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또 다른 시작
호칭은 인간관계의 거울이자 시간의 지문이다. 이것을 개별호칭, 관계 호칭, 묶음 호칭으로 나누어 보았다. 개별호칭은 개인 고유의 이름에 따른 호칭, 즉 이름이다. 나이가 적을수록 많이 부른다. 관계 호칭은 혈연과 사회 속에서 자연스레 붙는 이름이며, 친밀도나 예의에 따라 변주된다. 묶음 호칭은 연령 집단을 통칭할 때 사용되는데, 남성의 경우 ‘총각’, ‘아저씨’, ‘할아버지’로 이어지는 명칭이다. 이는 나이의 궤적을 따라붙는 일종의 사회적 표식이다.
어머니께서 큰 수술을 받으셨다. 연세가 있어 회복이 더디자 우리 남매들은 간병인을 쓰지 않고 돌아가며 간호했다. 주말이 되면 병실이 텅텅 비었다가 주초가 되면 병상들이 찼다. 내 차례인 수요일 병실에 들어서자 네 개의 침상이 모두 차 있었다. 그중 건너편 안쪽 침상에 머리를 빡빡 밀은 환자가 들어와 있었다. 이름표를 보니 항암 치료 중이었다. 보통 항암 환자들은 2박 3일 일정으로 치료를 받고 갔다.
그녀가 사과 한 조각을 들고 내게 다가왔다. 어머니를 포함해 다른 환자들은 금식 중이라, 내게 내민 것이었다. 나는 먹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라, 정중히 거절하려던 찰나, 그녀의 입에서 나온 호칭이 나를 멈칫하게 했다. “할머니”라니,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나보다 여섯 살이나 많은 사람이 그렇게 부른 것이다. 나는 어깨선까지 내려오는 웨이브 머리에 단정한 트레이닝복, 마스크를 끼고 있어 주름 없는 이마만 나와 있었다. 왜 나는 ‘아줌마’가 아닌 ‘할머니’로 보였을까.
문득, 아가씨 시절 ‘아줌마’ 소리를 얼마나 듣기 싫어했던가, 하는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제는 ‘아줌마’라 불리길 바라다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20대 후반 직장 3년 차였던 어느 봄날이었다. 좀 비싼 값을 지불하고, 산호색과 노란색이 어우러진 화사한 투피스를 장만했다. 허리를 잘록하게 잡아주는 디자인에 A라인 스커트, 넓은 스탠 카라 중간에 가로로 된 다이아몬드 브로치가 덤으로 달려 있었다. 그 옷을 입고 퇴근하던 길, 어머니 심부름으로 재래시장에 들렀다. 그런데 좌판을 펼친 할머니가 나를 향해 "아줌마"하면서 물건을 사 달라고 불러 세웠다. 이런 비싼 옷을 잘 차려입고 시장바구니가 아닌 핸드백을 메고 있는 내가 어떻게 아줌마로 보인단 말인가, 망친 기분으로 집에 온 나는, 나를 아줌마로 만들어 준 그 옷을 벗어 옷장 구석에 처박았다. 그런 뒤로 브로치만 떼서 다른 옷에 활용했다.
세월이 흘러 어느 해, 어머니와 함께 떠난 베트남 다낭여행에서 앞니가 빠진 초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가 50 초반인 나를 ‘할머니’라고 불렀다. 처음으로 할머니 소리를 들은 충격적인 날이었다. 당시, 직장을 다니고 있었으므로 ‘팀장님’ 직함으로 불러졌고, 길을 다닐 적에도 ‘아줌마’ 소리는 들어봤어도 ‘할머니’라니...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내가 그렇게 나이를 먹어버렸나, 다친 마음이 아물어지지 않았다.
그 무렵, 우리 집 위층에도 초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가 살았다. 출근길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치던 그 아이에게 나에 대한 호칭이 궁금해서 물었다.
"안녕, 학교 가니?"
"네, 안녕하세요."
"내가 아줌마야? 할머니야? 뭐라고 부를 거니?"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앞 치아가 빠져 있는 그 아이 입을 바라봤다. 잠시 머뭇거리던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음… 아랫집 이모요."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 아이의 대답이 그토록 멋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 넌 커서 정말 큰 인물이 될 거야. 호호”
여자들은 아가씨, 아줌마, 할머니로 이어지는 호칭의 강을 건넌다. 아가씨 시절 '아줌마'라 불리면 마음이 상하고, 나이 들어서는 ‘할머니’보다 '아줌마'가 더 기분 좋게 들린다. 지금보다 나이가 더 들면 '할머니'라는 호칭도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병실에서 만난 그녀가 나를 왜 '할머니'로 불렀는지 여전히 궁금하다. 혹시 병마가 그녀의 시야마저 흐리게 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세월의 흔적이 내 안에서 이미 그렇게 자리 잡은 걸까, 간혹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묶음 호칭이야말로 나를 가늠케 하는 가장 객관적 지표이며, 나의 삶이 지나온 궤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