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킹키부츠> 리뷰
극작이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거예요.
무대 위에 상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어도
그 위에서 배우가 헉헉거리며 땀을 흘리는 연기를 한다면,
그곳은 사막이 될 수도 있고
추위에 덜덜 떨며 입을 외투를 찾는다면
그곳은 추운 북극이 될 수도 있는 거죠.
뮤지컬이나 연극을 늘 어려워하고 동경해온 것이 아닐까. ‘극’이라는 요소는 결국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을 모방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치밀해야 한다.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할 거리를 제시함과 동시에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야 한다. 그렇기에, 너무 진지할 수 없다. 여유로움과 유머 또한 극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아무리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더라도 보는 이의 호응을 얻지 못한다면, 자기들끼리 좋아서 하는 놀이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공연을 보며 잠시라도 일상에서 벗어나 벅차오름, 휴식, 즐거움, 일탈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려고 한다는 교수님 말씀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극을 만드는 사람들은 결국 '환상'을 만들어 내야 한다. '환상'을 창조하는 사람들의 '환상'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그리고 그 환상을 현실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공부하고 경험해야 할까.
남자가 말하는 하이힐 이야기, 잠깐 정말로 '남자'야?
무엇을 시사하려고 하느냐에 따라 극의 성격이 확연히 달라진다.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남자와 아버지의 구두공장을 물려받게 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남성용 구두회사를 물려받은 찰리가 우연히 위험에 처한 여장 남자이자 밤무대 가수인 로라를 도와주게 되면서 여장 남자 혹은 트랜스 젠더를 위한 튼튼하고 아름다운 부츠를 만들게 된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그 부츠로 성공하게 되었다는, 나도 좋고 너도 좋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킹키부츠에서도 첫 넘버는 역시나 활기가 넘쳤다. 이야기의 전개가 매우 빨랐고 무엇보다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개성이 대단했다. 앙상블이라고 하더라도 주연 배우들 사이에서 묻히지 않고 독특하게 살아났다. 첫 넘버에서 주인공 '찰리'의 성장배경과 캐릭터의 가치관을 알 수 있었다. 공장 사람들이 앙상블처럼 나와 노래를 불렀고 메인 캐릭터들이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무대 오른쪽에는 여장남자 '로라'의 아역을 맡은 아역배우와 복서인 아버지와 대립하는 장면, 그리고 왼쪽에는 어른이 된 찰리가 약혼녀와 함께 빨간 하이힐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연출되었다. 남성용 구두를 만들던 아버지와 공장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도우며 자라는 찰리, 성인이 된 찰리와 그의 약혼녀가 바라는 빨간 하이힐, 복서로 키우려는 아버지와 달리 빨간 구두가 좋은 어린 로라의 이야기가 첫 넘버에 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약혼녀가 바라는 빨간 하이힐과 어린 소년인 로라가 바라는 빨간 하이힐, 그리고 그 둘이 맞이하는 세상의 편견이 등장한다. 앙상블이 중앙에 자리 잡아 노래를 부르고 오른쪽에는 여자들이 갈망하는 '하이힐'에 대해 노래하는 찰리의 약혼녀가 등장한다. 왼쪽에는 어린 로라가 빨간 구두를 신고 발랄하게 노래를 하며 춤을 춘다. 여자와 하이힐, 여자가 아닌 사람의 하이힐 그리고 그 구두를 만들게 될 찰리가 동시에 등장하며 단번에 조화를 이룬다.
신발가게 간판이 걸린 거리가 공중으로 올라가면 주 무대인 신발공장이 등장한다. 자유자재로 변하는 철제 구조물이 가운데에 자리 잡았고 복층으로 꾸며진 위는 사장실이고 아래 무대는 복싱장이 되기도 하고 화장실이 되기도 하고 음침한 골목의 철장이 되기도 하고 밤무대 가수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는 공연장이 되기도 한다.
극의 짜임새, 노래, 그리고 내용의 개연성과 독창성의 수준도 무시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배우들의 배역 소화하는 능력이나 노래와 연기실력이 없었다면 이 극이 2시간 내내 파워풀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구두레일 위에서 노래를 부르며 묘기에 가까운 안무를 소화해내는 배우들과 안무를 창작해낸 작가들이 경이로울 정도였다. 1막 마지막 넘버(로라와 찰리 그리고 공장 직원들의 합심으로 첫 부츠가 완성되고 함께 부르는) ‘Everybody say yeah!’는 보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결국 이 뮤지컬은 연출과 스텝진의 상상력과 노력, 대본의 탄탄함, 배우들의 실력이 모여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이끌고 이끌어주며 완성시킨 것이다.
적지 않은 캐릭터들이 등장했지만 각각의 개성이 넘쳤다. 배우들이 사랑 할만한 캐릭터들이었다. 대사 한 줄을 치는 역할이라도 각자의 인생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주인공이었던 로라와 찰리는 말할 것도 없고 구두공장에서 일하는 금발머리의 시골 소녀의 캐릭터는 순박함, 깨방정, 진지함, 파워까지 골고루 담아낸 캐릭터였다. 특히 찰리를 짝사랑하게 된 내용을 그리는 넘버에서 너무나도 귀엽고 상큼했다. 특유의 털털함과 당당함 감정을 숨기지 않는 오두방정이 마음에 들었다. 구두가 나오는 레일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먼지를 털 수 있게 바람이 칙-하고 나오는 기계를 머리에 대고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를 연출했는데 관객들도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복싱장을 만드는데 줄을 지탱하는 지지대를 로라의 백댄서가 다리를 걸어 만든 부분이 인상 깊었다. 지난 3년의 짧은 무대 경험을 떠올려보면 나는 무대를 꾸밀 때 모든 것이 완벽히 ‘재현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완벽히 재현된 무대는 극히 드물었고 대부분 그 자리를 배우들의 힘으로 메우는 경우가 더 많았다. 아예 아무것도 없이 팬터마임으로만 극을 이끌어가는 경우도 있었고 모자들을 인물이나 소품으로 설정하고 배우 두 명이서 열연을 펼치는 뮤지컬도 보았다. 결핍이 창의성을 만들어낸다는 기사가 머리속을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