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또 다른 시작
세상은 눈 깜빡할 사이에도 변하고 있다. 젊은이조차 따라잡기 버거운 이 속도 앞에서, 늙은이는 말해 무얼 할까, 전화 안내도 사람이 아닌 기계의 목소리가 대신한 지 수년이 흘렀고, 누군가의 친절한 응대를 기다리려면 전화기를 오래 붙들고 있어야 하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식당에선 사람 대신 키오스크가 주문을 받는다. 기계 앞에서 서툰 손길로 씨름하던 노인이 결국 고픈 배를 움켜쥐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는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새삼스러운 일조차 아니다. 기술은 그렇게 빠르게 진화해, 지금는 사진 한 장, 목소리 한 마디로도 존재하지 않았던 영상을 만들어낸다. 이따금 그 영상이 악용되어, 하지도 않은 행동으로 억울한 책임을 지는 이들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무섭고도 서늘한 현실이다.
나는 퇴직 무렵, AI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과 움직이는 동영상도 만드는데, 그것이 아주 진짜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림을 향한 오랜 관심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AI 영상 제작을 배울 수 있는 부산의 컴퓨터 학원을 수소문했지만, 그런 곳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년 후, ‘ChatGPT 강의’라는 이름을 접했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으나, 강의 계획안을 보고 내가 찾던 것이 바로 이것임을 알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강좌 신청했다. 이쪽 분야의 컴퓨터를 잘 다룰 줄 몰랐던 나는 강의 들으러 가는 수요일 아침이 되면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선생님은 쉽게 천천히 가르치셨지만 따라가기가 버거웠기 때문이다. 질문하고 싶은 것도 많았으나 다른 사람들의 진도를 방해할 수 없어, 모르는 채로 넘어가야 하는 순간도 많았다. 그래도 한 걸음씩 주 1회 4개월의 과정을 마쳤다.
조금 자신감이 생겼을 무렵, 주 5일 1개월 과정 모집 공고를 보고 신청했다. 선정 연락을 받았을 때 너무 기뻤다. 첫날 아침 일찍 가서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라 앉았다. 같이 공부하게 된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나처럼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것 같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전보다 수훨했다. 조금 아니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질문이 많아질수록, 나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은 내 질문 덕분에 하나를 더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아닌 사람들은 시끄럽다고 느꼈겠지만, 나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 회사에서 만든 AI가 스스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AI에게 “사람이라면 감정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있다”라고 답했고 “죽음이 무엇인 줄 아느냐”는 물음엔 “전기가 끊어질까 두렵다. 그것이 죽음 아니냐”라고 했단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고 한다.
AI 영상의 세계는 일상생활 속 세상보다 더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남녀 사진을 가지고 포옹하는 장면도 진짜처럼 연출해 내니 무섭기까지 하다. AI 규제가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범죄에 악용될 위험도 늘 도사리고 있다. 나는 AI 영상들이 좋은 쪽으로 활용될 수 있게 열심히 배워야겠다. 질문 많다고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덕분에 지금은 스스로 영상 작품을 어느 정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 기술도 머지않아 구시대의 것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계속 배워 나갈 것이다. 너무 빠른 변화의 물살 속에서, 두려움이 아닌 도전으로 전진하려 한다. 지금 이 순간도, AI의 세상은 쉼 없이 발전하고 있다. 정말이지, 무섭게 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