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3일, 21일 차, 부다페스트

하루 종일 휴식의 시간을 가진 부다페스트입니다.

by 현준

오늘은, 처음 생각한 대로라면 부다페스트를 떠나기로 한 날입니다만 생각을 바꾸어 부다페스트에서 새로운 호텔을 잡고 이틀을 더 체류하기로 합니다. 상태가 안 좋은 호스텔에서 지내느라 삼일 간 거의 잠을 못 잔 데다가 어제 야경을 보러 갔다가 비를 쫄딱 맞고 돌아오는 바람에 감기에 걸려 몸이 완전히 만신창이가 된 상태입니다. 이대로 여정을 강행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어서 오늘 하루 휴식을 좀 취하기로 합니다. 호텔도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잡은 후, 호스텔에서 체크아웃하여 근처의 호텔로 체크인을 합니다. 하루 종일 호텔에서 쉴 예정이므로 밖에 나오지 않아도 괜찮도록 체크인을 하러 오는 길에 간단히 먹을 것을 사 옵니다.


20190623_140417.jpg 몸이 안 좋으니까 그런지 걷는 길이 무거워만 보입니다.
20190623_182109.jpg 비가 그치니 이렇게 환상적으로 날이 좋은데 말이죠.
20190623_142658.jpg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좀 쉬어야할 것 같습니다.

오늘 숙소에서 쉬는 대신에 그동안 미뤄왔던 조금 중요한 일을 해보려고 합니다. 베를린에서 향후 일정을 정할 때 부다페스트까지 내려오는 수순은 정해두었고 수순대로 여정을 진행했지만, 부다페스트 이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며칠째 고민입니다. 헝가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는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일곱 국가로 다양한 루트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미 방문한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를 제외하더라도 어느 나라로 가야 할지 감이 잘 안 잡힙니다. 유럽 여행을 오면서 어느 나라는 반드시 가봐야 한다거나 모든 국가를 다 둘러본다는 목표가 있는 건 아니지만, 가능하면 많은 국가들을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습니다. 게다가 시간/자본이 여유가 되기 때문에 사실 어느 선택지를 선택하더라도 크게 문제 될 건 없어 보입니다. 차라리 제약 사항이 많았더라면 포기할 건 포기하고 깔끔하게 선택했을 텐데 70일 가까이 남은 여행기간이 실제로 얼마나 여행할 수 있는 기간인지 감도 잡히지 않아서 선택을 더 어렵게 만듭니다.


사실 가장 처음 생각한 선택지는 세르비아 -> 루마니아 -> 불가리아 -> (터키) -> 그리스 -> 알바니아 -> 몬테네그로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크로아티아 -> 슬로베니아 -> 오스트리아로 빠져나오는 발칸반도 시계방향 횡단 루트입니다. 이러면 깔끔하게 동유럽 국가들을 대부분 둘러보고 스위스, 이탈리아로 향하기 좋습니다. 하지만 이 루트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매우 긴 이동 시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유레일 패스를 이용해 가능한 기차로 이동하려고 하다 보니, 한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할 때 이동시간이 열 몇 시간씩 걸리는 문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애초에 루마니아, 불가리아 같은 국가들은 땅이 좀 넓은 편이라 이런 경향이 더 심합니다. 그리고 발칸 반도 국가 대부분이 쉥겐 조약에 가입한 국가들이 아니라 입출국 제약도 까다로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인 여행객이 거의 없다 보니 정보를 찾고 싶어도 블로그 같은 글이 잘 보이지가 않습니다. 경제적 낙후함과 더불어 치안문제, 주요 관광지 부재로 인한 영어 소통이 힘들어지는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이 루트를 선택하면 여행의 난이도가 한층 높아질 게 분명합니다.

Screenshot_20190621-095125_Maps.jpg 제 1안입니다. 가장 무난해보이는 루트입니다만, 고생길이 훤히 보입니다.
Screenshot_20190621-095155_Maps.jpg 제 2안입니다. 차리리 지그재그로 발칸반도를 뚫고 들어가서 그리스에서 이탈리아로 들어가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이런 생각이 드니까 그냥 동유럽을 패스하고 넘어가면 어떨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 슬로베니아 이렇게 두 국가를 걸쳐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로 향하는 것이 당장에 편한 여행을 보장할 것입니다만, 아무래도 동유럽을 건너뛴다는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좋은 생각을 떠올립니다. 지금은 동유럽을 건너뛰더라도 다시 동유럽으로 들어가는 일정을 짤 수 있는 명안입니다. 오스트리아, 프랑스, 이베리아 반도 등 서유럽을 시계방향으로 다 돌고, 북유럽으로 들어가거나 혹은 건너뛴 다음에, 폴란드를 거쳐 다시 발칸반도로 들어가는 동선을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을지는 모르지만, 운이 좋으면 그리스 아웃으로 발칸반도 재진입 루트를 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Screenshot_20190621-095229_Maps.jpg 제 3안입니다. 한 바퀴를 크게 돌아서 다시 그리스로 들어가는 일명 대회전 루트입니다.


이 루트가 좋은 이유는 여행의 우선순위가 높은 서유럽 국가들을 먼저 돌아봄으로써 여행 일정이 유연해진다는 점입니다. 시간이 남으면 더 많은 여행지들을 찾아갈 수 있고 여차하면 우선순위가 낮은 국가들은 넘어가면 그만이니까요.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여행에 익숙해지면서 좀 더 고난이도의 여행을 받아들이기도 용이해지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세르비아나 루마니아라는 미지의 국가로 떠나는 데 심적 부담감을 많이 느끼는 모양입니다.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하고 다음 행선지는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로 떠나기로 결정합니다. (물론, 이게 다 고생을 뒤로 미루고 싶어 하는 못된 습성인걸 알고 있습니다.)


일정을 모두 정하고 나니 조금 어지러워지는 걸 느낍니다. 미리 챙겨 온 상비약 더미에서 해열제와 진통제를 꺼내봅니다. 다행히 먹을 걸 좀 사 온 게 있어서 배를 채운 후에 약을 들이켭니다. 부디 내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멍하게 만드는 두통이 멎어버리길 바랄 뿐입니다. 특별할 것도 없는 부다페스트의 하루입니다.

20190623_182517.jpg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거리입니다. 나엻해 보니 마실 것들만 한가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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