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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할미 Oct 03. 2021

오, 심수봉!

추석 이브, TV 특집쇼에서 심수봉씨를 봤다. 무지 반가웠다. 요즘 나이든 또래 셀럽 연예인을 보면 마치 아는 사이인 듯 친근한 느낌. 이건 뭐지? 격동의 최근세사를 함께 통과해온 전우애 비슷한 걸까?


알려진 대로 수봉씨에겐 참 특별한 서사가 있다. 1979년 10월 어느 가을 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 현장에 있었던 까닭이다. 충격적인 역사의 한 장면에 관련된 구설은 내내 그녀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그녀는 세간의 입방아를 견뎌냈다. 운명의 칼바람에 맞서 자신의 커리어도 꿋꿋이 지켜냈다. 자신의 삶 속 부침은 오히려 노래에 깊이를 더했다. 그래서 그녀가 부르는 노래엔 더 애틋하고 진한 감성이 배어 있다.


러시아 원곡을 전혀 다른 필로 재해석한 ‘백만송이 장미’를  따라 부른다. 국뽕 노래 같은 ‘무궁화’도 애창곡 목록에 넣어둔다. ‘비나리’랑 ‘젊은 태양’도 너무 좋다. 하지만 그녀에 대해 맨 먼저 떠올리는 건 1978년 대학가요제에서 피아노 건반을 경쾌하게 두드리며 불렀던 ‘그때 그 사람’이다.


통기타풍이 휩쓸던 그 시절, 신파성 노랫말을 천연덕스럽게 질러대던 20대 수봉씨는 그해 대학가요제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였으니.


그녀는 단 하나의 사실을 일깨운다. 우리는 사랑을 원하고 오직 사랑을 주고받을 때만 온전한 인간이라는 것을. 그녀의 노래들은 마침내 남녀상열지사를 넘어 지상의 모든 사랑과 우정을 축복하라는 메시지로 들려온다.


수봉씨와 노래가 날로 성숙해지는 모습을 바라본다. 나이와 함께 우리도 익어가는 행운을 누리다니,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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