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4일, 22일 차, 센텐드레

아기자기한 모험이 가득한 센텐드레입니다.

by 현준

찌뿌둥한 몸을 일으킵니다. 오랜만에 욕조에 몸을 담그고 편한 침대에서 푹 잠을 취했습니다만 아직 몸이 무겁게 느껴집니다. 감기 기운이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아 조금 불안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려고 했는데 결국엔 기상 시간이 조금 늦습니다. 호텔 조식을 빠르게 해치우고 서둘러 나가 보기로 합니다. 마음 같아선 잠을 더 청하고 싶지만 한 번 늘어지기 시작하면 오늘 하루도 그냥 지나가버릴지 모릅니다. 조금 억지로라도 힘을 내보기로 합니다.


오늘의 목표는 센텐드레에 다녀오는 겁니다. 센텐드레는 부다페스트 근교의 마을로 굉장히 예쁜 동네라고 합니다. 부다페스트에서 센텐드레에 다녀오기 위해선 교외로 나가는 열차를 타야 하는데, 티켓을 여러 장 끊어야 해서 가는 길이 상당히 복잡합니다. 블로그를 검색해 이미 다녀온 사람의 안내를 꼼꼼히 참조해서 그대로 따라가 봅니다만 예상치 못한 문제에 봉착합니다. 블로그에 따르면 기차가 센텐드레 역까지 가야 하는데, 중간쯤 가서 '이 역이 종점입니다'하고 방송을 하곤 그대로 멈춰서 버립니다. 혹시 같은 노선이더라도 기차마다 종점이 다를 수도 있어서 물어보니까, 해당 노선이 공사를 하는 관계로 당분간 센텐드레까지 운행을 안 한다는 답변을 받습니다. 대신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며 안내를 해주시는데 버스가 30분에 한 대 씩 오기 때문에 한참을 기다립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체 버스라서 기차표를 구매했으면 이걸로 버스를 탈 수 있다는 점일까요. 공사 기간도 한 달 남짓인데 그 기간에 하필 찾아오다니 운이 좀 없습니다.

20190624_105113.jpg 철도 축소 운행 및 대체 버스 안내도. 타이밍이 딱 좋게 공사중입니다.

기다리던 버스를 타고 드디어 도착한 센텐드레의 첫인상은 아기자기함입니다. 여러 개의 국어로 '환영합니다'라고 쓰인 지하통로를 지나니, 한 편의 동화를 보는 듯한 앙증맞은 집들이 나옵니다. 지금까지 유럽에서 본 집들은 창문도 크고 문도 크고 집도 크고 모든 것이 전부 큼직큼직한 느낌이었는데, 센텐드레의 풍경에는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마을 지도가 곳곳에 팻말로 그려져 있는데, 집들이 다 해봐야 이백 채쯤 될까 싶은 정말 작은 마을입니다.

20190624_104943.jpg 역부터 귀여움의 기운이 물씬 넘칩니다.
20190624_110020.jpg 동화 속 세상으로 가는 비밀 통로... 라고 속으로 생각해봅니다.
20190624_111237.jpg 동화 속 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마을의 가장 큰 길인 중앙길에는 갖가지 기념품 상점들이 보입니다. 옷, 장난감, 각종 기념품 등등 재밌어 보이는 게 많습니다. 길 구석구석으로는 작은 골목들이 나 있는데, 골목길들이 제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꼭 옛날에 숨바꼭질하던 것처럼, 골목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골목 사이로 마을 요리조리 쏘다닙니다. 골목들을 헤매다 보면 길을 잃기 십상인데, 다행히 여기가 어딘지 잊어버릴 때쯤이면 지도가 그려진 팻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중앙길에서 벗어나면 그냥 사람 사는 민가들 뿐인데도 지도가 세워진 것은, 마치 '골목길에서 헤매는 것도 여행의 일부입니다'라고 배려해주는 기분입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인적이 드문 골목길들도 동화 속의 배경처럼 마냥 예쁘게 보입니다. 저는 들뜬 마음으로 마을 구석구석에서 셔터를 눌러봅니다. 사진을 잘 찍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예쁜 마을을 두고 셔터를 아끼는 것도 괜히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20190624_115439.jpg 파랑파랑한 옷들을 파는 기념품 가게입니다.
20190624_110521.jpg 옷을 파는 가게들이 많이 보입니다.
20190624_105947.jpg 마을 전경을 담은 지도. 마을 구석구석에서 만나볼 수 있어요.
20190624_112144(1).jpg 센텐드레 한가운데서 하늘 높이 높이 날아봅니다.
20190624_110938.jpg 독특한 분위기의 그라피티.
20190624_110336.jpg 골목길을 돌고
20190624_112814.jpg 또 돌고
20190624_113443.jpg 꼭 보물 찾기를 하는 것처럼
20190624_114257.jpg 골목으로 떠나봅시다.


