 통째로 전세 낸 기분입니다. 가끔은 여행길에 이런 호사를 부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부다페스트 역에 기차가 도착하고, 문을 열고 내리는데 플랫폼의 첫인상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분명히 큰 정류 장인건 알겠는데 완전히 낡은 느낌입니다. 플랫폼에는 전광판이나 벤치 하나 없이 칙칙한 콘크리트 기둥만이 계속 서 있는 게, 삭막하게 버려진 도시에 온 기분입니다. 플랫폼에서 나와 역사 밖을 바라보는데, 빛바랜 빌딩이며 자동차며 어렸을 적 기억에 남아있는 90년대 서울의 느낌이 물씬 납니다. 이 낡은 느낌의 도시에 사람도 차도 북적거리는 게 브라티슬라바는 확실히 조용한 동네였구나 싶습니다.

20190620_124142.jpg 칙칙한 콘크리트 기둥이 반겨주는 부다페스트의 첫인상입니다.


20190620_125120.jpg 88올림픽이 한창 열리던 90년대 서울같은 부다페스트의 첫인사입니다. 그와중에 HANKOOK 타이어가 신경쓰입니다.

내리자마자 환전소부터 찾아봅니다. 체코처럼 헝가리 역시 EU 국가입니다만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헝가리 화폐인 포린트를 사용하기 때문에 유럽 여행 중에 들르면 환전을 해야 해서 골치가 아픕니다. 프라하에서 환전 사기에 대해 지긋지긋하게 신경 쓴 바가 있으므로, 부다페스트에서의 환전 정보를 찾아보는데, 다행히 시내 대부분의 환전소가 크게 차이가 없고 환전 사기꾼도 없는 듯합니다. 다행히 별 탈 없이 환전을 하는데, 50 유로가 15000 포린트가 되니 머릿속에 환전 비율을 계산하며 한국 돈으로 얼마 정도의 느낌인지 헤아려봅니다. 금전 감각을 항상 머릿속에 담고 있어야 돈을 쓸 때 제가 얼마 정도를 사용하고 있는지 체크할 수 있습니다.

20190620_130341.jpg 환전하고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역 근처 맥도날드. 외관과 다르게 생각보다 분위기가 있습니다.

환전을 마치고서는 곧바로 호스텔로 향합니다. 분명히 평점이 좋은 호스텔이었는데 도착해서 보니 상태가 영 아닙니다. 들어가는 입구는 철제 승강기가 놓여 있는데 계단의 음침한 분위기와 맞물려 무슨 감옥처럼 보입니다. 리셉션부터 사람이 너무 많아 혼잡한 데다가 전체적으로 지저분해 보입니다. 게다가 예약을 할 때 사진으로 본 방은 침대에 커튼까지 달려있는 고급 호스텔 느낌이었는데, 막상 제가 배정받은 침대는 그 옆에 간이로 매트릭스를 펴 놓은 자리입니다. 조식 포함 일박 15,000 원이라고 좋아했었는데 역시 싼 게 비지떡입니다. 좀 심각하게 안 좋은 비지떡입니다.

20190622_090403.jpg 호스텔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저는 게임 디아블로에 나오는 던전으로 들어가는 줄 알았습니다.


오늘은 별 다른 일정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호스텔에 구석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글을 써보겠다고 시작한 일인데, 돌아다니다 보면 막상 글을 쓸 시간이 잘 안 납니다. 글을 좀 천천히 쓰는 편인지 그날그날의 일지 초본을 쓰고 나면 두세 시간이 후딱 지나갑니다. 거기에 초본을 바탕으로 글을 다시 쓰고 편집하고 사진까지 붙이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더군다나 불안정한 와이파이 사정으로 이미지 업로드가 잘 안될 때면 답답하기까지 합니다. 집 나와서 낯선 곳에서 괜히 사서 고생을 하는 게 아닐까 후회되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여하튼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며 글을 쓰고 있는데 스마트폰으로 이상한 문자 하나가 날아옵니다. SANTANDER라는 곳에서 제 신용카드가 언제 사용된 것을 확인했고, 이상이 있으면 전화를 달라는 문자입니다. 77.51 유로라는 미묘한 숫자에 혹해서 가슴을 졸이고 제 카드 사용 내역을 어플리케이션으로 확인해 보는데 저는 카드를 분실한 적도 없고 카드 승인 내역도 없습니다. 구글에 santander fraud라고 검색을 해보니 전화를 유도해서 돈을 입금하게 만드는 스미싱의 일종이라고 하더군요. 하기사 영국 신용카드 회사인 SANTANDER가 제 신용카드 내역을 알 리도 없고, 설상 알더라도 임시로 쓰는 유심의 번호와 매칭 시킬 방법도 없습니다. 애초에 문자 내용도 좀 부실해 보입니다. 얼마를 썼다고만 나왔지 어디서 썼다는 이야기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이게 정말 사기인지 아닌지 확신이 서지 않아 몇 번을 구글에서 다시 찾아봅니다. 참 여행 온 사람한테 별의별 방법으로 사기를 시도하는구나 한탄이 절로 쏟아지는 부다페스트의 하루입니다.

Screenshot_20190620-213635_Messages.jpg 영국에서 날아온 스팸 문자입니다. 뻔한 사기입니다만 처음 받으면 당황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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