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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상품 Nov 14. 2019

오랜만에 봤으면 '진짜' 안부 먼저 묻자구요

넉살좋은 척 하기도 지칩니다


 “아프가니스탄 아니면 이라크?”


 셜록은 처음 만난 왓슨에게 이런 질문을 건넨다. 룸메이트를 구하고 있던 둘은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셜록은 이미 왓슨의 기본 정보를 꾀고 있었다. 직업병, 습관 혹은 무의식일 그의 지나친 관찰과 추론은 언제나 거의 맞아 떨어졌다. 나는 그런 셜록을 보며 참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작품인 것은 사실이다. 캐릭터 또한 굉장히 매력적이다. 영어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내게 영어에 대한 흥미를 조금이나마 일깨워준 몇 안 돼는 작품이라고 소개할 만큼. 


 하지만 그의 행동은 내 시선에서, 내 입장에서 굉장히 무례하다.


 그를 사랑하는 친구의 입장이라면 아마 놀랍고 대단하다 정도에서 혹은 ‘재수 없다’ 에서 끝날 상황이지만, 나 같은 콤플렉스 덩어리에겐 단 한 순간도 함께 있기 어려운 존재이다.


 셜록의 실험과 일종의 연구를 도와주는 몰리는 시즌4까지도 그를 좋아하는 인물로 나온다. 하지만 그녀에게 셜록은 굉장히 무례하고 헷갈리는 인간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몰리가 립스틱을 발랐는지, 어떤 색의 립스틱과 화장을 했는지 가감 없이 말하는 편이다. 그때마다 몰리는 민망해하고 당황해한다. 그 모습에 나조차도 당황스럽고 민망하다.


당신, 오늘 할 일 다 안끝내고 나를 보고 있구만


  나는 작은 것에 상처받고 자질구레한 트라우마를 자주 겪는다. 지겹게도 익숙해지지 않는 외모적인 지적, 성적에 대한 지적. 특히 나의 몸에 대한 지적은 사람을 꺼리게 되는 수준에 이른 적도 있다. 연예인이 아닌 이상 누구나 경험한 일이겠지만 내겐 인사와도 같은 일이었다. 초면에 만나서 반갑다, 누구 딸이냐 혹은 잘 지냈냐를 모두 생략하고 나는 대체로 덩치에 대한 안부를 받는다. 참 받기 싫은 안부다. 만약 셜록 같은 친구가 있다면 무뎌지진 않을까 했지만, 상상만 해도 끔찍한 무뎌짐이 아닌가. 


 최근에 조모 상을 당하면서 처음 뵙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친척 혹은 친척들의 친구들까지. 막내였던 나는 입구에서 신발 정리와 안내를 도맡아야 했는데, 당시 시선이 곱지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 

 할머니는 엄마, 아빠와도 같은 존재였기에 감정을 추스르는 데에도 힘겨웠던 내게 토닥임은커녕 수군거림, 그리고 초면에 팔부터 붙들고 보는 무례. 그런 것이 전부였다. 먼 친척 분이었던 어떤 분은 상갓집이 쩌렁쩌렁하게 울리도록 내가 누군지가 아닌 덩치가 왜 이러냐고 물었고, 외삼촌의 친구 분은 내가 건넨 인사에 이상한 눈빛으로 답했다. 

 그때 난 어떻게 했을까. 아마 넉살 좋은 척 하하, 호호, 나사 하나 빠진 애처럼 웃었을 것이다. 그런 건 매번 아무렇지 않게 넘긴 것처럼, 웃으며 다 털어낼 것처럼. ‘평소처럼’ 나는 웃어댔을 것이다. 


 초면엔 그냥 인사만 하고, 오랜만에 보면 ‘진짜’ 안부를 물어줬으면 하는 마음은 너무도 큰 바램으로 남겨두고.


 이런 내 행동이 ‘평소처럼’이 된 것은 아마 고등학교 때 쯤으로 기억한다. 반장을 맡은 적이 있는데 당시 교무실로 자주 불려 다니곤 했다. 과제 혹은 시험 등 선생님과 마주할 일이 많았고 반 친구들을 보호해야할 순간들이 간혹 오곤 했다. 반 친구가 야자를 빼고 사라질 때, 숙제를 늦게 가져다 드릴 때, 다 같이 반에서 맛있는 걸 먹을 때 등등. 그때마다 나는 담임 선생님, 부장 선생님께 허락을 받고, 친구들을 변호하며 일종의 아부를 ‘떨어야’ 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점점 하하, 호호 거리는 인형이 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름 고등학생이라고, 먹는 양이 늘고 운동량이 줄면서 덩치가 불어나 콤플렉스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서서히 넉살 좋은 인형이 되어간 나는, 주변인들의 ‘안부’에 나를 변호하기보단 “그러게요.” 라는 말을 더 자주 하게 된 것 같다. 말대답 보단 웃음으로, 웃음으로 포장한 인정으로.

 매번 나는 실실 웃고 있었다.

 시간이 흐른 만큼 무뎌지기 보단 쌓여만 갔고, 털어내기 보단 썩혀만 갔다. 그래서 나는 겉으로는 넉살 좋은 친척 동생, 조카 혹은 누군가로, 속으론 작고 작아진 콤플렉스 덩어리로. 그들이 던지는 뭣 모를 안부, 가벼운 농담에 나는 자꾸 안으로, 속으로 썩어만 갔다. 그래서 아직도 친척 한 분은 만나는 게 꺼려지고, 단 둘이 있는 건 생각만 해도 무서워 손이 떨릴 지경이다. 무의식적으로 피하려는 온갖 방법을 생각해 낼 정도로.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잘 웃는다. 가끔 나는 내게 왜 이렇게 웃느냐고 묻고 싶지만, 묻는 순간 마지막 거점마저 점령당한 패전 병사가 될까 두려워 질문을 미루고 미룬다. 


<웃어도 피는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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