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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상품 Oct 29. 2019

어쩌면 그것은 너

과거의 실패와 상처

오늘도 난 그것을 죽이는 걸 실패했다. 실패할 때마다 걷잡을 수없이 커지는 죄책감을 느끼다 보면, 모든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내가 그것을 죽이는 대에 성공한다면, 사람들은 내 노력에 박수를 보낼까? 아니면 그것의 죽음에 대해 손가락질을 할까?


처음 살해를 계획한 것이 언젠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아마 짧지 않은 시간부터라는 것이다. 처음 그것을 발견한 것은 학교 안. 나는 충격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나에겐 5년 지기 친구가 있었다. 그 애는 함께 있을 때면 늘 같은 노래를 흥얼거렸다. 머리가 자라면서 자주 함께 놀지 않았지만, 시간이 시간인 만큼 나름 진한 추억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복도를 걷고 있는데 무언가 이상한 낌새가 들었다.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귀를 스쳐지나가는 웃음소리. 그 소리는 아주 불쾌하여 잡을 수만 있다면 없애버리고 싶었다. 기분 탓이겠거니 하며 교실에 들어서는데, 별로 친하지 않은 남자애가 내게 다가와 말을 했다. 


“있잖아… 지금 야설이 학교 안을 떠돌고 있어. 근데 그 주인공이 너야.”


그 애의 말은 다음과 같았다. 학교 남자애들 사이에 돌려지고 있는 야설이 있다는 것. 그것의 주인공은 나라는 것. 그 웃음소리는 나를 향했다는 것. 그리고 그걸 쓴 건 내 5년 지기 친구라는 것.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한참 동안 책상 위의 물병을 바라보았다. 스테인리스로 되어있던 그 물병은, 크기도, 길이도 적당하여 쉽게 휘두를 수 있어 보였다. 손을 뻗는데, 물병에 비친 그것이 소름 끼치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흠칫 놀라 손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회복이 빨랐던 것인지, 몇일이 지나자 그것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제 발 저린 것인지 그것은 잘 나타나지 않게 되었을뿐더러, 가끔 그것이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거슬리는 거 외에는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덕에 굳이 생각하려고 노력하지만 않으면 충분히 그것을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게 내 기억의 시작 속 첫 번째 너와의 만남이다.


두 번째로 발견한 것은 홀로 침대에 누워있을 때였다. 그때의 난, 한 여자애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녀는 긴 머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화장이 두터웠다. 나는 그녀를 증오했다. 나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는데, 그 악의 근원이 그녀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퍼뜨린 거짓된 소문은 손쓸 새도 없이 빠르게 퍼져나갔고, 주위를 둘러봤을 땐 이미 모두가 날 외면하고 없었다. 누워 천장에 달린 전등을 바라보자, 전등에 비친 그것이 보였다. 거북한 기분에 얼른 그 자리를 떠났지만, 화장실, 교실, 복도, 운동장, 계속해서 그것이 보이자 익숙해져 피하는 것을 그만두게 되었다. 시간이 지난 후 오해는 풀리게 되어 평화로운 생활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은 이제 뻔뻔하게 내게 말까지 걸어왔다. 


“혹시 잊은 건 아니지?”


처음 그것을 만났을 땐 무시하고 살 수 있을 정도였는데, 무시하니 화라도 난 걸까? 그것은 점점 내 앞에 자주 나타났다. 저번엔 말까지 걸더니 이젠 그것을 떠올리기만 해도 날 찾아왔다. 그러다 보니 난 그것을 자꾸 떠올리게 되었으며, 그것에 대한 감각은 점점 더 뚜렷해져 갔다. 그것을 보다 보니 알게 된 것은, 그것은 크기도 형태도 다양해서 어떤 모습으로 나를 찾아올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수많은 방법으로 애를 썼다. 그것이 자주 흥얼거리던 노래를 핸드폰에서 지우고, 그것을 닮은 내 긴 머리카락을 잘라내었고, 그것이 좋아하는 친구를 빼앗아도 보고,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해보았다. 하지만 이 방법들은 그것을 점점 더 뚜렷이 나타나게 할 뿐, 아무런 도움도 되질 않았다. 결국 나는 알아버린 것이다. 그것을 죽이지 않고서는 내가 평온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아직 내 노력이 부족한 탓인지, 아니면 법적 체벌이 두려웠던 탓인지, 나는 아직도 그것을 죽이지 못하였다. 실패가 거듭될수록 내 자신감은 떨어져 갔고, 그냥 공생할까 생각하면서도 그것에 대한 증오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난 이제 실패가 두렵지 않다. 언젠가 성공할 수 있음을 분명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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