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오지 않는다

녹지않는 눈에 대한 고찰

by 청범

눈은 우리의 마음속에 깊은 낭만과 로맨틱함을 심어줍니다. 영화 '러브 스토리'에서는 연인들이 눈 속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러브레터'에서는 눈 내리는 풍경이 고백의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음악에서도 눈은 사랑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데, 엑소의 '첫눈'에서는 첫눈을 계기로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매개체로, Sia의 'Snowman'에서는 눈 내리는 겨울의 배경 속에서 사랑의 약속과 이별의 슬픔을 아름답게 그려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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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눈이 로맨틱한 존재인 이유는 눈이 시한부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눈은 0도 이하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한국에서는 11월부터 길게는 3월까지 존재합니다. 그 이후에는 녹아 물이 되고, 다시 증발하여 구름이 됩니다. 그리고 다시 11월이 되면 눈이 되어 우리 곁으로 돌아옵니다. 눈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사라지면서 순간의 아름다움으로 사람들 마음 속에 남습니다.


불교에서는 눈을 불생불멸의 존재이자 제행무상의 가치로 해석합니다. 눈이 증발해 수증기로 떠다니다가 다른 지역에서는 비가 될 수도, 다시 결정이 얼어붙어 눈으로 내릴 수도 있습니다. 마당에 쌓인 눈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 존재가 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눈은 불생불멸의 가치를 지닙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무상함을 삶의 본질로 보며, 집착을 내려놓고 현재를 받아들이는 지혜를 강조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녹는 눈'은 삶의 덧없음과 그 안에서의 깨달음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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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만약 눈이 녹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눈은 더 이상 낭만의 상징이 아니라 모순과 비극의 존재로 변모할 것입니다. 눈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쌓인다면 처치곤란할 것입니다. 눈이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은 영화 **'설국열차'**처럼 1년 내내 기온이 0도 이하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소설 '스노우볼 드라이브' 속 세상처럼 재앙적인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영원히 녹지 않는 눈이 내리는 세계를 그리며, 그 눈은 사람의 피부에 닿으면 발진을 일으키고 체내의 수분을 빼앗아갑니다. 사람들은 희망을 잃고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야 합니다. 눈이 가진 원래의 성질을 잃어버린 이 세계에서, 눈은 더 이상 아름다움이 아닌 생존의 위협이 됩니다.

현실에서도 우리는 녹지 않는 눈을 마주합니다. 대표적으로 스노우볼이 있습니다. 작은 유리구 속에서 영원히 내리는 스노우볼은 사람의 손길에 의해 비로소 움직이는 수동적인 존재입니다. 그 속의 눈은 물이 아닌 화학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시간의 흐름에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는 영원한 낭만을 간직한 존재이죠. 또 다른 예로, 바다로 흘러들어간 스티로폼 알갱이가 있습니다. 스티로폼은 자연적으로 분해되지 않아 바다 생태계를 위협하며, 작은 하얀 알갱이로 남아 해안가를 오염시킵니다. 작가 박세연은 통영의 해안가에서 수집한 스티로폼을 활용해 **'녹지 않는 눈'**이라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바다를 오염시키는 스티로폼이 마치 눈처럼 해안가에 쌓여 있는 모습은 환경 오염의 심각성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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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크리스 조던은 작품 '미드웨이' 시리즈를 통해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해 죽어가는 알바트로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이미지 속에 현대 문명이 가져온 환경 문제의 불편한 진실을 담아내며, 우리에게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그의 작품은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소비하는 것들이 자연과 생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일깨워줍니다.


녹지 않는 눈은 그래서 양면성을 지닌 존재입니다. 한편으로는 영원한 낭만을 간직한 듯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을 거스르고 생명을 위협하는 비극의 상징입니다. 이러한 이중성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자연의 질서를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것들이 결국 우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돌아오고 있지는 않은가?


결국 녹지 않는 눈은 우리에게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합니다. 자연의 순환과 변화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영원함에 대한 집착으로 모순된 현실을 만들어낼 것인지 말입니다. 모순을 해결하려면, 그 이면의 비극을 직시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눈이 녹아 물이 되고, 그 물이 다시 증발하여 구름이 되어 내리는 자연의 순환은 생명과 재생의 상징입니다. 우리는 이 순환 속에서 순간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그 덧없음 속에서 삶의 가치를 발견합니다. 녹지 않는 눈의 모순된 아름다움과 비극을 통해 우리는 자연의 소중함과 우리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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