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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할미 Dec 30. 2021

내 친구 도끼부인

내 동갑내기 친구 고은광순은 한의사다. 만 55세가 되던 2010년  가을, 그녀는 거사를 치렀다. 25년간 함께 서울에서 살던 남편이랑 성장한 아들 둘과 동그랗게 둘러서서 108배로 ’동거 해체 리츄얼‘을 감행’한 거다.


 그리고는 알츠하이머 환자인 친정엄마를 모시고 계룡산 갑사 마을로 이사했다. 엄마의 마지막 날들을 보살펴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반년 만에 엄마는 세상을 떠나셨다. 고은은 서울로 돌아가지 않았다. 명상 선생님의 주선으로 충북 옥천군 청산면 삼방리 외딴 골짜기에 한의원 겸 살림집을 지었다. 우리가 ‘명품 저수지 뷰’라고 부르는 솔빛한의원이 2012년에 탄생한 경위다.


 일찍이 명성 드높은 ‘호주제 폐지’운동가였던 그녀다. 부계 혈통에 집착하는 골수 남본주의자들과 싸우느라 얻은 애칭은 ‘도끼부인.’ 뜨겁고 격렬했던 인생 전반부였으니 후반부는 조용히 살겠다고 생각했었다나. 하지만 은둔은 고은의 스타일이 아니다.


 알고 보니, 어쩌다 귀촌한 청산면은 갑오년 동학혁명 당시 본부(대도소)가 있던 곳이었다. 동학의 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 선생(1827-1898)의 딸 최윤이 아들 정순철을 낳아 기른 곳임을 뒤늦게 알게 됐단다. 동요 ‘짝짜꿍’이랑 ‘졸업식 노래’를 만든 이가 해월의 외손자였고, 그가 태어나 자란 고장이 청산이라니...


 이대 운동권 출신으로 사회운동을 하다 제적돼 한의대로 간 그녀다. 솟구치는 열정으로 <여성동학다큐소설‘ 13권을 펴냈다. 뜻을 같이하는 여성들과 팀 작업 형식으로 나눠 썼다. 그리고 접어든 평화운동의 길. 2015년 ’평화어머니회‘를 만들어 평화를 노래하고, 광화문 등지에서 시위를 조직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 군산복합체의 호전성을 가장 경계한다. 바이든 대통령의 페북에 아침마다 빠짐없이 반전 댓글을 달고 있다.


  <도끼부인의 달달한 시골살이>는 고은의 삼방리 다이어리다. 차로 5분 거리인 두 개의 마을, 장녹골과 가사목으로 이뤄진 삼방리. 두 마을을 합해도 40여 세대, 인구는 60여 명이 조금 넘는다.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돼 온 여느 시골마을과 다르지 않다. 조금씩 이웃들과 얼굴을 익혀가던 그녀가 마을의 왕언니들과 함께 충북도 주최 ‘행복마을’ 프로젝트에 응모한 건 2020년.


 사업을 돕는 컨설팅 회사 부장님에게 “일년에 300만 원으로 해볼 게 뭐 있겠냐?“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돈만 가지고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정말일까? 처음엔 반신반의. 운영위원회를 조직하고 운영위원장이 됐다. 이웃들이 원하는 사업들을 조사하고 청구서를 제출했다. 마을길에 나무를 심고, 허물어가는 담장에 벽화를 그리고, 요가 클래스를 만들어 보자는 계획이었다. 지원금 300만 원을 받았다.


 마을청소를 위해 집게와 빗자루를 들고 모여 꽁초와 찌그러진 깡통과 검은 비닐 조각들을 줍기 시작했다. 그러자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들이 변했다. 저수지 주변에 냉해에 강한 적배롱나무랑 측백나무 묘목 각 90그루씩을 주문해 4.2미터 간격으로 심기로 했다. 문그로우는 8.4미터 마다 심어야했다.


 4월 나무 심는 날, 마을회관은 코로나로 폐쇄됐다. 고은은 집에서 김밥 60줄을 준비할 생각이었다. 침 맞으러 온 왕언니 환자들이 달려들어 함께 김밥을 쌌다. 나무를 심은 후 마른풀 더미에 둘러앉아 꿀 김밥을 나눠 먹었다. ‘환타 색깔’ 면을 끊어다 주민 중 바느질 전문가인 성숙씨의 도움으로 앞치마 36장을 만들었다. 자투리로는 마스크와 머리띠, 머릿수건을 만들었다. 마을의 남성들도 모두 앞치마를 입고 공동 작업에 나오게 됐다.


 효율적인 의사 소통을 위해 밴드를 만들고 주민 뿐 아니라 도시에 나가 있는 자녀, 일가친척들도 초대했다. 마을의 변화를 지켜보고 응원하며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어버이날 마을 잔치엔 멀리 있는 자녀들의 축하 동영상을 무대 스크린에 상영했다. 어르신들이 활짝 웃는 모습을 담은 현수막도 만들었다. 75세 이상 어른들은 꽃고무신을 신고 무대 의자에 앉아 그들의 사진과 인생 이야기를 앞뒤로 코팅한 선물을 받으셨다.


 온갖 재미진 마을 행사를 기획하고 관철해 내는 고은. '동거 헤체' 후  베프가  된 남편은 자잘한 집수리나 마을 행사에 달려와 도와준단다.


 고은은 요즘 마을 요양소를 지어야겠다고 말한다. 거동이 차츰 불편해지는 동네 어르신들이 멀리 있는 요양원에 보내질 것을 제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평생 살아온 마을에 작은 요양소가 있다면 그들을 모두 안심시킬 수 있지 않은가.


 또 다른 프로젝트는 6평 짜리 농막 20 여 채로 이뤄진 작은 명상 공동체를 삼방리 골짜기에 조성하는 것. 이미 ‘평화어머니회’ 회원들이 뜻을 모으고 있어 근처 땅을 조금씩 사들이는 중이다. 새해에 곧장 이곳에 집을 짓기 시작할 대전 친구도 하나 있다. 각자 자기만의 작은 농막에 살면서, 함께 모여 밥 먹고 노래하고, 텃밭 놀이에다 춤추며 수다판을 벌인다면 나이먹는 일이 조금 덜 쓸쓸하지 않겠느냐는 게 고은의 생각이다. 딱히 일반적이진 않지만 명랑한 할머니 공동체의 탄생이 멀지 않다.


 그녀는 내게도 삼방리로 오라고 한다. 서울과 대구에 양다리를 걸치고 사는 내 삶을 들여다본다. “너무 복잡하게 살지 마.” 고은의 말이 옳다. 단열이 잘 된 여섯 평 작은 집 외에 뭐가 그리 더 필요하겠는가?


 언제나 한발 앞선 안목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며 실행에 앞장서는 고은. 이 친구의 늠름한 아름다움을 우러르며 조금씩 물들어 가는 건 나와 친구들의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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