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전에 자격증을 여럿 땄다. 재취업을 꿈꾸며 여기저기 취업 자리를 물색했다. 경제적 이유 보다 딴 자격증을 활용해 보고 싶었고, 직장인과 백수의 중간과정을 거치고 싶었다. 그러던 차, 내가 가진 자격증 세 개가 우대 조건으로 나온 회사의 모집공고를 보게 되었다. 세 개의 자격을 함께 가진 사람이 많지 않으므로, 공고에는 연령 기재가 없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해봤더니 ‘역시나’ 젊은 사람을 뽑는다는 답이었다.
시니어만 뽑는 회사에 이력서를 내었다. 자격증이 많았음인지 서류 합격은 하였으나 면접에서 떨어졌다. ‘나는 누구보다 성실히 일 잘할 수 있는데, 면접관들은 눈을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건가,’ 처음에는 분노가 일었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았다. 이력서에 적어낸 나의 경력은 서류만 만질 줄 아는 사람이고 그 일은 육체노동을 동반하는 것이었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사용처에 따라 쓰임이 다른 것이다. 나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취직자리를 알아보면서 안 사실인데 나이 먹은 사람들의 취업시장은 생각보다 치열했다. 면접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행색을 보고 그들이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절박함이 있는 것도 같아 보였다. 내가 괜히 끼어들기를 하려고 하는가 싶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나를 불 합격시킨 면접관들의 높은 안목을 칭찬해 주고 싶었다.
직장을 구하는 노년의 어느 수기를 읽었다. 그녀는 4대가 함께 사는 종갓집 맏며느리였다. 시부모 봉양, 열두 달 내내 제사 모시며 살다가, 더는 못 참고 이혼했다. 이런 삶에서 벗어나려고 재산을 나누어 갖지 않는 조건으로 이혼한 상태라 자기 먹고살 것은 벌어야 해서 직장을 구하러 다닌 것을 수기로 쓴 것이다. 62세부터 65세까지 그녀가 했던 일은 수건 개기, 백화점 지하 식품부 청소, 건물 청소, 어린이집 주방 담당, 아기 돌보미, 요양 보호사, 장애인 활동 지원사로 일했다. 그 글을 읽으면서 ’아, 우리나라 노인의 취업 현장이 이렇게 힘들구나 ‘ 탄식이 나왔다. 그녀는 자식들 신세를 안 지고 생계를 꾸리려고 애썼다. 젊은 청춘 시절에는 남편의 조상을 위해 살았고, 그에 합당한 보상 없이 남편으로부터 자유를 찾아 한 이혼, 힘 빠진 노년에는 자신의 한 입 풀칠하려고 아등바등한 삶을 살아야 했다. 결국 그녀는 마음 졸이며 살았던 삶의 결과물인지 심장병을 앓다 생을 마감했다.
아는 지인은 고액 연금 생활자이다. 시니어 일자리가 나오면 지원하는데 다른 경쟁자가 있으면 지원 포기를 한다고 했다. 자신은 연금만으로 생활이 가능하지만, 다른 지원자는 생계를 위해 구직을 할 수도 있어서다. 그는 지금 노인보호센터에서 차량 운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마감 기한까지 신청자가 없어 자신이 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아침과 오후에 차량을 운전해 주면 되므로 부담도 없고, 힘들지도 않고, 소속감도 있고, 무료하지 않으며 자신의 용돈 벌이는 된다고 한다. 전화 통화 속 목소리에 생기가 흘렀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돈을 벌기 위함, 글쎄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함, 글쎄요, 일정한 생활의 패턴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것, 이것도 아니다.
자원봉사도 해봤다. 9시에 출근하는 곳은 없었고 일회용, 단기간 근무제였다. 이것도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사무실에 출근하면 내 자리가 있고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가 있는 것을 원한다. 이것이 결론이다. 페이가 없어도 되고 조금 주면 좋고 적당하게 주면 감사하고 많이 주면 그만둔다. 그런 곳이 어디 없을까, 내 자리와 컴퓨터만 주고 공짜로 일 부려 먹을 회사가 있으면 좋겠다. 나는 정말 서류 작성에 자신이 넘치는데, 나는 너무 성실하고 예쁘기까지 한 사람인데... 이런 나를 채용해 줄 회사 어디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