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또 다른 시작
나는 사주학을 공부해 왔다. 이 학문은 사주학, 명리학, 추명학, 사주명리학이라고도 부른다. 주역이 우주 만물의 원리를 설명하는 학문이라면, 사주학은 그중 인간의 삶에 대한 부분을 다룬다. 사주학은 사상 의학, 성명학, 풍수학 등과도 연결되며, 과거에는 배우려면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했다. 하지만 요즘은 서적, 유튜브, 온라인 강좌 등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그리고 오프라인 강의는 사주학 보다 주역이 무료 특강형식으로 진행되는 곳들이 있다.
교육회관에서 주역 강의를 하고 있었다. 시작부터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중간에 알게 되어 그때부터 수업을 들었다. 강의실을 둘러보니 수업 듣는 사람들 대부분이 70~80대 남성들이었고, 드문 드문 그들보다 연배가 조금 적은 여성들이 보였다. 동년배가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강의가 시작되기 전, 지팡이 짚고 오신 팔십 대 할머니가 앞자리에 앉아 주변 사람들에게 사탕을 하나씩 나눠주셨다. 주시는 것이라 안 받을 수도 없어 “고맙습니다” 하고 받았다. 그런데 몇 분 후, 그 할머니가 나를 향해 “사탕 받았는교?”라고 묻기 시작했다. 나는 손에 든 사탕을 보여주며 “녜 받았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같은 질문이 수업이 시작될 때까지 반복되어 나는 같은 대답을 몇 번이나 해야 했다.
수업 진도가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는데 책 넘기는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책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강사 말만 집중해 듣느라고 책장을 넘길 일이 없는 듯했다. 한 시간 마치고 쉬는 시간에 ‘지팡이 분실하신 분’ 방송이 들렸다. 예전 직장 다닐 때, 휴대폰이나 소지품 가방 분실 방송은 종종 들어봤어도 지팡이를 찾는 방송은 생소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퇴직 후, 일정한 생활패턴이 무너진 상태에서 연세 많은 분들과 수업을 들으려니 적응이 잘 안 되었다. 비슷한 연배가 있으면 말벗이라도 될 텐데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내 옆자리에 깔끔한 옷차림의 한 여성이 와서 앉았다. 나와 비슷한 연배로 보였다. ’드디어 찾았구나 ‘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녀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여기가 수필 수업하는 곳이에요?”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교단 뒤에 있는 하얀 문으로 들어가시면 수필 반 교실이 있습니다”라고 알려주었다. 안쪽으로 걸어가는 그녀 뒷모습을 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어이구, 좋다가 말았네.”
수필 반은 내가 주역 강의를 듣기 시작할 무렵에 개설되었고 직원들은 홍보 중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글쓰기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대신 지인을 소개해 주었다. 주역 강의실에 앉아 수필 반 교실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 '고상하고 교양 있어 보인다 ' 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과 소통해보고 싶었지만,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 주역 강의가 6개월 만에 폐강되었다. 책 한 권을 끝내지도 못한 채 끝나버렸다. 이 강의가 지속되길 바랐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그곳에서 열리는 사진 촬영 강좌를 들었다. 사진 수업은 꽤 유익했다. 찍어 둔 사진을 보정하는 법, 카메라 각도 잡는 법 등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다. 수업 마치고 나가는 길에 예전 수필 반 소개해 줬던 지인과 마주쳤다. 수필 반 사람들과 밥 먹으러 간다고 했다.' 밥도 같이 먹는 사이구나 ' 싶어 내심 부럽기도 했지만, 수필 수업은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손가락과 무릎 골절을 당했고, 결국 사진 수업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골절 물리치료가 끝나갈 무렵, 문득 수필 반에 관심이 생겼다. '한번 글을 써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단정하고 품위 있어 보이던 사람들, 왠지 말이 잘 통할 것 같았던 그들과 함께 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나는 수필 반에 합류했다.
수업은 두 시간으로, 한 시간은 수필 전반에 대한 이론, 나머지 한 시간은 수강생들의 글을 첨삭하는 시간이었다. 두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순식간에 지나갔다. 선생님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쓴 수필을 발췌해 예시로 가져오셨는데, 이를 위해 다독과 열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글벗들의 글을 읽으며 다양한 삶을 간접 경험할 수 있었다. 연배가 높은 분들의 글을 통해 부산의 역사, 과거의 생활상, 유행했던 것들, 힘겨웠던 삶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책에서 배우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글벗들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은 ’ 점잖고 순수하다 ‘였다. 글쓰기가 사람을 순화시키는 것인지, 본래 그런 성품이신지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 글을 쓰면서 내 안의 정화과정을 경험했다. 삶이 정리되고, 마음이 차분해지며, 세상을 관조하는 여유도 생겼다. 과거의 속상했던 기억조차 이제는 괴롭지 않았다. 글을 통해 그 감정들을 뱉어냈기 때문이리라.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건강이 걱정되었다. 언제까지 함께 할 수 있을까,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이지만, 모두 오래도록 수업을 들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수필 반이 생겼을 때부터 시작했더라면, 더 오래 함께 했을 텐데,..
퇴직 후 만난 인연들은 대부분 3~4개월짜리 강좌에서 만났고, 강좌가 끝나면 쿨하게 헤어졌다. 하지만 수필 반은 그렇게 되지 않을 것 같다.
살아갈 날이 많지 않을 때 만난 인연들이라 그런지,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더 깊어진다. 이 소중한 인연이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기를, 먼 훗날 다시 만나 글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