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또 다른 시작
누군가, “60이 넘으면 잘 죽는 기도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퇴직하였으니 상사 눈치 볼 일도 인사고과를 신경 쓸 필요도 사라졌다. 사람에게 잘 보이려 애쓰기보다 이제는 내가 믿는 신의 마음에 들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의 여러 기관들, 주민센터, 구청, 도서관, 박물관, 평생학습관 등에서 그 기관 특성에 맞는 다양한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주로 40 중반 이후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평생학습'이란 이름 아래 무료 또는 소정의 수강료를 받고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
나는 막 퇴직한 직후에는 이런 교육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고, 퇴직 2년 차인 지금은 여기저기 강의를 쫓아다니느라 바쁘다. 그중에서도 가장 잘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육회관에서 하는 ‘수필 반’ 수업이다.
이곳에서는 시 낭송, 민화, 도자기, 가야금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 민화 반을 신청했다가 선착순 모집에서 떨어졌다. 기관장은 나처럼 떨어진 대기자를 위해서 1년 된 사람들을 졸업시킨다고 했다. 수필 반에서 나는 아직 대상자가 아니었다.
여기서는 수강생을 분기마다 모집하는데 내가 다닌 9개월 동안 매분기마다 네다섯 명의 신입이 들어왔다. 그들은 한 분기 석 달을 채우지 못하고 나가기를 반복했다. 그들이 기대했던 것과 다르거나, 건강상의 문제 때문이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올해 12월에 졸업하고 나갈 사람들의 빈자리를 채울 대기자는 없어 보였다. 그리고 설령 대기자가 있다 해도 1년 이상 지속적으로 나올 사람은 드물 것 같았다.
수필 반은 다른 강좌와 다르다. 단순히 관심과 시간, 건강만으로 부족하다. 재능이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 만물에는 '예외'란 것이 있다. 예외는 천편일률적인 것에 융통성을 접목한 것이 아닌가 싶다. 기관장은 원칙을 고수했다. 기관장 입장에서는 어느 프로그램이든 예외를 둘 수 없다는 사실은 이해한다. 나는 고민했다. 수필반은 예외를 둬 달라는 건의를 할지 말지 망설였다.
젊은 시절 정의감에 불타다 ‘모난 돌이 정 맞는’ 경험을 했던 나는 그 이후로 나에 대한 불의는 참을 인(忍)’을 새기고, 타인의 불의에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괜히 나섰다가 목적도 이루지 못하고 미운털만 박히는 건 아닐까?
그런데 어느 날, 글벗 한 분이 힘겹게 교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내 몸이 내 말을 안 들어 보도 시(힘들게) 왔다” 그 한마디가 가슴을 울렸다. 그 연세에, 그 몸으로, 글쓰기에 대한 열정 하나로 출석한 것이다. 그다지 건강이 좋지 않으신 분들이 언제까지 이곳에 올 수 있을까, 굳이 1년이라는 잣대로 졸업을 강요하는 것이 맞는 걸까, 어차피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스스로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인데,..
나는 반장과 함께 기관장 면담 신청했다. 직원은 “기관장보다 먼저 팀장을 만나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수업 마치고 만나러 갔다. 기관장실로 안내되었으나, 팀장도, 기관장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한 직원이 수첩과 볼펜을 들고 들어와 마주 보고 앉았다. ‘이게 뭐지’ 익숙한 풍경이었다. 현직에 있을 때, 내가 직원에게 업무 지시를 내릴 때의 모습이 오버랩된 것이다.
나는 차분히 건의했다. 이 이야기가 기관장에게 전달될지, 건의가 받아들여질지는 알 수 없다. 건의는 내 몫이었고 결정은 내 것이 아니니까,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나는 더 이상 기관장을 면담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이것이 내가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었다.
문득, 한 기억이 떠올랐다. 과거에 내가 어떤 기관의 기관장으로 있을 때, 면담 신청했던 70대 중반의 남자분이 있었다. 나는 그를 내 방으로 오시게 해서 차 한잔을 나누며 그의 이야기를 직접 수첩에 받아 적었다. 그의 건의는 그가 느끼기에는 큰 것이었을지 몰라도 우리가 볼 때는 미미한 것이었다. 그렇더라도 나는 “우리 기관에 관심을 가져 주심과 좋은 건의에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었다.
그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갔고,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잘했구나’하고 바라보았던 날이었다.
지금부터 중요한 건, 일선에서 물러난 나는 이제 ‘사람에게가 아니라 신께 잘 보이려는 삶을 살기로 했다는 것이다. 신께서 이번 내 행동에 대해 몇 점이나 주실지 모르지만, 나는 오늘도 주어진 현실에 잘 적응해 가려고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