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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상품 Sep 27. 2019

대범한 소심이

내성적인 사람이 불의에 대항할 때

대범하다 : 성격이나 태도가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않으며 너그럽다.


‘대범하다.’의 정의를 본 순간 ‘쿨하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어릴 때 ‘쿨하다.’라는 말은 무언가 멋있는 사람이 떠올랐다. 어디서나 당당한 그런 사람.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너는 참 쿨해.”


내가 어디 가 ‘쿨하다’는 거지. 의심을 했지만 ‘쿨하다’ 라는 말을 들으니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또 어느 날은 그 말을 들으면서 쿨한 척 미소 짓기도 했다. 그렇게 미소를 짓다 보니 나는 더 미소 짓고 싶어졌다.  


 학교 동아리 내에서 담당 선생님과의 트러블이 있었다. 담당 선생님 바뀌면서 생기는 트러블이었다. 전 담당 선생님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던 상관 않고 자유롭게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셨지만 바뀐 담당 선생님은 사사건건 우리가 하는 일에 신경을 쓰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려고 했다. 그렇게 선생님과 우리 사이에 불신과 오해는 커져갔다. 그렇게 우리는 뒤에서 선생님을 욕하며 서로 이건 말해야 한다, 하며 서로서로 내가 말한다며 장난스러운 말들이 오갔다. 그렇게 나도 친구들과 함께 말했다.


“진짜, 언제 한번 터트린다. 내가.”

“너는 진짜 할 거 같아.”


 어느 날, 담당 선생님의 실수를 우리에게 덮어씌우려고 하면서 일이 터졌다. 말도 안 되는 말들로 우리를 나무라는 선생님에게 동기들 어느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나도 그들 사이에서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담당 선생님의 말을 점점 지나쳐졌고, 나는 갑자기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과 동기들 그 공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고, 입을 열고나니 나는 다시 입을 닫을 수 없었다. 친구들의 눈을 보니 무언가 나에게 기대를 하고 있는 눈을 비추었다. 나는 그렇게 말을 이어갔고 지금의 억울함과 부당함에 대한 이야기를 나열했다.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졌고,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떨림의 정도는 지나쳐졌고, 온몸이 떨려왔다. 이야기는 점점 큰 소리가 오가고 얼굴이 빨개지면서 처음으로 심장이 이렇게 빨리 뛸 수 있구나, 손이 이렇게까지 떨릴 수 있구나,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몸이 이렇게 움직일 수도 있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이야기는 점점 고조되었고, 서로 얼굴을 붉히며 열변을 토했지만 결국 일이 마무리되지 못한 채 선생님이 문을 박차고 나갔다. 순간 온몸에 힘이 풀리면서 주저앉았고, 동기들은 나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개새끼, 지가 잘못해놓고 왜 우리한테 뭐라 그래? 저거 봐, 할 말 없으니까 나가버리잖아.

그래도 네가 그 자식한테 할 말은 다 해서 속은 시원하다. 잘했어, 역시.”


역시, 역시라니. 나는 눈물이 났다. 그저 대범한 척 어깨나 한번 으쓱하려고 던졌던 말을 실제로 나도 모르게 하고 나니 너무 무서웠다.


혹시나 선생님이 다시 와서 나를 체벌하면 어떡하지? 부모님을 불러오라고 하면 어떡하지? 동아리를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나는 어떡하지? 어떡하지? 애들은 왜 한마디도 안 하지? 나는 왜 입을 연 거지? 그냥 입 닫고 있을걸. 내가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거지? 나 괜찮은 건가?


 단지 친구들 앞에서 대범한 척, 하며 미소만 짓고 싶었는데 정말 대범하게 맞서고 나니 나는 쿨하게 대범하게 이 상황을 쉽게 잊을 수 없었다. 심장이 이렇게까지 빨리 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손이 이렇게까지 떨릴 수 있다는 것을, 내 몸을 내가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몸이 떨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알았다. 나는 대범하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나도 모르게 입을 연 것은 어쩌면 대범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이 끝나고 난 후 나는 내가 왜 그랬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한 일에 대한 생각의 꼬리를 잡지 못한 채 빙글빙글 돈다. 그렇게 현기증을 느끼며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척하며 미소 짓고 싶은 욕심은 화를 부르는 걸 알면서도 나는 또 함부로 입을 열고, 소심하게 뒷일을 걱정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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