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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할미 Nov 27. 2022

중년에서 노년 사이 풍경 하나

지하철 안국역 부근 골목길의 작은 슈퍼, 옛 직장 동료들과 가끔 들르는 가맥집이다. 버터구이 오징어채를 질겅질겅 씹던 한 후배가 불쑥 말한다. “어제 마누라한테 한 방 먹었어요. 이 사람이 점심 외출했는데, 갑자기 저녁까지 먹고 오겠다고 문자를 하더라고요. 그럼 나는 저녁에 뭘 먹느냐고 물었다가 된통 당했어요.”


“마누라 답장이, 그냥 라면 좀 끓여 먹으면 안 되냐는 거예요. 그리곤 날마다 나를 세끼 멕여 살리느라 힘이 너무 들고 그 스트레스 때문에 친구들이랑 외식하는 거라나요.” 다른 두 남자들이 허~~, 애매하게 웃는다.


“삼식이 5년차라서 마누라 눈치를 많이 보게 돼요. 퇴직하고 명함 없어진 친구 놈들이 다들 비슷하대요. 제 경우엔 청소랑 재활용 쓰레기 배출을 도맡아 해요. 일주일에 서너 번 설거지도 하고요. 제 깐엔 할 만큼 하는데 어제 같은 일을 당하면 왠지 억울해요. 평생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내 맘대로 못 살았는데, 결국 이런 대접밖에 못 받는가 싶어 배신감이 좀 들어요. 제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고요.”


“그게 뭐 하루 이틀 일인가. 퇴직 후엔 마누라랑 관계가 완전 역전된다니까. 마누라 목소리가 엄청 커졌잖아. 적응하는 거 밖에 다른 수가 없네요.” 다른 동료의 말이다.


그는 퇴직 전 ‘죽을힘을 다해’ 마련한 작은 오피스텔에서 음악 듣고 영화 보며 유유자적 풍류 라이프를 구가하는 중. 자신의 사례를 발표한다.


“퇴직 초기엔 오피스텔에서 낮 시간을 보냈지만 아침저녁은 집밥을 먹었죠. 그러다 마누라가 제주도 올레길을 걷겠다며 한 달 동안 집을 비웠어요.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큰 소리를 쳤는데, 속으론 밥 걱정이 되더라고요. 삼시 세끼를 외식이나 배달 음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어요. 달고 짜고, 고열량이라 당뇨나 혈당 관리에 부적합하잖아요. 바로 그 때 액젓을 발견했어요.”


그에게 액젓은 맛의 신세계를 열어준 마법의 한 방울. 국 끓일 때 골칫거리인 육수 만들기가 단번에 해결됐다. “마누라 없는 동안에 약간의 요리 독립을 한 거죠. 은근 뿌듯하더라고요. 멸치액젓이나 참치액젓부터 까나리액젓, 홍게액젓까지 뭐든 요리 초짜들에게 강추합니다.” 그리곤 은근 자신 있다는 잔치국수와 어묵탕을 비롯, 몇가지 액젓 국물 요리를 자랑한다.


몇 해 전 아내와 사별 후 홀로서기 중인 옛 상사의 이야기가 화제에 오른다. ATM에서 돈을 뽑아내지도 못할 정도로 온 집안일을 아내에게 맡겼던 분이다. 당연히 세탁기 돌리는 법이나 청소기 사용법을 알았을 리 없다. 세상 떠나기 전 어리숙한 남편을 많이 걱정했던 아내는 가사 루틴 목록을 만들고 가전제품 매뉴얼까지 꼼꼼히 챙겨 두었다 한다.


아내의 당부대로 결혼한 아들과 살림을 합치지 않기로 결정한 후 그는 집안일을 독학했다. 어느덧 각 잡히게 개킨 빨래들을 사진 찍어 아들딸에게 자랑하고, 마트 앱으로 할인 품목을 주문하는 살림의 고수로 등극했다는 소식이다.


오가는 이야기에 묵묵히 맥주만 들이키던 다른 동료, 최근 ‘졸혼’ 비슷한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선언을 한다.


“아, 뭐 놀랄 일은 아니고요. 별거는 맞는데 저희 부부 사이가 엄청 나빠져서 따로 살려는 건 아닙니다. 제 경우 풍파 없이 무난한 결혼 생활이었거든요. 다만 퇴직하고 나니까 그냥 아파트가 갑갑해졌어요. 고향 집을 좀 수리하면 살만할 것 같은데, 집사람은 서울이 좋다네요.”


자신이 ‘멋모르고 결혼했던 독신주의자‘같다는 그에겐 내년 귀향 계획이 참 오랜만의 설렘이란다.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처자식 제대로 건사하는 일이 제겐 많이 힘들었어요. 남들보다 뭐 잘한 건 없어도 어쨌든 딸 둘이 결혼하거나 독립해 나갔으니까 제 숙제는 거의 끝난 거죠.”


“집사람이랑 저는 취향이나 인간관계가 많이 달라요. 이제 좀 롱디로 살면서 각자 하고 싶은 걸 하면 서로 괜찮을 것 같아요. 신기하게도 이 부분에 집사람이랑 의견이 일치했고요.”


혼자 걷기를 오래 꿈꾼 만큼 오믈렛이나 들기름 막국수 정도는 이미 거뜬히 해내는 실력. 부인의 어깨너머로 된장찌개랑 김치찌개도 익혔단다. 지난 2년 동안 목공 일도 배웠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작은 산의 숲을 제대로 관리해 보겠다는 꿈도 은근 내비친다.


“귀촌을 희망하는 이들이 제법 있는 것 같은데, 막상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하는 이들은 많지 않더라고요. 그렇다고 전자렌지나 에어 프라이어로 간편식만 해 먹을 순 없죠. 유튜브 요리도 들여다보지만 따라 하기는 쉽지 않아요. 귀촌 지도를 하는 지자체들이 나홀로 귀촌인들을 대상으로 생존 요리 교실을 운영해 줬으면 좋겠어요. 음식을 통한 네트워킹이 반쯤 자연인이 되려는 귀촌인들에게 절실하거든요.”


그의 열띤 목소리를 오피스텔 동료가 받는다. “뭐야. 이건? 독립운동 같은데. 마누라 눈치보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삼식이들한테 들으라는 거 같아. 하긴 밥을 내 손으로 해먹을 줄 알아야 멘탈 독립도 가능한 거니까. 축하하네. 부럽기도 하고. 가끔 시골집에 나도 좀 불러줘.”


마지막 맥주잔을 서로 부딪치는 그들을 본다. 이미 정수리의 머리털은 희끗희끗 엷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60대 중반. 앞으로의 날들을 어떤 새로운 서사로 채울 것인지 고민하기엔 전혀 늦지 않은 나이다. 각자의 여정에 지금까지와 다른 모험의 흥분과 설렘이 함께 하기를! 격한 지지와 축복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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