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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상품 Aug 25. 2019

세심한 '척'하는 소심이

 쿠키가 하나 있다. 곰돌이 모양 쿠키로 머리도 있고 팔, 다리, 몸통 모두 다 있다. 그런 쿠키를 당신은 어떤 것부터 먹을 것인가. 머리? 팔? 다리? 반을 갈라서 몸통?  


나 먹을꼬야?


 최근 할머니 병원을 방문하던 중 차에서 우연히 라디오를 들었다. 원래 즐겨듣던 채널이 아니라 금방 돌리려 했는데 심리테스트라는 말에 채널 돌리기를 멈추고 꽤 집중해서 듣기 시작했다. 운전하고 있던 엄마는 머리를 먼저 먹겠다고 했고 나는 다리부터 먹겠다고 했다. 붕어빵도 꼬리부터 먹는 것의 연장선상은 아니지만 괜히 끝부터 먹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했다. 끝과 시작을 누가 정해둔 것도 아니고 편견은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고심도 하고 말이다. 


 라디오에서는 알다시피 노래도 틀고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시간을 질질 끌었다. 병원 앞에 다 왔지만 엄마와 나는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심리테스트의 결과를 듣기 위해 기다렸다. 엄마는 꽤 짜증이 난 듯 했다. 물론 엄마만 그런 건 아니었다. 노래가 끝나고 드디어 그 결과를 DJ가 알려주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먹는다’

 엄마는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눈치를 잘 보지 않는 타입으로 오히려 그게 해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한다고 했다. 

 ‘다리부터 먹는다’

 나는 주위를 매번 살피고 눈치를 많이 보는 타입이라고 한다. 


 너무 정확해서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나는 항상 그랬다. 내가 보고 싶지 않아도, 알고 싶지 않아도 상대의 표정, 눈짓, 말, 분위기까지 정확도는 때에 따라 다르지만 일단 눈치를 보는 건 확실하다.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면 눈치 한 번 더 보고, 짙은 숨이 내뱉어 지면 내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나와 친한 친구들은 내가 굉장히 소심하고 일명 ‘쫄보’인걸 잘 알지만,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굉장히 착하고 세심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적어도 내가 그런 척 하고 싶어 한다. 세심하고 꼼꼼해서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그들의 감정을 읽으려 한다고, 나 스스로 죄책감 혹은 불쌍함을 덜기 위해서. 불쌍함. 누군가는 왜 그런 걸로 불쌍하냐며, 성향 차이를 차별로 두는 건 아니냐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내가 굳이 불쌍하다고 표현한 이유는 당장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 사람의 감정을 계속 읽어내려 안간힘을 쓰는 것, 그것은 큰 감정소모를 요하는 일이다. 나는 엄마에게 조차도 툭 내뱉은 말을 곱씹고, 풍겨져 나오는 분위기를 읽으려 노력한다. 아니, 노력보단 의식하지 않아도 이미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어떤 ‘척’을 하곤 한다. 다양한 척이 있겠지만 가장 자연스러운 척은 역시 세심한 척이다. 새로 산 옷을 알아봐 주고, 기분을 알아봐 주는 ‘세심한’ 사람. 솔직히 원래는 세심함과 꽤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가까운 사람들의 생일, 좋아하는 것을 잘 기억도 못하고 챙기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 당시에 세심한 척 한 나는 이미 그런 사람이 되어있다. 아주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면, 자주 만나는 지속적인 관계가 아니라면 나를 그렇게 생각하곤 한다. 


 어릴 때는 그 정도를 알지 못했다. 전학 온 친구와 친해지는 수단으로 사용할 정도로 정도를 몰랐던 것 같다. 나는 그 친구와 더 친해지고 싶어서 그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비슷한 부분을 찾아 비슷해지려고도 했었다. 그 당시 나는 같은 장르의 가수를 좋아하게 되었고 친구와 같은 방법으로 일명 ‘덕질’을 했다. 하지만 친구는 많이 불쾌해했다. 결국 뒤에서 나를 이상한 애로 몰고 갔고, 그때서야 내 지나친 관찰이 나를 잡아먹었다는 걸 알았다. 


남이 감정을 읽어내려 애쓰는 건, 큰 감정소모를 요하는 일이다 

 남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생긴 것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좋게 쓰이기도 하지만 굳이 보지 않아도 될 것들을 보게 되고 생각하게 되었으니, 지독한 관심이 주는 부담스러움, 그것이 풍기는 역한 냄새가 당연히 불쾌할 수 있다. 그런 일을 겪어도 나는 쉼 없이 세심한 척, 남을 바라보고 알려한다. 겉으로 꺼내기보다 속으로 생각하고, 내가 알아낸 것에 대해 아는 척을 해도 될 것인가 쉼 없이 고민하였다. 그러다보면 머릿속에선 이미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가득하다. 그러나 아는 척 할 수 없는 것이 있고, 그러다 보면 내가 상대를 너무 주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조금씩 몰려온다. 


 그럼에도 나조차 이런 ‘척’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혹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소심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척’ 하는 것뿐이니까. 



-청년상품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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