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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상품 Sep 01. 2019

나는 A형이다

식당에서 이모를 부르는 건에 대하여

한국에서 A형이란 소심한 사람들에게 좋은 방패다. 그리고 나는 A형이다. 


난 식당에서 ‘이모’를 부르지 못한다. 소심하다고? 아까 말했듯 난 A형이다. 그래서 소심한거다. 애초에 모든 식당에 벨이 있으면 참 좋은데. 벨이 없는 식당은 참 A형에게 배려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벨이 없는 식당을 갈 때면, 매번 주위 사람들에게 이모를 불러달라고 부탁한다. 이런 나날들을 지속하다 보면, 가끔 그 이유를 묻는 사람들이 생기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당당히 이야기 한다. 


“제가 A형이라서요.”


그러면 사람들은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아~’ 하는 의성어만 내뱉을 뿐. 정말 흡족하다. 아, 한국에서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


하루는 친구와 식당에 간 날이었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친구에게 이모를 불러달라 부탁했다. 왜냐는 말에 여느 때와 같이 난 똑같은 대답을 했다. 그러자 친구가 내게 말했다. 


“야, 그냥 소심하다고 말하면 되지. A형 그런 거 따지는 나라도 일본이랑 한국밖에 없어.”


…예리한 년. 한창 배가 등가죽에 달라붙던 참이었는데, 별 시덥잖은 얘기를 하는 친구가 짜증났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왜이래. 그냥 빨리 이모 불러줘. 배고파.” 그러나 친구의 주둥이는 움직일 생각을 하질 않았다. 내가 짜증을 내자, 친구가 말했다. 


“너 이거 연습해야 돼. 언제까지 내가 불러줘야 돼. 혼밥(혼자 밥먹기)할 땐 어쩌려고 그래?” 


멍청이. 애초에 혼밥을 할리가 없다. 내 옆엔 늘 이모를 불러줄 사람이 구비되어 있을거라고. 

“아 이번만!” 내 성화에 못이겨 친구는 결국 이모를 불러주었다. 


음식을 다 먹은 우린, 식당을 나섰다. 배는 불렀지만, 후식 배는 따로 있는 걸. 그래서 친구와 난 카페를 갔다. 음료를 고르고 있는데, 친구의 얼굴에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왜 그런진 대충 짐작이 갔다. 내가 끝까지 이모를 내 입으로 부르지 않아서 그렇겠지. 그래도 어쩔 수가 없는걸. 누가 소심하고 싶어서 소심한 것도 아니고. A형으로 태어난 걸 어떡해. 별 일이 아니라 생각한 나는, 무시하고 내 음료 선정에 집중했다. 한참동안 고민을 하고 고개를 들었는데, 어째 친구는 아직도 뚱한 표정으로 음료를 고르지 않고 있었다. 하는 수 없지. 친구를 달래주는 수밖에. 


나는 친구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야, 나도 힘들어. 내가 일부러 너한테 이모 불러달라고 하는게 아니잖아. 기분 좀 풀어라 응?”


좀 찝찝해 보이긴 했지만, 친구는 그제서야 표정을 풀었다. 난 친구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그니깐 음료 좀 시켜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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