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북 오브 몰몬> 리뷰
유머, 첫 장면, 분위기
주제와 상관없이 혹은 극 전체를 관통하는 유머가 있어야 관객의 흥미를 붙잡아둘 수 있다.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재미’가 없다면 결국 대중으로부터 외면받는 외로운 작품이 될 수 밖에 없다. 작품의 흐름과 독창성을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극에 흐르는 ‘유머’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관객의 흥미를 붙잡아두기도 하지만 극의 호흡을 조절하기도 한다. 관객들의 숨통을 트여주어야 하는 부분에서 숨통을 트여주어야 진지한 장면에서 우리는 그것을 지겨움 혹은 재미없음이 아니라 ‘극이 말하고자 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첫 장면 역시 중요하다. 극의 내용을 응축해서 설명해주기도 하고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전반적인 분위기를 가장 먼저 보여주는 부분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첫 장면이 강하게 인상에 남을 수밖에 없다. 아마 연출들이 첫 장면에 가장 공을 들이지 않을까 막연히 추측한다.
마지막으로 이 '분위기'는 여러 가지 요소들에 따라 좌우된다. 배우들이 맡은 캐릭터, 무대, 의상, 조명까지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것은 다양하다. 로얄드 달의 동화가 원작인 뮤지컬 <마틸다>는 책, 글자, 나무 원목의 느낌이 나는 무대 연출과 동화 속의 캐릭터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한 배우들의 활약 덕분에 ‘마틸다’만의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뮤지컬 <맘마미아> 역시 무대의 활약이 컸다. 하얗고 파란색을 주로 쓴 배경과 낡은 의자들이 바닷가 근처에서 느낄 수 있는 상쾌한 느낌을 극이 진행되는 내내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KkLV1zE8M0
뮤지컬 <북 오브 몰몬> 은 위의 세 요소를 가장 완벽히 충족시킨 뮤지컬이었다. 극 전반에 흐르는 유머는 영어를 완벽히 알아듣지 못하는 나조차도 극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폭소하게 만들었다. 밝게 웃고 있지만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표정과 검은 넥타이에 하얀 와이셔츠를 단정히 입은 선교사들의 특징을 잘 잡아낸 첫 넘버 ‘헬로’는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비질비질 삐져나왔다. 게다가 몰몬교를 전파하려는 선교사들과 우간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대립이 돋보이면서 그 과정에서 몰몬교가 가지고 있는 부조리한 부분을 풍자하는 모습이 대담하기까지 했다. 다른 후기들을 읽어보니 대부분 그 풍자가 강렬하다고 적어 놓았다. 이렇게 강렬하게 한 종교에 대해 비판을 하는 뮤지컬이 몰몬교에게 소송을 당하지 않은 것이 신기하다고 적어놓은 후기도 있었다.
'터부'를 '터부시'하지 말 것
나를 빵빵 터지게 한 장면은 단순히 웃겼다기보다는 충격적인 장면들을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표현을 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여성의 할례 문화나 종교의 메타포적인 신화를 비꼬는 장면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섹스'나 '클리토리스' 같은 단어들을 나열하고 해밍턴이 원주민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개구리와 정사를 나누면 에이즈를 치료할 수 있다’와 같은 엉터리 신화를 만들어내는 장면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게다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극의 후반에 등장하는 원주민들이 직접 공연을 만들어 선교사들 앞에서 선보이는 장면이었다. 해밍턴이 아프리카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몰몬교의 교리를 있는 그대로 전파하지 않고 엉터리로 지어내기 시작하는데 원주민들은 그것이 진짜 몰몬교의 교리인 줄 알고 그것을 토대로 연극을 만든다. 결국 파견된 선교사들 중에서 가장 높은 성과를 낸 해밍턴과 프라이스를 축하하기 위해 장로들이 우간다로 오게 되는데 그들 앞에서 원주민들은 엉터리 연극을 선보인다. 이 장면이 압권이다. 아프리카 소울이 가득 담긴 흑인 배우들이 우렁찬 화음을 만들며 자신들이 만든 무대에 등장한다. 그리고 곧 엉터리 신화를 연기한다. 이때 에이즈를 치료하기 위해 개구리와 정사를 가지는 장면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거나 성교 자세를 마치 무용의 한 부분처럼 만들어 적나라하게 표현을 한다. 게다가 도구를 이용해 남자의 성기를 있는 그대로 표현을 하기도 한다.
웃기지만 얼굴이 붉어질 수밖에 없는 이 뮤지컬을 창작하고 무대에 그대로 올리기 위해서 연출가, 작가, 작곡가가 깊고 아주 진하게 많은 것들을 공부했을 것이다. 몰몬교라는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교리에 대한 공부, 몰몬교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현대의 문물과 가장 거리가 먼 우간다의 원주민들이 만나는 그 접점을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많았을 것이다. 원주민들의 문화(할례 문화, 남성우월주의, 민속신앙을 믿는 것 등등)를 몰몬교가 만났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상황들을 만들어내면서 작가와 연출가는 과연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자기들이 믿었던 내용이 실제 몰몬교의 교리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은 여자 주인공이 해밍턴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느낀다. 하지만 나머지 원주민들과 심지어 세례를 받은 추장까지도 그 교리의 내용이 모두 ‘메타포’, 하나의 상징이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올란도의 교리’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낸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믿고 의지하는 종교도 누군가에 인해 ‘만들어진’ 메타포의 나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속담이 떠오르게도 하는 결말이었다. 첫 번째 장면에 등장한 ‘헬로’가 마지막에도 등장하면서 재치 있게 마무리 한 부분은 마음에 들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가장 즐겨 들었던 넘버인 'Sal Tlay Ka Siti'를 들으며 딱 한 번 눈물이 났던 것 같다. 힘찬 목소리로 꿈꾸는 세계를 노래하는 소녀의 얼굴과 가사가 너무나도 대조되었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