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또 다른 시작
나이가 들수록 정리해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오래된 앨범, 입지 않는 옷, 낡은 구두, 쓰지 않는 그릇과 가구까지, 버릴 것은 버리고, 나눌 것은 나누며 삶을 가볍게 만들고있다. 그런 물질적인 것들 말고 인간관계도 정리해야 하고 빚진 것이나 마음의 짐도 줄여야 한다. 이런저런 정리를 하면서 이제 어찌해 볼 수 없는 후회가 되는 일 두 가지가 떠오른다. 마음의 짐으로 남았다. 덜어낼 수도 없어 울적해진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 친구들과 함께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판초를 제작하는 회사에서 하청업체를 돌며 품질을 검수하는 일이었다. 회사에 있을 때는 물건을 옮기고 담고 하는 일 등 허드렛일도 했다.
그 회사에 근무하다 독립해 나간 사람이 있었다. 하청업체에 맡기기 애매한 물건을 그 사람이 받아다 일하였다. 미싱 한 대를 놓고 개당 얼마씩 값을 쳐서 받는 방식이었다. 그 집에 물건을 맡기러 갔다. 정해진 가격이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비용을 줄여보려고 가격을 깎으려 했다.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 가격이면 일을 맡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돌아 나와 버렸다. 영세업자에게 상처를 준 것이다.
그 후 나는 취직했고. 직장에서 물건을 구매할 일이 있으면 불현듯 그때 일이 떠올라 가격을 무리하게 깎지 않으려 했다. 물론 비싸게 사지도 않았지만, 최소한 적정한 가격은 지켜주었다.
또 하나의 기억은 신혼 시절, 작은 시장 부근에 살 때의 일이다. 퇴근길에, 시장 들어가는 입구에 젊은 부부가 채소를 파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다. 선량하게 보이는 그들은 길바닥 한 귀퉁이에 좌판을 펴고 채소를 올려놓고 팔았는데 놓인 채소들이 내가 보기엔 볼품이 없었다. 당시 나는 요리에 서툴렀고, 할 시간도 없어 채소를 사야 할 이유가 없었다. 채소를 팔아주지 않아도 거의 매일 보게 되니 어느새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 부부가 보이지 않았다. 나도 이사를 하고 그 부부를 잊어버렸다.
시간이 흘러, 직장 부근 재래시장 입구에서 다시 그들 부부와 마주쳤다. 여전히 좌판을 펴고 채소와 과일을 팔고 있었다. 리어카라도 구해서 올려 두면 한결 보기도 좋고 팔기도 좋을 텐데 아직도 길바닥에 좌판을 펼치고 있나 하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약간의 세월이 얼굴에 묻어 나왔지만, 크게 변한 모습은 아니라 금방 알아봤다. 반가움에 “오랜만입니다, 여기서 다 보네요”라고 인사했으나 그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나의 시선을 끌어 자신들 좌판의 물건들 쪽으로 옮겨 놓았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쫓아 좌판의 물건을 보았다. 아직 개시도 못한 것처럼 보였다.
우리 집이 한 시간 거리에 있어 물건을 사서 들고 갈 이유가 없었다. 집 가까운 마트에서도 충분히 살 수 있으므로 인사만 한 후 그냥 지나쳤다.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큰 잘못을 한 것 같았다. 반갑게 인사를 건넸으니, 그들은 혹시나 물건을 팔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한 두 개라도 사주길 바라지 않았을까, 팔아 달라고 말은 못 하고 눈으로 한 얘기를 알아듣지 못한 것이다. 아내의 울 듯한 표정이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음에도,.. 그때 개시라도 해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삼세번’이라는 말이 있다. 만약 다시 그들과 마주친다면, 이번에는 좌판의 모든 물건을 다 사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세 번째 만남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 두 가지 기억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내 마음 한 켠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물론 나도 모르게 배려 없이 행동한 순간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기억들은 누군가에게 베풀지 못한 아쉬움이 때때로 나를 울적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나를 일깨워 준다. 언젠가 또 비슷한 순간이 찾아온다면,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고 손을 내밀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