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의 소속은 민간인

은퇴 후, 또 다른 시작

by 김청라 Mar 06. 2025

  이 년 전, 시니어 클럽에 일자리를 신청해 두었는데 거기서 연락이 왔다. 국가직 시험감독관 자리였다.  이 일을 하기 위해 이틀 전 교육 2시간을 받았다. 모두 13명이었고 남자 10명 여자 3명이었다. 나를 제외한 그들은 이 일을 몇 번 해본 경험이 있었다.

 아침 7시 20분 금강중학교로 갔다. 당일 아침 늦잠으로 시간을 못 맞출까 걱정했는데, 제시간에 맞게 시험장 본부인 금강중학교 도서관에 도착하였다. 퇴직 후, 이른 아침 화장하고 정장 차림으로 집을 나서니 출근하는 느낌이 났다. 직장으로 복귀한 느낌도 들었다. 그곳은 장애가 있는 사람들만 모아서 시험 보는 시험장이었다. 벽에 붙여진 게시판에 각 부서에서 온 사람들의 업무분장이 적혀 있었다. 내 소속은 민간인이었다. 순간 당황스러웠고, 씁쓸함이 밀려왔다. 나의 소속은 기관명 대신에 민간인이구나.

 배치받은 업무는 시험감독이 아니라 시험장 출입 통제였다. ‘그러면 그렇지’, 민간인에게 중차대한 시험감독관을 맡길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맡은 임무는 시험 치러 오는 사람들을 시험 시작 7분 전까지 입실 완료하게 하고, 그 시간 이후에 오는 수험생은 출입 통제하면 되는 것이었다. 남자 한 분과 둘이 하는 일이었고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시험장 입구에 배치된 사람은 우리 말고도 시험장 안내도 두 명 더 있었다. 우리 네 명 중 둘은 수험표 받아서 시험장 알려주는 일을 했고, 나 포함 두 명은 신발에 부직포 덧신을 신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였다. 시험장 입실하기 전 신발에 부직포를 덧씌우고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이 학교 학생들은 신발 벗고 들어가는 교실이라 그렇게 조치를 한 듯했다. 우리는 덧신을 나누어주기만 해도, 아니 그들 스스로 박스 안에서 꺼내 신으면 되는 거였다. 장애가 있다 보니 그렇게 하는 것이 버거워 보였다. 우리는 박스 안에서 그것을 꺼내어 앞뒤를 구분해서 주며 신을 수 있게 도왔다. 그들의 불편한 몸이 편하게 신을 수 있게 해 줘도 그것마저 잘하지 못하였다. 남자는 신발이 커서 일정 규격의 부직포 덧신이 잘 들어가지도 않았다. 신겨주려다 ‘이 정도만 서비스해도 되는데 더러운 신발까지 손대야 하나’ 싶은 얄궂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힘들게 신고 있는 그들을 모르는 척했다. 그러고 그것을 나누어 주고 있는데 ‘내가 이러면 안 되지, 아직 수양이 부족해’ 하는 마음이 일었다. 얼른 신발을 잡고 부직포 덧신을 밀어 넣어 주었다. 더러워진 손은 씻으면 되니까,

 수험생 입실 완료 후 본부로 갔다. 담당자가 수고했다며 시험 마칠 때까지가 아니고 임무 완수하셨으니 지금 가셔도 된다고 하였다. 가라고 해도 이 시간에 마땅히 갈 곳도 없는데,.. 마칠 때까지 이 도서관에 있는 책을 골라 읽고 싶었는데,... 떠밀려 귀가했다.

 담당자는 그렇게 해주는 것이 우리에 대한 배려라 생각한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직원의 고마운 마음을 받아 빠른 귀가를 한 것이다.

 오늘의 일은 얼마간의 수고비를 받음보다 일한다는 즐거움이 컸다. 잉여인간이 아니라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사회구성원으로 한 역할을 한다는 것도 좋았다.

이런 아르바이트 자리가 내게 종종 배달되어 오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이전 01화 나는 구직 중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