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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할미 Jun 12. 2024

골다공증 약을 먹기 시작했더니

 

 올 봄에 골다공증 진단을 받았다. 처방 약 중 일부는 일주일에 한번, 아침 빈속에 마시고 30분 간 몸을 굽히지 않는 것. 집안에서 30분을 계속 걸어 다니거나 서있기는 힘들다. 대충 머리를 묶고 밖으로 나온다.    

  

  7시 30분, 지하철역 출구로 근처 고등학교 남학생들이 쏟아져 나온다. 흰 셔츠 교복이나 학교 로고가 영어로 박힌 후드 티에 반바지 차림. 무선 이어폰을 꽂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걷는다. 하나같이 잘생기고 하얗고 건장한 체격. 그런데 피곤해 보이거나 무표정이 많다. 이 나라 학습노동자의 전형적 모습! 짠하다. 그나마 하교 시간엔 둘 셋씩 어울려 시끌벅적 활기 넘치는 모습으로 학교를 빠져나오겠지. 어쩌겠나. 대한민국에 태어난 그대들의 운명인 것을.  그들의 고단한 하루를 맘속으로 응원한다.     

 

 동네 빵집에서 빵 굽는 향기가 퍼져 나온다. 코를 벌름대며 바로 옆 공원으로 들어선다. 6월의 장미들은 어느덧 시들고 있다. 모란이든 장미든 한 달 씩 앞당겨 피는 게 이상기후 시대의 뉴 노멀인지. 이젠 능소화도 한 달 앞당겨 피어나고 있다.  주홍빛 능소화를 올해도 만나게 되다니, 감동이다. 내게 몇 번의 능소화가 더 남아있는 걸까? 모르니까 다행이다.     


 공원을 발명한 이는 누굴까? 그는 천재다. 나무들과 꽃들을 만나는 작은 공원들이 얼마나 소중한 공간인지, 나이가 들수록 감동이 커간다. 잠이 적어진 동네 얼리버드들이 운동기구 터에 하나둘 모여든다. 그네를 타는 할배 모습이 천진해서 웃음을 참으며 지나친다. 철봉에 매달린 백발 할미는 정말 놀랍다. 안 보는 척 하면서 그녀의 얼굴을 슬쩍 본다. 별로 힘든 표정이 아닌 걸 보니 꽤 오래 해온 모양이다. 어깨와 허리 근육을 잘 지키려는 노력, 본받아야 한다. 연금보다 근육이라는 말이 있잖은가.       


 나는 레그 프레스와 스텝 싸이클, 그리고 자전거를 5분 씩 탄다. 실내 피트니스가 답답해 못 견디는 통에 어쩔 수 없이 공원 운동기구 러버가 된 처지. 다리 스트레칭으로 허벅지와 종아리, 그리고 엉덩이 근육을 단련시킨다는 그림 설명서를 믿는 편이다. 근감소증은 노년에 광범위하게 창궐하는 증세 중 하나. 맨날 걱정하기보다 작은 실천이 답이다.   

   

 갓 피어난 능소화 넝쿨 옆에서 운동 기구랑 노는 호사를 누리는 오늘은 얼마나 축복받은 아침인가! 공원에 운동기구 설치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해준 이들에게 “감사합니다”를 외친다.           


 공원 속 감나무들과 매화, 벚나무들의 초록이 어느덧 짙어졌다. 이른 봄 향기를 내뿜던 매화 가지엔 매실이 주렁주렁, 감나무 잎은 참기름을 바른 듯 윤기가 자르르하다. 정말이지 나무들은 나이 먹을수록 의젓하다. 해가 갈수록 위엄 있는 존재감을 드러내는 나무들! 나이듦을 감추려, 젊어 보이려 안달하는 인간 종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진다.      


 개망초꽃이랑 토끼풀꽃도 한창이다. 자잘한 씀바귀꽃도 노랑 보석처럼 어여쁘다. 식물들의 말없는 성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제때 꽃피우고 열매 맺는 묵묵함에 경의를 표한다.      


 느티나무 아래 관목 덤불 속에 사는 공원 냥이, 노란둥이가 아침 해에 몸을 덥히며 식빵을 굽고 있다. 그의 안녕을 가끔씩 확인하는 기쁨도 공원 나들이의 주요 일정이다. 매일 오전 일정한 시간에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동네 캣맘의 정성이 느껴진다.   

   

 골다공증 말고도 올해 얻은 병은 얼굴떨림이다. 눈밑 떨림이 생긴 지 몇 년 되더니 이젠 안면떨림이 나타나 침뜸 치료를 받고 있다. 나이 60 이후 해마다 늘어나는 크고 작은 병들을 이름표처럼 달고 다니는 느낌이랄까. 언제 무슨 병이 와도 별로 놀랍지 않을 것 같다. 사실 70년 가까이 몸속 온갖 장기가 정상 작동한다는 게 오히려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늘어나는 병들은 내게 삶이 유한한 것임을, 이번 생이 ‘소풍’임을 일깨워준다. 병으로 인해 자아 비대증이 감소하고 있는 것도 재미있다. 우리 모두는 한낱 생로병사의 생명체. 자연의 순리 속 존재하는, 들풀과 별로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병이 가져다 준, 겸손을 함양할 기회!  잘 사용하는 게 슬기로운 노년생활의 첫걸음이 아닐까?        


 한편, 병이 가져오는 온갖 신체적 부자유 속에서도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찡그린 채로, 아니면 웃는 얼굴로 살아갈지 여부를. 병은 또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스스로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우리가 언젠가 사라질 이번 생의 모든 인연들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이유다.     

  

 일찍이 정한 내 목표는 이번 생을 완주하는 것. 생로병사의 전 과정을 몸과 마음으로 통과하기다. 허락된다면 80세의 관점, 90세의 관점을 그때그때 기록하면서 말이다. 어쨌거나 유병 장수가 동시대인들의 운명이라면 자잘한 병과 함께 나이드는 건 나쁘지 않다. 완전치 않은 채로 온전하게, 괜찮치 않은 채로 괜찮게 살아가 보는 거다.      


 그래서 두 팔을 번쩍 들어 다짐한다. 명랑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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