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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상품 Aug 29. 2019

이미 본 영화를 다시 본다는 것



 아주 오래전 친한 친구가 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이미 본 영화를 왜 몇 번이고 다시 보냐고. 영화는 단순히 오락만을 위한 매체일 뿐이며, 그런 매체를 다시 즐기는 것만큼 시간을 낭비하는 것 또한 없을 터인데 왜 그런 것에 시간을 낭비하느냐고.

  

당시 친구에게서 그 질문을 들었던 나는 무엇인가 구체적인 이유를 댈 수 없었다. 친구가 하는 말에 무엇이라고 답을 하면 이 친구와 오랜 시간 이 주제를 가지고 논쟁을 할 것 같은 느낌 탓이었을까. 나는 내가 영화를 여러 번 보는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고 그저“재밌잖아.”라고 답하고 웃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친구의 지나가듯 던진 그 질문은 오랜 시간 동안 나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되물어보게 되는 질문이 되어버렸다.  


나는 왜 봤던 영화를 다시 보지?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확실했다. 분명히 이유가 있을 터인데.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면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예전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더 유용할 것이었다. 차라리 아무런 생각도 없이 볼 수 있을 테니까.


 경험

어쩌면 나에게 영화는 그저 재미를 위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보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로키>에서 다룬 것처럼 내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인물의 일대기가, <해리포터>와 같이 내가 직접 겪을 수 없는 모험들이, <반지의 제왕>과 같은 내가 직접 볼 수 없는 세계가, <인셉션>처럼 내가 항상 상상만 하던 모습들이 바로 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그것이 내가  이미 보았던 영화를 다시 보는 이유이지 않을까. 영화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현실에서 내가 직접 경험하기엔 불가능한 것들이 많으니까.


 감정

그렇다고 해서 단지 대리만족을 위해서 영화 다시 보기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한 대리만족은 책을 통해서도 할 수 있을 테니까. 내가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다시 한 번 느끼기 위해서일 것이다. <라라랜드>에서 느꼈던 그 달콤하고 씁쓸한 사랑의 감정을, <다크나이트>에서 선과 악에 대한 성찰을 함과 동시에 느꼈던 그 혼란한 감정을, <인턴>에서 느낀 그 잔잔하게 표현된 슬픔과 기쁨의 감정들을,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쉽게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을 다시 머릿속에 떠올리고 그를 통해 더 여러 가지를 생각하기 위해, 나는 이미 본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이지 않을까.


 감동

그리고 감동. 내가 영화를 다시 보는 이유에 있어서 감동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형제가 마지막에 재회하는 모습에서 흐른 그 눈물을,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수만 명의 관중이 함께 노래 부르는 모습에서 얻는 감동을,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느낀 그 먹먹한 감동과 공허함과 같이 일상에서 쉽사리 얻을 수 없는 감동을 영화에서 받기에, 그리고 그 감동들을 극장이 아닌, 타인과 함께 느끼는 것이 아닌, 오롯이 나 혼자 느끼기 위해서, 나는 예전에 보았던 영화들을 다시 찾아보는 것이 아니었을까.



물론, 누군가 지금 나에게 왜 영화를 다시 보냐고 물어본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이유들을 그 사람에게 설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도 나의 대답은 예전에 친구가 물어본 때와 같을 것이다.


“재밌으니까.”

하지만 이 말 한마디 뒤에는 예전과 같은 그 미묘함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나 스스로는 내 행동에 대한 이유를 가지고 있기에. 혼자 시간을 보낼 때 영화를 보는 것만큼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느끼게 해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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