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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할미 Feb 04. 2022

독거 새내기의 혼밥 한끼

설을 쇠러 온 식구 네명이 다시 흩어졌다. 마치 일박이일 설 차례 퍼포먼스에 모여든 플래시 몹 같은 느낌. 이건 홀로살이가 존재의 디폴트값임을 어느새 알아버린 독거 새내기의 관점일까.


 이젠 남은 설 음식 처리  주간이다. 설 전날 뭔가를 먹고 체한 아들이 설날 통째로 굶겠다는 바람에  음식이 더 많이 남아버렸다. 냉동실에 던져 넣으면 일년 동안 굴러다닐 게 뻔하니 어떡해든 먹어치워야 한다.


 동네 친구들도 비슷한 상황. 나눠먹는 고통분담을 호소할 수도 없다. 명절 음식에 질렸다며 매콤 오징어볶음을 먹으러 가자는 콜에 따라 나설 뻔.


 그렇지만 음식을 버리지 않겠다는 건 내 야심찬 새해 결심이다. 민어구이 한 토막을 덥히고 시금치나물을 꺼낸다. 육전 몇조각에  두부부침까지, 상이 꽉 찬다.


 동영상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 보며 점심을 먹는다. 혼자 쩝쩝대는 소리가 들린다.


 돌연 4인용 식탁이 너무 크게 보인다. 좁던 거실은  확 넓어졌다. 집도 훵~하게 느껴진다. 그 중에서도 냉장고가 너무 크다. 용량이 무려 870리터. 혼밥 생활자에겐 지나치게 거대한 파트너가 아닌가.


 냉장고 사이즈를 줄이기는 불가능. 가능한 건 내용물 줄이기다. 냉동실에 장기투숙 중인 정체불명의 비닐 봉지들이 우선 처리 대상이다. 가래떡, 쑥인절미, 송편, 찹쌀떡이 쏟아져 나온다. 낙지볶음을 비롯 홈쇼핑 냉동식품들은 최소 일년은 지났을 걸. 조기, 고등어, 갈치랑 제수용 굴비까지.  어물전 떨이 행사를 해야 할 판이다.


 당분간 냉장고 털기에 매진하기로 한다. 식구가 여럿일 땐 식재료 사러 마트 다니는  게 밀린 숙제처럼 귀찮더니 어느새 'Buy Nothing Day'가 가능해지다니. 신난다.


 다음 순서는 김치냉장고다. 김장김치랑 깍두기, 고추장아찌랑 무 피클에 된장 간장 고추장 삼총사까지 유통기간 일제 조사 후 버릴 건 버리기로 한다.  앞으로 장보기 목록이랑 규모도 대폭 슬림화될 전망이다. 독거 라이프의 근간은 다운사이징! 뭐든 줄이고 덜 쓰고 싶다. 명색이 '지구에 덜 미안하기운동본부' 회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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