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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할미 Apr 16. 2023

부럽지? 난 도품아에 산다


  3월 말, 동네에 경사가 났다. 오래 기다려온 구립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바로 옆 아파트 단지다. 이름은 좀 장엄한 하늘꿈도서관. 당연히 발생한 ‘오픈발’로 유치원생과 초딩들, 그리고 엄마들로 붐빈다. 심심한 할아버지랑 할머니들도 모여든다.  

    

  먼저 회원 등록을 한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대출증까지 도서관 앱 속에 담고 나니 왜 이렇게 신이 나지? 신분 상승이라도 한 것 같다.     


  누군가는 ‘초품아’에 산다고 뻐긴다. 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의 프리미엄을 자랑하고 싶어서다. 그렇다면 도서관을 품은 아파트는 ‘도품아,’ 한 등급 더 높은 품격이 아닌가? 유치하게도 괜히 기분이 좋다.     


 도서관 이름은 타겟 고객층이 어린이와 청소년임을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정문을 열자마자 눈에 확 들어오는 건 계단. 산뜻한 인테리어로 컬러를 입혀 미래 세대를 위한 책 놀이터로 딱이다. 1층과 2층은 그들을 위한 공간. 아이를 동반한 보호자가 함께 비스듬히 기대어 책을 읽을 수 있게끔, 최우선 고객의 취향을 저격한다.


 책 읽는 소리, 노트북 타이핑 소리 등 백색 소음을 양해하라는 표지판까지 있다. 엄숙주의를 내던진 도서관의 배려가 마음에 든다.  

    

 큰 글자 그림책들이 많다. 어쩜 요즘 책들은 이렇게 멋진 디자인 옷을 입고 나오는지, 감탄을 연발한다. 3층은 청장년과 시니어들의 공간. 일반 도서관의 분류에 따라 적은 규모나마 책들이 꽂혀있다. 모두 새 책이라 만지고 뒤적거리는 기분이 좋다.  자동 대출과 자동 반납을 도맡은 기계들이 각 층마다 있어 손쉽고 간편하다. 노트북 자가 대여와 반납까지 가능하다.  일층엔 젊은 엄마들을 위한 수유실도 있다. 

  

 살아오던 중 지금처럼 시간 부자인 때가 없었다. 책과 놀기에 최고 좋은 시기라는 이야기다. 물론 모든 즐거움엔 매복이 있다. 날로 침침해지는 눈이다. 그뿐인가? 30분만 읽으면 목이 뻣뻣해진다. 똑바로 앉아 책을 읽는 자세도 오래 유지하기 어렵다. 비행기 이코노미 좌석 증후군 비슷하다. 혈액 순환을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서성거리다가 다시 읽는 수밖에.  

    

 그래도 새 책 냄새가 좋은 걸 어쩌나. 도서관에 조금 더 앉아있고 싶다. 종이책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소리가 요란하다. 하지만 내 손에 쥔 책의 기분 좋은 무게감은 전자책에서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아니던가. 부족한 시력은 다초점 안경이나 돋보기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게다가 노년 맞춤형 친절한 큰글자책 서가도 따로 마련돼 있다.  

    

 나이가 들면서 좋아하는 영화의 장르가 바뀌듯 읽는 책도 바뀌었다. 나이듦과 병, 그리고 종교와 죽음을 다룬 책으로 쏠린다. 태어남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긴 여정의 의미를 나름 찾고 싶은 까닭이겠다.       


 영성가 안젤름 그륀 신부의 <노년의 기술>이나 헬렌 니어링, 스콧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도 좋아한다. 죽음학 연구가인 정현채교수의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 도 애독한다. 우리나라의 뛰어난 영성 철학자인 유영모선생과 함석헌선생의 글도 되풀이해 읽는다.     


 ‘추석이란 무엇인가?’ 라는 칼럼으로 유명한 김영민교수의 <아침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유쾌한 글모음이다. 정치외교학과 교수인데 학부는 철학 전공이었다니, 어쩐지 그의 생각과 글이 발랄한 배경이다.     

 이젠 양장본이라는 멋진 장정의 책은 피한다. 무겁기 때문이다. 손안에 쏙 들어오는 문고본 사이즈 책들이 제일 좋다. 가방에 넣어 들고 다니기 편한, 영혼의 짝꿍이랄까.   

     

 새 책을 펼 때는 언제나 설렌다.  오래전에 읽은 책도 다시 만나면 새 책이다. 이미 읽은 책이 낯설게 느껴지는 건 뭘까? 읽는 내가 변했고 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나이만큼 느낀다. 문학의 고전들에 대한 문해력이 상승하고 있다고 자평할 정도다.      


 등장인물이 지나치게 많은 에로 소설로만 읽었던 <홍루몽>이 좋은 예다. 18세기 중반 중국,  청나라 건륭제 시대의 작품. 섬세한 인물 묘사와 거의 비현실적인 다중 로맨스 서사가 특징이다. 하지만 나이 60이 넘어 읽게 된 <홍루몽>엔 젊음의 아름다움과 슬픔만 있는 게 아니었다.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그 세계관의 깊이를 느끼게 된다. <홍루몽>을 연구하는 ‘홍학’이 생겨났다는 게 놀랍지 않다.  

      

 오늘의 첫 대출은 <오강남의 생각>으로 고른다. 종교학자 오강남의 글 모음이다. 그다지 종교적이지 않은 나조차  ‘아하!’를 연발하며 찾아 읽는 저자. 우리 시대의 종교와 영성에 대해 탁월한 통찰을 지닌 분이다.  


 얼마 전까지는 왕복 한 시간 거리인 개포도서관에 다녔다. 한번에 5권씩 빌려 배낭에 담아 낑낑대며 오가곤 했다. 이젠 도서관이 옆집이니 굳이 욕심낼 필요가 없다. 게다가  내 나이엔 2주일에 책 한 권이 적정 독서량이 아닐까 한다.      

 

 초딩 딸과 함께 온 젊은 엄마가 가만가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책을 고른다. 어여쁜 모녀에게 은밀하게 축복의 꽃화살을 쏴 보낸다. “오래 함께, 지금처럼 다정하게 책과 놀아보시라.”  그리고 결심한다. 이웃사촌이 된 도서관과 오래 친하게 지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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