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라이언 킹> 리뷰 2
1편에 이어
정중앙이었다. 내가 여태까지 본 뮤지컬 중 가장 좋은 자리를 예매했다. 무대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고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최고의 자리였던 것이다. 가격이 사악했다는 건 함정. 그래서 더욱 뮤지컬 <라이언 킹>만의 ‘분위기’를 흠뻑 느낄 수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reload=9&v=ewOAsUWQJvo
빠르게 펼쳐지고 전환되는 배경, 음악, 조명, 배우들의 움직임 그리고 배우들이 입은 소품까지도 모두 하나의 그림이 되어 펼쳐졌다.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가도 마치 팝업북처럼 무대 위의 배우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특히 첫 번째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는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웅장함’을 보여주었다. 객석 통로로 등장한 초원의 다양한 동물들이 무대에 모두 자리를 잡고 조명이 밝아지자 관객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무대 밖을 걸어 다니던 배우들이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듯 무대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자 한 폭의 그림처럼 무대가 객석과 완벽하게 분리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기다리던 화룡정점! 지하에서 솟아오른 절벽과 함께 노래가 커지더니 우리가 상상하던 라이언 킹의 그림이 펼쳐졌다.
살아나 숨쉬고 있는 어린 시절의 한 폭을 경험하는 일은 실로 놀라움의 연속이다.
그 모습은 단순한 '뮤지컬'보다는 '예술의 총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디즈니의 동화책과 애니메이션으로 익숙한 라이언 킹이 무대 위에서 실현되었다. 애니메이션의 비현실적인 부분을 어떻게 무대에서 표현할 것인가 궁금했는데, 뮤지컬 <라이언 킹>은 그 경계를 잘 넘나들었다. 그 요소를 정리해보았다.
첫 째, 캐릭터의 개성이 뚜렷하다. 배우의 연기는 물론 의상과 탈이 한몫을 했다. 각 캐릭터마다 의상을 모두 다르게 표현했는데, 암사자들은 탈을 머리 위에 모자처럼 써서 마치 왕관을 쓴 것 같았고 등과 다리까지 기다란 천을 둘러 군무를 추거나 팔을 움직일 때 그 천의 움직임이 마치 날다람쥐 같았다. 심바, 스카, 무파사가 쓰는 탈은 각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성격을 잘 나타냈다. 스카는 거친 질감과 색을 썼고 무파사는 커다랗지만 따뜻하고 여린 색을 써서 차이를 두었다.
배우들은 사자의 탈을 마치 자신의 얼굴로 여기며 연기했다. 예를 들어 화가 나는 장면에서 상대 배우에게 자신의 얼굴을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머리 위에 얹어져 있는 탈을 들이밀며 움직인다. 그리고 탈에는 어떤 장치가 달려있는지 배우의 머리 위로 높게 올라가기도 하고 아래로 내려와 얼굴을 덮기도 했다. 마치 사자가 고개를 끄덕이거나 갈기를 흔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 외에 감초로 등장하는 원숭이는 사람에게 직접 페인팅을 하고 제일 좋아하는 넘버 중 하나인 '하쿠나 마타타'를 부르는 품바와 그 원숭이는 사람이 인형 탈을 쓰거나 직접 인형을 들고 움직였다. 무파사의 곁에 머무는 새도 사람이 직접 인형을 들고 연기했다.
독특했던 점은 '배우들이 들고 있는 인형과 배우가 입은 옷이 서로 반대되는 보색이었다는 것'과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사자들은 배우들이 직접 몸에 의상을 장착하고 연기를 하는 반면 이야기의 감초로 등장하는 조연들은 대부분 인형을 들고 연기를 했다는 점이다.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어야 하는 부분에서 감초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고생 좀 했을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무대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인형들만 눈에 띄었다는 점에서 연출과 배우들의 노력이 대단했다.
2. 둘째, 배경의 힘. 무파사와 심바의 등장과 심바가 아버지의 복수를 하게 되는 중심 무대의 절벽, 스카의 거주지인 지하 동굴, 주술사 원숭이가 살고 있는 나무 배경의 막사, 품바와 스캇이 심바를 만나게 되는 정글. 무대 배경은 크게 4가지로 나뉠 수 있다. 무대는 위, 아래, 옆에서 등장하고 재빠르게 바뀌었다. 또한 입체적인 소품 말고도 다양한 방법을 활용했는데 그림자극을 사용하기도 하고 주술사 원숭이가 심바의 생사를 확인하는 오묘한 장면에서는 스크린에 조명을 쏘기도 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영혼을 보는 심바의 장면에서는 앙상블 배우들이 커다란 나무 조각을 들고 직접 아버지의 영혼을 표현했다.
뮤지컬 <라이언 킹>은 뮤지컬이지만 예술의 총체에 더 가깝다. 춤도 특정한 분야에 국한되기보다는 행위예술, 삼바, 탱고, 발레, 현대무용 등 다양한 장르가 있었고, 사람과 동물의 연기가 공존했으며, 스크린, 그림자극, 탈 등을 사용한 다양한 무대 활용이 줄이어 등장했다.
인간의 몸을 가장 아름답게 사용했다. 팔의 작은 움직임이 몸 전체를 따라 흔들렸다. 실제 동물들처럼 걷고 움직이고 애정표현을 하기 때문에 고개를 숙여 얼굴과 팔을 비비더라도 단순히 몸의 한 부분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 움직임의 흐름이 곧 몸 전체로 이어졌다. 고개에서 시작된 움직임이 고개를 훑는 팔과 만나면 그 팔은 더 큰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그 움직임이 가슴, 허리를 타고 내려가 발끝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그래서 였을까. 움직임이 크고 정확해야 하는 앙상블 배우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 다 흑인 배우였으며 주연을 맡았던 세 캐릭터의 배우들도 다 흑인 배우들이었다. 아마 브로드웨이에서 흑인 음악으로 이루어져 있는 주크박스 뮤지컬을 제외하면 흑인 배우들이 이렇게 많이 등장하는 뮤지컬은 <라이언 킹> 밖에 없을 것이다.
2014년 6월 12일 작성
2020년 9월 20일 편집 및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