그렇게 세 시간 정도를 들여 하나도 빠짐없이 센텐드레의 구석구석을 다 둘러봅니다. 생각보다 탐험이 금방 끝나버려서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만, 모험 욕구를 충족시키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나 봅니다. 그대로 부다페스트로 돌아오는 내내 탐험의 여운이 남아서 계속 싱글벙글합니다. 시간이 꽤 남았기 때문에 혹시 괜찮다면 그대로 에스테르곰에 다녀와도 좋지 않을까 고민해봅니다만, 에스테르곰에 다녀오기 위해 왕복 네 시간의 시간을 더 쏟아야 하는 걸 생각하니 금세 고개를 젓게 됩니다. 오늘은 센텐드레에 다녀온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부다페스트에 다시 도착하니 두 시 반쯤 됩니다. 간단하게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에 남는 시간을 중앙시장에서 때우기로 합니다. 며칠 전에 방문했을 땐 허탕을 쳤기 때문인지 기회가 되면 꼭 다시 한번 방문하려고 벼르던 참입니다. 화려한 모자이크 양식으로 장식된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제법 깔끔하게 정리된 시장이 보입니다. 보통 시장바닥은 지저분한 느낌이 있기 마련인데 복잡하고 북적거리긴 해도 위생적으로 완전히 신경 쓴 흔적이 보입니다. 이 층으로 구성된 시장은 일 층에선 식재료, 이 층에선 각종 기념품을 팔고 있습니다. 식재료는 채소, 소시지, 육류, 과일, 파프리카 가루 등을 파는데 천장에 줄을 매달아 놓고 각종 팔 것들이 대롱대롱 달려있는 게 이색적입니다. 특히 소시지를 정육점에 걸린 고기처럼 파는 게 조금 섬뜩해 보입니다. 이 층에선 부다페스트를 상징하는 각종 옷, 기념품, 인형 등을 파는데, 특히 전통복장을 입고 있는 인형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여행이 길지만 않았다면 하나 정도는 사들고 가도 좋을 텐데 아쉬운 기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20190624_151412.jpg 시장 건물 외관도 모자이크 양식으로 화려합니다.
20190624_153320.jpg 전통시장입니다만, 체계화된 모습에 조금 놀랍니다.
20190624_151741.jpg 육류점에 대롱대롱 매달린 소시지들.
20190624_153300.jpg 기념품들 중에서도 인형들에 눈이 갑니다.

돌아오는 길에 식료품 점에서 간단히 저녁과 내일 아침을 사들고 옵니다. 헝가리에서의 마지막 날인걸 생각하면 아쉽지만 몸의 컨디션도 생각해야 합니다. 사실 꼭 여행을 왔다고 해서 항상 맛난 음식을 먹어야 하고 모든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만 하는 건 아닐 겁니다. 몇 박 며칠의 짧은 여행이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열심히 돌아다니겠지만, 90일짜리 여행에서 항상 풀 액셀을 밟았다간 분명 몸이 견디질 못할 겁니다. 쉬엄쉬엄 날들을 보내는 것도 즐거운 여행의 과정이라고 다독이며 잠에 청하는, 센텐드레와 부다페스트의 하루입니다.

20190624_160945.jpg 돌아오는 길에 도로 한 가운데서 웨딩 사진을 찍는 커플을 발견합니다. 언젠가 저도 이런 사진을 찍는 날이 오게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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